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6월 항쟁은 김대중의 힘도, 민중의 힘도 아니라, 하나님 역사다.
-국힘 젊은의원들이 왜 젊은 데 호남유교에 민주주의 살짝 포장?-
 
 
필자가 밀고 있는 게 있다.
 
기독교민주화운동은 호남유교의 명분론(표면)과 실제(이면)의 분리를 사용한 동학집단의 기독교꼬붕화였다.
 
역사정리로서 실제 현상이 이렇다 하더라도,..... 과연 이것만으로 사회가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알지만, 정말로 성경의 이웃을 신앙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표면적 성경표현에 그냥 동학신자의 교회조종에 사기당했구나 싶다. 물론, 이렇게 보면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그런 인본주의다.
 
87년 당시에서 사실은 진정한 힘은 군사정권 국가주의에서 이웃을 보지 못하는 심리적 한계 속에서도, 세상이 어떻든지 자신은 성경진리로 이웃을 사랑하겠노라고 선언한 분들이다.
 
물론, 정치경제학 시선이고 트럼프 지지층은 혐오하는 마르크스 좌파 어조가 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거슬러 성경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흐름이 존재했다. 물론, 거기까지는 하나님 역사나,...... 이젠 실증적으로 증명가능한데 그 순간조차도 동학도가 성경을 명분적 허구로 사용한게 보인다.
 
(이젠 보수우파가 과거사 위원회 열고, ‘국민취소권발동을 해야 할 때다. 국민취소권. 원인행위가 없는 일은 무효를 선언할 때)
 
기억할 사람은 기억한다. 노무현의 애칭은 바보다. 필자는 물론 창사랑회원이며 노무현 반대자다. 그러나, 역사가의 입장에서 그 표현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87년 당시에 민중을 이해하는 그런 (좌파 기독교맥락이라도) 낮아짐과 약자이해를 했다는 의미로서 표현이다.
 
지금은 이재명 대순진리교에 그런게 어딨나?
 
거의 동학민란신앙의 민란 만들기 클래식 나온다. 거의 기계적이다. 약자란 분들이 10억대 아파트는 기본이요 건물도 가진 분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지금에서는 이 땅에서 원불교인들의 술책으로, 군사정권은 강해도 너무강한 1인지도자라면, 지금은 강해도 너무 강한 여야 한통속 종교정치 집단이다.
 
조 사쿠라(조갑제)의 무교적 자유에서는, 군사정권 국가주의보다도 더 이웃이 없다.
 
무속신앙은 한국학 아는 사람은 알지만, 씨족 혈연에서 나와서 씨족 혈연으로 돌아간다. !! 하는 의미로 결사는 언제나 씨족끼리다. 이는 박근혜 탄핵 때에서도 동학도 외형으로 속의미가 탄핵을 빙자한 내란임이 드러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체제 이후 지난 30년간 타자적 존재가 된 분들이 보수우파다.
 
한동훈은 박지원을 위해 일하면서도 보수우파가 찍어준다는 착각이다. 타자적 존재가 되도 니들이 어쩔 거야, 여야 양쪽에 대변자가 없으면 니들이 어쩔꺼냐고.
 
원불교인들이 생각하는 속의미를 따라가면, 인간이 어떻게 저러냐? 그런 심리가 든다.
 
민주당에는 하나님이 떠났다.
 
국힘에도 이런 식이면 떠날 수 있다.
 
1인 독재에 아니오 했던 사람은, 1당독재에도 아니오! 해야, 성경의 하나님을 평생토록 받든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다. 만약에 1당독재에 아니오 안하면, 그 분은 그냥 단순히 호남사람 씨족신앙 신자로 등록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성경의 하나님과 단절된 동학신자만의 공식이었다면 그 시절은 성공이 불가능했다. 동시에, 그 시절 역사의 고쳐쓰기로 현재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