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가 없었고 배상도 없었다?
광복이후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다시 시작된 건
1965년 항일 청구권 협정 때부터임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일본 관료로 광복 후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음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과거사에 대해 사과합니다
"양군 간 오랜 역사 중에 불행한 시간이 있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 깊이 반성합니다"라는 성명 발표
1965년 2월 17일
▶1965년 2월20일
한일 외상 공동성명 에서도 일본은 "깊은 후회를 느낍니다" 라는 표현이 들어감
▶1982년 8월 26일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관방장관
1. 일본 정부 및 일본국민은, 과거에 행한 일본의 행위가 한국·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나라들의 국민에게 막대한 고통과 손해를 준 것을 깊게 자각해, 이러한 일을 두 번 다시는 안 된다는 반성과 결의 후에 서서 평화 국가로서의 길을 걸어 왔다. 일본은 한국에 관하여는 쇼와 40년의 일한 공동 공문서안에 대해 「과거의 관계는 유감스러워 깊게 반성하고 있다」라고의 인식을 말했지만, 이것도 전술의 우리 나라의 반성과 결의를 확인한 것이어, 현재에 있어도 이 인식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2. 이러한 일한 공동 공문서의 정신은 일본의 학교 교육, 교과서의 검정에 대해서도 당연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만, 오늘 한국,중국 등부터 이러한 점에 관한 일본교과서의 기술에 관하여 비판이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우호, 친선을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이러한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 정부의 책임에 대해 시정한다.
3. 이 때문에, 향후의 교과서 검정에 즈음해서는 교과용 도서 검정 조사 심의회의 의논을 거쳐 검정 기준을 고쳐 앞에서 본 취지가 충분히 실현되도록 배려한다. 벌써 검정이 행해진 것에 관하여는, 향후 신속하게 같은 취지가 실현되도록 조치하지만, 그것까지의 사이의 조치로서 문부대신이 소견을 분명히 하고, 전기의 취지를 교육의 장소에 있어 충분히 반영 하게 하는 것으로 한다
4.일본은, 앞으로도, 아시아국가들과의 상호 이해의 촉진과 우호 협력의 발전에 노력해 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나갈 생각이다.(역사 교과서에 대한 담화)
▶1984년 9월 6일 히로히토 천황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우며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방일시 궁중 만찬회에서)
▶1984년 11월 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
일본이 당신의 나라와 국민들에게 거대한 고통을 가지고 왔던 기간이 이 세기에 있었습니다. 난 이 자리에서 일본의 정부와 국민들이 이 오류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는 것을 진술하고 싶습니다.
▶1989년 타케시타 노보루 수상
우리가 반복된 기회를 이전에 명료하게 했던 것 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은 과거 우리나라의 행동이 이웃 국가들의 많은 국민들에게 괴로움과 상실을 가져왔던 것을 깊게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회와 해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일들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때부터 ‘평화 국가’로서의 과정을 따라왔습니다. 이 의식과 후회는 특히 우리나라와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반도 사이의 관계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기회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상황을 직면한 것 같이, 과거 관계에 대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큰 후회와 슬픔을 표현하길 원합니다.(일본 국회에서의 연설)
▶1990년 4월 18일 나카야마 다로 외무부 장관
일본은 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된 (한국인)분들이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계획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당한 것과 종전 후에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던 비극에 대해 깊게 사죄합니다.(188번째 외교 국회 회의 하원위원회).
▶1990년 5월 24일 아키히토 천황
쇼와 천황이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우며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릅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분들이 겪은 괴로움을 생각할 때 저는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국빈 방문시 궁중 만찬회)
▶1984년 11월 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
일본이 당신의 나라와 국민들에게 거대한 고통을 가지고 왔던 기간이 이 세기에 있었습니다. 난 이 자리에서 일본의 정부와 국민들이 이 오류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는 것을 진술하고 싶습니다.
▶1989년 타케시타 노보루 수상
우리가 반복된 기회를 이전에 명료하게 했던 것 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들은 과거 우리나라의 행동이 이웃 국가들의 많은 국민들에게 괴로움과 상실을 가져왔던 것을 깊게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회와 해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런 일들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때부터 ‘평화 국가’로서의 과정을 따라왔습니다. 이 의식과 후회는 특히 우리나라와 우리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반도 사이의 관계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기회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상황을 직면한 것 같이, 과거 관계에 대한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큰 후회와 슬픔을 표현하길 원합니다.(일본 국회에서의 연설)
▶1990년 4월 18일 나카야마 다로 외무부 장관
일본은 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된 (한국인)분들이 그들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계획에 의해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당한 것과 종전 후에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던 비극에 대해 깊게 사죄합니다.(188번째 외교 국회 회의 하원위원회).
▶1990년 5월 24일 아키히토 천황
쇼와 천황이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우며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떠오릅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분들이 겪은 괴로움을 생각할 때 저는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국빈 방문시 궁중 만찬회)
▶1990년 5월 25일 가이후 토시키 수상
저는 (노태우) 대통령 각하를 모신 이 기회에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의 행위로 인해 참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픔을 체험된 것에 대해서 겸허하게 반성하고 솔직하게 사죄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수상환영 만찬회에서)
▶1992년 1월 16일 미야자와 기이치 수상
우리 일본 국민은 먼저, 무엇보다도, 과거의 한 시기에 귀국(한국) 국민이 일본의 행위로 인해 참기 어려운 괴로움과 슬픔을 체험된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기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총리로서 다시 한번 귀국 국민에 대하여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방일 환영 만찬회에서)
▶1995년 6월 9일 국회 중의원 결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담은 결의안 통과)
세계의 근대사에 있어서의 수많은 식민지 지배나 침략 행위에 대해 상기하고 우리나라가 과거에 범한 이러한 (침략, 식민지 지배) 행위나 타국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하고 깊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중의원 결의)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수상의 담화문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잘못된 국책으로 전쟁의 길을 걷고,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많은 국가, 특히 아시아 여러나라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명하고,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역사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모두의 희생자 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전후 50년 종전 기념일 담화, 무라야마 담화)
▶1996년 10월 8일 아키히토 천황
이러한 밀접한 교류의 역사 있는 반면, 한 시기에 일본이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큰 괴로움을 준 시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속에 그 일에 대한 깊은 슬픔을 늘 품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국빈 방일시 궁중 만찬회에서)
▶1998년 10월 8일 오부치 게이조 수상
양국(한일)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에 확고한 선린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근거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부치 총리 대신은 20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회고하고,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로 인한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사실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를 표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와 같은 오부치 총리 대신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을 평가하며 양국이 과거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 협력에 근거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표명했다. (한일 공동선언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일한 파트너십)
▶2001년 4월 3일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기간 동안,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식민 통치와 공격을 통해 큰 피해와 고통을 일으켰던 것을 겸손히 인정하며, 이것에 대해 깊은 참회와 진실한 사죄를 표합니다. 이러한 인정은 이후 내각에 의해 계승되었고 현재 내각에선 이것에 관한 변화가 없습니다.(2002년부터 고등학교 학생에게 사용되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방 장관 후쿠다 야스오의 논평)
▶2001년 10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한일 정상 회담)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일본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조선 사람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조일 평양 선언)
▶2003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전쟁 동안, 일본은 많은 나라의 사람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피해와 고통을 야기했습니다. 일본의 국민을 대신하여, 나는 이로써 내가 희생자들에게 신실한 애도를 표한 것과 같이 내 깊은 참회의 심정을 갱신합니다.(전사자에 대한 58기 기념행사에서 국무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연설)
▶2005년 4월 2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일본은 과거의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뜻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관하게 경제 대국이 되어도 군사대국은 되지 않고, 어떠한 문제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2005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일본은 예전에 식민지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에게 막대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며, 제2차 대전에서 돌아가신 국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중략) 전후 일본의 전후 60년은 정말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나타낸 평화에 60년입니다. (중략) 특히 ‘일의대수’의 관계를 가진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와 서로 협력해서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상호 이해와 신뢰에 근거한 미래 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싶습니다. (내각총리대신담화)[9]
▶2006년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총리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가서 참배
▶2010년 8월 10일 간 나오토 수상
저는, 역사를 성실하게 직시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가지고, 솔직하게 자기의 과오를 뒤돌아보고 싶습니다. 아픔을 준 자는 잊기 쉽고, 받은 자는 그것을 쉽게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막대한 피해와 고통에 대하여, 여기에서 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겠습니다. (내각총리대신 담화)
▶2006년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 총리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가서 참배
2015년 8월 12일
▶광복70주년행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
한국방문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까지 꿇고 사죄
순국선열 165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앞에 엎드려서 절을 했고
진심을 죄송하다며 사과했음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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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같은 것은 객관적으로 판단 할 수가 있는 부분이아닙니다
감정에 관한 문제죠
명백한 피해자인 한국이 감정을 근거로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에 양국관계는 계속해서 평행성을 그리고 있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법적 배상 문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 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이 협정을 통해 돈을 받아냄
3억 달러의 무상자금 , 2억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 3억달러 상업차관을 받기로 합의
일본 민간인들이 남한 지역에 남기고 간 22억 달러의 민간 자산도 한국이 취함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1항 - 한국이 돈을 받는 대신 한국과 일본 양국의 양 국민간의 재산,권리,이익 등에 관한 모든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내용
3항- 앞으로 양측이 어떠한 추가적인 주장이나 요구도 할 수 없다고 못박혀있습니다.
▶1978년 2월27일 동아일보 기사 대일청구권보상금 91억 8천만원 지급
한국 정부는 일제시대 피해자들을 찾아 배상금 지불
나머지 막대한 돈은 산업화에 투자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함
이러한 금전적인 배상문제는 한국정부가 반복적으로 인정해왔음
▶ 2005년 노무현 정부 강제징용 배상을 근거로 일본에게 돈을 추가로 요구하려고 했었음
그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이해찬 국무총리 등이 위원회를 꾸려서 7개월여 동안 자료를 면밀히 검토했으나
65년에 청구권협정으로 관련 문제가 모두 정리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음
대신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돈을 더 지불하기로 결정하였음.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7/2019071700078.html
▶국제법을 통해 일본은 한국에게 비용을 모두 지불했음에도
일본 정부와 일본국민들은 도의적 차원에서 추가적인 돈을 주기도 했음
1984년 9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일본총리로서 처음 한국에 찾아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전두환 대통령과 회담을 했음
이 때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발전과 우정을 위해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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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무라야마 담화
당시 일본 내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청구권 협정의 법적인 책임과는 별개로
도의적인 책임을 더 지자는 일본국민의 여론이 있었음
아시아 여성 기금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일본 정부의 돈과 일본 국민의 기부금으로 만든 돈으로
더 이상 법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일본이 마련했던 기금 1인당 3백만엔 (3천만원)
이러한 일본국민의 도의는 한국의 정치 세력에 의해 짓밟혔음
▶최근 위안부 피해자들을 착취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정의기억연대 이른바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이 나서서 위안부 피해자들로 하여금 그 돈을 받지 못하게끔 겁박하였음
피해자 할머니들의 폭로로 드러남
http://raythep.mk.co.kr/newsView.php?cc=21000003&no=21842
돈을 받고 편히 쉬고 싶은데 정대협에 의해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
▶2004년1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의 성명
위안부 할머니들을 정치적으로 써먹지못할까 우려해서 벌인 추악한 정대협의 만행
2004년 1월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33명은 세계평화무궁화회 명의로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심 할머니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임을 인정받은 피해자로, 직접 세계평화무궁화회를 꾸렸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20051908121475654
▶일본정부와 일본국민이 만든 기금이 한 정부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거부당하자
일본 내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함
http://www.nocutnews.co.kr/news/451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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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에서 위안부 관련 단체들이 활약하며 일본에 대한 범국민적 분노를 부추김
시간이 흘러
▶2013년 박근혜정부는 위안부해결을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삼고자 하였음
국제법상 일본에 대한 요구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외교를 통해 여론전으로 나섰음
국제 석상이나 해외 정상들 앞에서 "성노예" 라는 발언을 하며 일본 압박
2014년 3월 2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이롸의 공식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2102100013
▶결국 일본 아베총리는 이 문제를 정리하고자 내한
정상회담 이후 박근혜 대통령 측은 식사도 제공하지 않는 등의 강수를 두었음
http://www.news1.kr/articles/?2476393
병자호란의 청나라군 위안부 환향녀와
수백만명의 희생이 발생한 1950년 무력침공
625전쟁에 생까는 중국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일본
중국에게는 침묵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반일몰이로 선동한다면 중국간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