
트럼프가 당선될 거 같은 모양이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미국의 주류 매스미디어가 트럼프가 이기고 있다고 가닥을 잡는다. 물론, 그렇다 하여, ‘해리스 스파이크’라는 현상이 없을 거 같지 않아보인다. 여전히, 해리스에 기대하는 쪽도 있다. 그러나, 수학적 산술논리로는 트럼프가 이긴다고 보는게 정직한 흐름이다.
트럼프는 관세체제를 시작한다. 중국이 급속도로 한국의 수출시장에서 경쟁으로 잠식하는데, 관세체제로 수출물동량이 줄어든다. 이는 정부가 총단결로 프로젝트 파이낸싱 버블 붕괴를 막아서, 대규모 실업을 막는 일을 무력화시키는 다른 길로 무력화시킬 것이다.
한국의 GDP는 일본도 가뿐히 이겼고 대만도 이겼다. 그러나, 이 국가 번영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가짜 富를 전제로 나온 것이다. 땅값이 계속 오른다는 것을 전제로 10배 선물 상품 같은 부채를 돌린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땅값의 120%의 대출만을 일으켰다. 10배 대출을 일으켜서, 대기업-정치인-국가-지방자치-언론-금융이 이익을 보고, 계속 폰지사기식 구조로 다음에 폭탄을 전가했다.
수출대기업은 대부분 건설사가 있다. 건설에 물린 자금이 많은 기업일수록 유동성에 지금도 절벽에 있다. 그래도 이들이 버티는 것은 수출대금의 유지다.
10배 부동산레버리지는 서울의 대부분의 자영업이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자본시장의 가격을 올려 버렸다. 부동산폭락론자는 대부분 중국사상의 중용으로 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지점의 가격이 설정될 것이란 소망에 있다. 실제로는 이미 비정상적인 부채로 만든 가격의 재조정은, 대규모 실업과 함께 온다.
<김건희 리스크>가 아니라 <김건희 마녀사냥>, <김건희 공천개입>이 아니라 <김건희씨의 조중동 혹은 박지원-김무성 공천주권에 도전>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전라도식 봉건제>는 덮어 버리고, <경상도식 봉건제>만 악마화한다.
답은 심플하다. 싸워서 깨뜨리던가 박살나는 수 밖에 없다.
필자는 70년생이다. 박정희 시대에 어린이였던 세대는 이젠 50대가 됐다. 정치적 투쟁? 그걸 내가 왜? 할 세대다. 젊은 세대는 어떠한가? 이 자료 풍년 문명 시대인데, 솔직히 젊은 세대들의 골빈 증세는 군사독재 정 중앙을 연상시킬 지경이다.
대통령실은 싸워서 투쟁할 사람이 눈씻고 찾아도 없는데, 가만히 있으면 싸워줄 사람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 초고령 노인들은 군사정권 때 애국심에 입각해서 무료봉사했던 먹물이, 대대로 반복할 것이라 본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이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부채 10배 레버리지로 왠만한 양반가문은 관직 부패의 길을 열었다. 고도로 연합된 동학 양반 당파와 싸워야 한다. 그것에 목숨 걸 똑똑한 사람은 없다.
보수세력은 선거로 당선된 최고 권력이 엽기적으로 쳐발리는 일이 반복된다. 특히 싸울 데에 안 싸운다. 그리고, 책임을 전가한다. 보수지지층은 ‘어쩌라고’.
보수지지층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다르다. 권력을 독점한 영남의 귀족층은 <조 사쿠라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를 경전처럼 믿어서 자살골을 무책임하게 반복한다.
조 사쿠라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는 공권력에 기초한 박정희 체제의 유지를 성인군자 박정희로, 마치 영남의 유교도덕 갖춘 聖君의 등장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보아야, 남이 보는 유신체제로서 자기 객관화를 없앨 수 있다.
실제의 박정희-전두환 시대에서는 무한반복된 것이, 조선왕조 붕당에 입각한 나라 없는 세월의 등장이다.
한동훈이 아무리 박정희를 찬양하고 대구가 정치적 고향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친윤’-‘친한’ 붕당 경쟁으로 자릿싸움 붙은 것은 대다수의 ‘조사쿠라 조갑제’가 아닌 실제의 박정희 시대의 기억이 있는 이들에겐, ‘저게 뭐야~~~~!’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실제의 보수지지층은 지도자 찬양은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으로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에 지극히 제한됐다.
다수에게 일상생활은 군사정권은 기독교가 지배했다. 지금 모든 일상이 원불교(사탄교)가 지배했듯이, 군사정권은 기독교가 지배했다.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 영향이다.
한국교회는 신앙의 기독교로 보지만, 사실은 서방자유진영의 시스템을 지향하는 학습욕구가 풍만한 인문사회학이 지배했다.
<자릿싸움>이란 욕망은 언제나 데이터를 왜곡시킨다. ‘일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은 조사쿠라 조갑제의 박정희 찬양의 맥락보다는, 그 당시의 일상에서는 자릿싸움에 매몰되지 않은 객관적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귀족다움의 기본으로 설명했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버블 부채(자기 자본의 10배 부채 돌리기)가 터지면, 금융영역에 공적자금이 투하돼야 될 지경에 반드시 간다.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버블이 붕괴되면 사실은 모두의 죄악의 누적으로 터지는 것인데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할 모양이다. 우리가 아니라 저쪽 먼저 구조조정 하세요. 그리고, 구조조정을 늦출만큼 증세로 버텨봅시다.
군사정권은 사회통합에 힘을 다 했다.
그때는 1인 지도자만 따르라.
그런데, 지금처럼 붕당으로 갈린다. 어느게 객관적인 정보인지 모른다. 3인 이상의 지식인이 자연적인 일치를 하는 것이 객관이다.
문제는 그 합리성이 나와도 문제다.
윤-한 갈등은 전라도 노론 후손들은 당연하지 싶지만, 보수지지층은 피곤하다. 미치게 피곤하다.
가짜 국부를 배제하고 축소지향적으로 그리는 새로운 조정이 있어야 한다.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마치 무당의 주술신끼처럼 설명하고, 노장사상 안에 시장경제가 있다고 주장한 모든 정보가 가짜 정보 판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짜 정보를 낸 이들이 ‘이단판정’을 거부한다. 시장은 계속 가짜 정보가 진짜보다 힘을 더 발휘한다.
국가개조로 해야 될 사항이 많아도 너무 많다.
한동훈을 따르는 정치인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럴 실력이 없다. 윤석열 정부 용산대통령실은 원불교 박지원에 못 덤빈다. 진실은 불편하다. 그 진실에 불편해하는 귀족들을 견딜 베짱이 없다.
좌익시인은 김남주씨가 번역한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시집에서 그런 시가 있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도 그들을 모른다. 동일한 수렁에 빠지기 전에는.
군사독재 때에 서민을 위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다.
지금인 김대중체제는 앞으로 뻔하게 다가올 시스템 붕괴를 어떻게 극복하자 말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다.
미국이 부채를 많이 내서 대부분의 국가는 고금리를 유지해야 하고, 그위에 관세까지 있다. 버블이 안 붕괴되는게 이상하다. 버블을 못 막는 정부가 이상한게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중국신앙 족보신앙에 너무 매달리니까, 어린이의 자리가 없다.
박정희 시대의 어린이였던 지금의 기성세대는, 박정희 시대 어린이였을 때 어른들을 생각한다. 그 때 희망이란 게 어디있나? 언제나 좋은 말을 해주셨다. 기독교신앙이 사회를 지배한 때문이다.
그때의 어린이들은 지금 기성세대로, 다음 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게 있다.
기독교신앙에 기초된 희망일 것이다.
정치인이 지지층을 대변하는 자일 진데, 중국식 붕당게임으로 지지층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진지하게 보수진영은 ‘박정희 전기’ 강제절판 및 판매금지를 시도해볼 만하다고 본다.
하나님 나라 구현은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성경의 산상수훈 앞에 주님 앞에 자기를 성찰하던 그런 귀족들의 시대가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