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문제는 ‘친윤/친한’의 갈등이 아니라, 조갑제류 얼치기 논리에 오염문제-

조갑제기자의 ‘보수주의’에 대한 평론의 99%를 넘어서 518%는 허위사실과 왜곡임을 확정해도 좋다. 보수주의는 지적재산권과 글로벌 스탠다드 개념이 명백한 것이다. 조갑제기자의 글쓰기에 관해서는 ‘숨쉬는 거 빼고 거짓말’ 아니라, ‘숨쉬는 것 까지 거짓말’이란 말이 적절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주의란 개념이 수입된 시점은 2000년도 송두율의 한걸레 출판에서 나온 책이 기원이다. <그 이전에는 군사정권 포스터 글씨>로 “左翼 容共勢力 一網打盡” (그때는 제목에 꼭 한자를 남발했다)쓰는 표현에 대한 좌파의 노이로제 때문에 바꾸어서 쓰는게 어떠냐 하는 차원이다.
양동안 교수는 계속 과거의 용어를 쓰기를 원하면서, ‘익-당-파’로 과거의 용어를 쓰길 원했고(양동안 교수의 생각에는 늘 개념의 정확성이 중심), 조갑제기자는 ‘좌파’라고 말을 해야지 ‘쎈 말’이라고 ‘尙武’란 이름하에 ‘尙巫’(실제로 조갑제의 전투력 타령은 언제나 무당신앙으로 수렴한다)였다.
문제는 ‘센 말’을 하는게 보수주의 일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19세기 미국의 주도층을 생각해야 한다.
미국 복음주의로서 사도바울의 바울서신에 강조를 둔 ‘개인의 신앙 고백’을 이해해야, 미국 보수주의의 개인을 이해할 수 있다.
하이에크는 경제철학이지 복음주의 신학이 아니다. 그러나, 하이에크를 자유경제원처럼 동학신앙 맥락에서 읽는 것이 틀렸고, 미국 장로교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이에크’ 사상에 깔린 합리주의 사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여당의 이름은 공화당이다.
군사정권의 영남 우선주의와, 미국 백인의 개인중심의 신앙을 대충 줄 세워서, 맞다고 봐야 된다 이기야! 했던 것이 군사정권 흔한 방식이다.
강미은 티브이 유튜버의 해석방식은 그런 맥락에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해석은 ‘바이든 지지층’도 역시 기독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만 종교개혁정신에 쌓인 개혁교단 장로교와 척을 진 세력들이 연합한 층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인들이 <일본 신화>를 느끼는 느낌을 트럼프가 바이든 지지층에서 본다. 물론, 어떤 분들에게는 한국인들이 고대중국 역사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강미은 티브이 유튜버의 주장처럼 바라보는게 옳지 못하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 있다.
첫 번째, 한국의 국익이 굳이 미국 자국 내에서도 ‘노론일당독재’ 이미지가 있는 것을 굳이 뒤집어 쓸 이유가 없다. 물론,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통해서 정권 초월적인 민주당 성향의 공무원을 척결하면 달라질 수 있겠으나, 현재까지는 그렇다.
두 번째, 미국 백인우파 시점과 미국 장로교 시점에서 한마디로 말해서 ‘독일인들’에 대한 낯가림 문제가 마르크시즘 문제가 끼어 있다. 트럼프가 미국 우파 사회에서 말하는 마르크스주의 문제는 그런 문제가 끼어 있다.
사도신경 공동체가 아니라, 니케아 신조 공동체도 충분히 한국같은 아시아 교회는 넉넉히 포괄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의료법 사태를 한마디로 말하자.
조갑제기자는 조선일보+중앙일보+문화일보를 논하며, 천도교 신파 매체 동아일보만이 촛불 노선을 취한다고 보았다. 의료법 사태는 미국 백인우파가 아니라, 사실은 ‘개화파 양반 그룹’을 치워버리고, 동학파 양반집단끼리 담합하여 짬짜미하고 있다.
미국 백인우파와 직설적 연결이 어차피 무의미한 이유가 이런 지점이다. 그러나, 아예 서양법 자체에서 엽기적으로 달아난 ‘사쿠라 조(조갑제)의 판단이 황당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일베과학(광주/전남 판사는 편향 판결만 한다)이 깨지고, 무난한 판결로 노무현 이후 헌법 판례에 무난하게 이어진 판단을 했다. 대한민국 사법질서 안에서, 의사들에게 의료법이 엿같을 수 있어도, 그 사법 행위가 불법이나 타당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하이에크는 자생적 지식과 설정적 지식의 이분법으로 내세웠다. 여기서, 한국에서는 <연고온정주의로 휘어진 지식>이 끼어든다. 미국 민주당의 설정적 지식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젠 트럼프도 신앙 뿌리는 다르나, 꽤 많은 설정적 지식이 나온다. 바이든 인플레이션에 엿 먹는 서민 살리겠다면서 하는 게 뭔가?)
유신체제 때에는 영남에서 ’숙종 대왕 만만세‘ 하고 바라는 시점이 무제한 반복됐다.
필자는 ‘사쿠라 조(조갑제 기자)’에게서, 정조는 노론의 바지였을 뿐이지. 이런 시각의 무제한 반복을 본다. 윤석열이 의사들의 바지여야만 한다고 강압적으로 바라보며, 그 시야에 ‘보수주의’란 말을 덧입히려 한다.
보수를 진영론적인 <조상신 관념>으로 바꿔치기하고
진보를 진영론적인 <조상신 관념>으로 대체하는 것은 잘못이다.
공산혁명을 의식하지 않아도 고대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약육강식 종족전쟁 개념을 현재화하면서, 그 중 한 분파에 ‘보수’라고 쓰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서 “미치광이레베루”에 달했다고 본다.
한동훈이 갑자기 뜨지 못한다.
우주 최강+세계 최강 얼치기 보수 조갑제 병이 한동훈에 옮아 버렸다.
한동훈은 파벌과 당파를 세우고, 과거 전라도 노론이 그랬던 것처럼 지도력을 바지저고리로 하는 비전이 최근 보여준 전부다.
사실은 진짜 보수주의 세력은 속이 답답해서 미쳐 버리는 영역이다. 종편에서 패널들로 ‘친한파’들이 조선왕조 사극어법 소환하는 것은, 진지하게 갱기침체와 불황 때 구조조정 첫순서가 아닌지 진지하게 의문한다.
대한민국에서 지배세력은 보수매체에 깔린 동학파 귀족집단의 최대치의 합리적 사유......를 엿먹이고, 의사 입맛에 안 맞아. 하는 속에서 무슨 시장경제가 있나? 물론, 이 사유를 더욱 이성적 합리화로 가다듬게 한동훈이 먹물의 소통력을 촉진했어야 했다. 그게 없다.
군사정권에서는 아무데나 영남 유교가 나온다.
사쿠라 조(조갑제기자)와 한동훈은 아무데나 호남 유교가 나온다.
국민은 동의하지 않은 가치. 모든 형태의 종족신앙으로 종족 외부를 소외하는 것에 거부할 자유가 있다.
결국, 보수세력은 ‘법, 규칙, 규범’을 바로세우는 국가주의 노선 에서만 돌아간다. 그런데, 이 부분은 조선일보 방회장님의 문제다. 원불교 백낙청 촛불 두목의 인민공화국 찬양 지식이 가득메우는데, 무슨 보수세력이 발을 붙이나?
보수와 진보 양 정당이 전라도 유교, 전라도 동학정당으로 하고, 보수유권자를 호구화하는 양식이 벌어지고 있다.
사쿠라 조(조갑제기자)에게 보수주의의 유명책자들에 대해서, 한번 묻고 싶다. 사쿠라 조(조갑제기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 유튜버 거의 전부가 수준이 ‘극한대의 쩌리’다. 필자는 그런 생각을 했다. 경제유튜버, 가령 슈카월드 전석재 수준이 용역을 맡으면 그럴싸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가능한 사람이 다시 말해서 많지는 않아도, 그렇다고 적지 않다는 의미), 이게 안되는 이유를 알거 같다. 한국의 여야 정당의 지배계급은 세도가문에서 이어진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실망하지 않고, 우리사회의 합리적 법 판단을 늘려야 한다.
조갑제기자는 전라도 유교에 대충 서양표현 덧입히고 법치를 알았다고 한다. 법학은 철학의 일부다. 서양철학 공부하고 서양법 논하는 사람과 완전한 다른 이야기다.
조갑제기자는 그 분의 존재 자체가 보수진영에는 너무 커~~~~~~~~~다란 규제덩어리다. 전투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앞뒤 안 가리고 용어혼란전술 벌이지만 아무런 탓을 받지 않는다.
조갑제 병이 걸린 것은 조선일보 논설데스크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 양당을 너무 모른다. 너무 우리식으로 우리 편의로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