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삼성 이건희 에세이 : 반도체, 세계 1위에 서기까지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월반해야 한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는 영원히 기술 후진국, 경제 후진국 신세를 며치 못한다."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 업(業)'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선행 투자를 최적의 시기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에서 최적의 투자 시기를 결정할 때는 피를 말리는 고통이 뒤따른다.
87년 반도체 역사의 전화점이 되는 중대한 고비가 있었다. 4메가 D램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 것인가, 트렌치(trench)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두 기술은 서로 장단점이 있어서 양산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어느 기술이 유리한지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 일본의 업체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일본 반도체 회사의 제조 과장들을 저녁 때 만나 새벽까지 토의했다. 이렇게 몇 차례를 거듭했지만 확실한 정답을 얻지 못했다. 반도체 전문가들도 두 기술의 장단점만 비교할 뿐 어느 쪽이 유리한지 단정짓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화해 보려고 한다. 두 기술을 두고 단순화해 보는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것이고, 트렌치는 지하로 파들어가는 식이었다. 지하를 파는 것보다 위로 쌓아 올리는 것이 더 수월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스택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훗날 트렌치를 채택한 도시바가 양산(量産)시 생산성 저하로 D램의 선두 자리를 히타치에 빼앗겼고, 16메가 D램가 64메가 D램에 스택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리고 93년 또 한번의 승부수를 띄웠다. 반도체 5라인을 8인치 웨이퍼 양산 라인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도체 웨이퍼는 6인치가 세계 표준이었다. 면적은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6인치와 8인치는 생산량에서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것을 알면서도 기술적인 위험 부담 때문에 누구도 8인치를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고심 끝에 8인치로 결정했다. 실패하면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되는 만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1위로 발돋움하려면 그 때가 적기라고 생각했고, 월반(鉞班)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고 판단했다.
반도체 집적 기술은 83년에서 94년까지 10년 동안에만 무려 4000배가 진보했다. 그만큼 기술 개발 주기가 계속 단축되고 있어서 단기간에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엄청난 기회 상실을 초래한다. 그래서 나는 단계를 착실히 밟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월반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93년 6월 5라인을 준공했고 숨돌릴 새도 없이 6, 7라인에 착공하여 이듬해 7월부터 가동했다. 당시 각종 전문기관의 수요 예측이나 내부의 자금 사정은 추가 투자가 무리한 상황이었으나, 일본 업체들이 투자를 머뭇거릴 때 투자를 감행하는 공격 경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16메가 D램 개발은 일본과 동시에 했지만 양산 시기를 앞당기고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함으로써 생산력에서 앞설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시장에서 일본 업체를 따돌리고 93년 10월 메모리 분야 세계 1위에 서게 된 것이다.
반도체 사업이 세계 정상에 오른 날, 나는 경영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표가 있으면 뒤쫓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되며, 또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는 나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출처 :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님의 책 '이건희 에세이' 1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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