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 두목 백낙청의 내란죄 사법처리 없다면, 3만전자 이하도 가능할 듯-

“국민행동본부”는 늘 뻘소리를 해왔지만, 오늘 조갑제닷컴에 올린 “국민을 속이고 헌법을 짓밟는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탄핵당하고 싶은가? -박근혜 탄핵 사유가 1이라면 윤석열 탄핵 사유는 100이다.”는 ‘뻘소리’에도 최상급 수준을 보였다.
사실, 김무성파 동학도가 끼어진 의사협회 인사들(의사협회 동학신자)에 배반하여, 헌법을 수호했다는 것에 대한 노여움이며, 동시에 원불교 박지원과 원불교 백낙청의 촛불 체제 전복에 측면 지원의도를 먼저 깔고, 나머지는 핑계다.
정확하게 말해서, 1987년 김대중지지 학생운동들에 전대협의 그 당파성에 반대하는 이들에, 증오성 저주멘트 수준을 조 사쿠라(조갑제)가 보인 것이다.
이는 모택동 문화혁명 때 홍위병 반대노선에 선 사람에 가스라이팅과 같고, 일본 오옴진리교 신자집단의 옴진리교에 배척되는 일반 동경시민이 사린 독가스테러를 당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삼성전자는 유신체제에서의 수혜자였다. 삼성전자의 과학기술발전은 박정희 전두환의 정책적 지원 결과물이다. 물론, ‘삼성물산’의 성장은 노무현 문재앙의 정책적 수혜자다. 그러나, 삼성물산의 성장은 동시에 삼성전자의 개차반 현상으로 나타났다.
중공이 전자기술에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를 거의 다 따라잡은 모양이다. 뒤집어 이야기해서, 공산진영에 기술력도 밟힌 한국대기업은 줄을 설 이유가 없다. 최대한의 이익은 자유진영에서 와신상담하면서 기술개발로 어느 시점 이후는 튀어오를 준비를 하고, 그것을 공론화하면서 주식 시장에서는 미래가치로 유지함이 정석일 것이다.
<제조업 위해서 과학기술 한국 다시 한번>을 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식>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지난 30년간 원불교 백낙청의 지배하에서 보수가 지배하든 진보가 지배하든(단순히 국힘계열이나 민주당이냐의 의미로만 썼다), 국가 개념이 이미 국민에게 까맣게 잊혀진지 오래다.
왜, 잊혀졌냐?
원불교 등 동학신앙에 깔린 老子에 깔린 상징을 통해서 중국문명 농민들의 말초적 일차원성으로 돌아갔다. 원래, 르봉 박사의 군중심리학은 군중에게 상징을 반복적으로 노출하여 일정한 단계가 넘어서면, 대중의 생각이 세뇌된다고 보았다.
이미, 중국이 부동산을 넘어서서 제조업에 방점을 찍고 상당기간 흐르고 있는데, 한국만 부동산에만 매몰된다. 물론, 부동산을 포기할 수 없다. 제조업을 나아가는 토대가 현실은 부동산 시장발 자본시장이니까 그러하다.
민주통일 담론 하에서는 모든 경제가 한미동맹 와해의 종속도구로 쓰인다. 원불교 친북 친중마을 종족권력의 도구로서 경제가 쓰인다. 삼성전자의 미래 이익에 현저하게 해가 되도, 그 종족 이익에 이익이면 앞뒤 안가리고 행해졌다.
삼성전자의 오너는 원불교 신자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오래된 배신논리가 있다. 호남동학파는 배신자에 용서가 없다. 거의 중국인의 춘추 경전에 나온 복수의 고전을 거의 그대로 행하고 있다. 직접적 복수가 아니면 말려죽이는 복수도 한다.
모든 국민은 다 안다.
군사정권 시대에 ‘성장’이냐 ‘분배’냐 논리의 감정의 골로, 군사정권 국가주의는 재벌 우선을 취한 전력이 있다. 여기서, 이제 지난 20년 가깝게 그 보복으로서 재벌들의 성장동력을 침식하면서, 무조건 분배, 무조건 분배, 무조건 분배를 갔다. 이제 끝이 보인다. 더 이상 나누어줄 그런 것이 없어서, 없어서 못 나눠주는 국가의 불행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문제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한다.
모든 국민국가의 협력을 위해 제조업을 살리자는 발상은,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이 건국이며 헌정질서 수립이라는 전제다.
반면에, 민주통일은 원불교 공산파 종족주의를 거세게 하여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경우, 48년 건국 옹호는 원불교 공산종족주의 씨족 의리론에 반대라고 완강하게 부정한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김영삼 이후 세금먹고 자란 ‘현학주의’를 극대치로 보이는 이들이, 또 똑같이 나아간다.
권순용 SOD유튜버 주장처럼 정말 한국이 기술개발 진흥했으면 한다. 과학기술을 표나게 지원안하면 밀릴 것이다.
그런데, 표나게 지원하려면 대한민국 공공도덕 복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금은 통일운동가라는 무당에 전부 다 맡기고, 아무 생각 없는 국민이 됐다.
그 정도면 말을 안한다.
보수정권은 민주당과 한뿌리로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자였는데, 이승만 자유당에 줄 바꿔 탄 이들이 기득권이다.
이들도 똑같다.
자신들이 자유당 기득권자이기에 자신들의 인간 보호가 헌법 보호라는 해괴망칙한 논리를 취하되, 나머지는 민주통일과 거의 같다.
자신들이 미는 영웅에 줄 서야,
기존의 원망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모택동에 줄서야, 문화혁명 일어나고
김대중에 줄서야, 군사정권 청산하는 민주정부
노무현에 줄서야, 민정당 물리치고 열린당 운동권 세상
문재인에 줄서야, 박근혜 적폐청산하고 나라팔아먹기 세상
이 공식 그대로 소환한다.
국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로 보면서, 책임의식이 없다.
한국정치의 큰 설계자 박지원은 한동훈 정도 꽂아놓으면 보수도 윤석열 정권 뒤집는데 편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한동훈은 번번히 누가봐도 뻔하게 자신의 씨족색깔을 보였다. 이는 한동훈이 총선 때 용산에 줄 선 친윤의 경상도색깔을 비난한 것의 반대버전이다. 투박하여 수도권 민심에 역주행한 올드한 영남이, 기회주의적이며 늘 진실한 거 같지 않아보이는 한동훈에 보수층에 어떤 의미인가?
삼성전자의 위기는 결국 기술개발에 범국가적 역점 없이는, 서서히 가라앉는 배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국가적 역점사업을 위해서는, 국민국가의식 복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원불교 박지원과 원불교 김무성 일당들은, ‘누가 감히 국민국가’(네이션 스테이트)소리를 했는가? 지경이다.
법을 따를 때 손해본다는 감정이 있으면 결코 협력을 얻을 수 없다.
이미, 이종찬 광복회장, 문재앙 종전선언에서 대량의 배반자들, 윤석열 친구라는 로스쿨 교수의 정면 반역.
등등 국가주의에서 처벌될 영역에서 입도 벙긋 안한 영역이 많다. 그 제일 꼭지점에 원불교 백낙청이 있다.
즉, 법치를 대승불교로 아우르면 안되냐? 이제 지난 30년의 결과물로 답이 나왔다. 그렇게 하면 법이 망한다.
제일 충격 먹은 것이 ‘그라운드 C 유튜버’의 미국 대선을 남북문제로 보는 시선이다. 그라운드 C유튜버 김성원 대표는 제조업으로 삼성과 엘지의 미래가 암울한 것에 안중에 없다. 역시 똑같은데,..... 전라도 유교의 종족주의로 남북을 포괄한 공산파 동학세력의 성리학적 음양이론이 등판하면, 결국 국민 상호간에 민법적 협력이 없다.
이와 연결된 부분이 이승만 이용사업회는 날이면 날마다 왜 쓰레기 정보만 산출하느냐?
이것도 이승만 이용사업회의 오류는 1987년 무렵까지 간다.
예수 그리스도에 갈 표현을 전부 이승만에 처박고, 어때? 기독교인아. 우리 잘했지? 하고 있다.
이게 바로 모택동과 도킹가능한 남로당 기독교(가짜 기독교)의 침투의 산 증거다.
필자는 2010년 이후 복음통일을 한국교회의 원불교 꼬붕화 현상이라고 본다. 역시 똑같다. 원불교 백낙청의 내란죄 30년 정주행도 처벌 안되니, 이종찬광복회장 등 헌정질서 국헌문란이 나와도 아무처벌이 없다. 교회에서 이런 부분은 권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권징을 하는 복음수호를 제대로 하는 어른이 없다.
사실, 한국교회 신자들의 이면에는 복음전도에서 교회신자는 늘리고 싶은데, 교횟말의 과도한 현학적 문어체에 그런 측면이 있다. 이 노인세대 안 불편하려고 안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게, 잘못된 문제를 야기한다.
필자는 ‘민족복음화-세계복음화’ 명제를 믿고 미국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공간에 트위터로 복음을 올렸다. 그 순간 개달았다. 민족복음화운동이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 역사로 읽지않고, 그냥 문자 써 있는데로 읽으면, 전라도 유교를 복음으로 착각한 영역이 아주 크구나.
트럼프 지지층의 교회풍속은 이런 분위기다.
‘아들놈 시발새끼가 교회를 안가, 야이, 나쁜 놈아. 하니까 이 아들놈이 집을 나갔어. 빨리 이 아들놈 새끼가 집에 오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말안듣는 아들놈 새끼가 이제 취직 면접을 보내, 내가 다 떨리네. 아들놈이 꼭 붙을 수 잇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신자의 대화는 이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본다. 성경 진리는 세상성과 분리가 됐다.
해리스 지지층의 교회풍속은 이러할 것이다. 백인우파 지배층의 분리된 신성성이 아니라, 세상속 신성성이다.
사회민주적 공동체성을 위한 공동의 협력이 중심이 된다.
그런데, 복음통일에서는 의아한게 있다. 표현을 보면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복음주의 기독교이든가, 기독교사민주의 이든가. 자유진영의 두 패턴과 아무 상관이 없다.
자유진영은 늘 복음주의 기독교와 기독교사민주의의 중도적 국가를 취했다. 복음통일론자는 목회자가 무당신앙의 당골무당이 되고, 당골 무당이 통일이란 세상을 주술창조한다는 생각이 논리다.
이는 1987년 당시에 김대중이란 모택동 유사품에 줄 서서 문화혁명 하자를, 기독교 코팅.
김영삼이란 모택동 유사품에 줄 서서 문화혁명 하자를, 기독교 코팅한 버전의 지루하고 무의미한 연장편이지 싶다.
도대체, 이제 삼성과 엘지가 다시 기술개발 제조업의 지원을 국가적으로 지원 받을 때라고 논해야 할 때,.....
기존의 잘못된 분위기를 사법처리로 리셋하고
문화로 세우고
그런게 있어야 한다.
원불교 통일담론은 기존 질서 기스를 내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복에 복을 더하는 식으로 피엑스 심부름하는 이등병이 빠릿빠릿 못하면 얼차려 시키는 병장 심정으로, 정부를 가스라이팅하는 게 언론이다.
세상에 없는 질서. 논리적으로 자기들이 생각해도 말이 안되는 것을 원한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삼성전자는 3만 전자 그 이하도 가능하다.
결국, 국가적 지원은 국민국가의식의 회복인데, 그 회복은 기존 세력의 소탕 없이는 불가능하다.
윤석열정부는 결단할 용기가 있나? 아니면 삼성전자는 삼만전자 그 이하도 어쩔 수 없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