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 삼성 변화와 개혁의 상징, 프랑크푸르트
이건희 회장은 1993년 회장 취임 6년째를 맞이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졌다. 국내 1위에 만족하다가는 다가올 세기말 대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1993년 3월부터 6월 말까지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해 LA, 오사카, 후쿠호카, 도쿄, 런던 등지에서 10여 차례 이상 해외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숱한 곳들을 다 제쳐두고 프랑크푸르트를 신경영 선포 장소로 택했을까?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라인강 지류에 자리잡은 인구 60만 도시로, 전후 독일 부흥의 상징인 '라인강 기적'의 진원지다. 또한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것은 삼성 임원들에게 라인강 기적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삼성의 기적'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 삼성의 세전이익이 지난 1992년 2,300억 원에서 10년이 지난 2002년 말에는 15조 원으로 무려 66배나 증가한 것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3년은 유럽연합(EU) 출범을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세계 각국 기업들은 유럽시장 공략을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니 꿈틀거리는 도시 프랑크푸르트가 LA나 도쿄에 비해 변화와 개혁의 상징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가 물류 및 금융의 중심지로서 도시 기반 시설이 잘 정비돼 있다고 판단하고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사회간접 자본 시설을 임원들이 직접 보고 배우라고 지시했다.
LA나 도쿄가 배제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은 소니, NEC 등 일본 가전업체였으며 이들의 주력 시장은 미국이었다. 즉, 일본이나 미국에서 신경영을 선포함으로써 벤치마킹 대상이자 경쟁업체인 일본 가전업체들을 괜스레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삼성 신경영은 이 회장이 오래 전부터 가슴 속에 묻어둔 계획에 의해 진행됐고 삼성 임직원들은 이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삼성 홍보팀도 언론들이 지엽적인 세탁기 불량문제를 크게 보도할 것으로 보고 공세적인 전략으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신경영'으로 크게 부각시켰다. 때마침 YS 정부는 1993년 출범과 함께 '문민정부'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내걸고 '신경제 100일 계획'을 마련 중이었다. 정부가 추진했던 신경제와 삼성의 신경영은 당시 절묘하게 코드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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