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1975년 8월 17일 사망


장준하는 재야 대통령으로 불리던 인물
사상계발행인.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김대중이 이어 차기
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
죽기 20일 전에 김대중과 만나 향후 거취를 두고
회담했슴.
시체는 부검은 안하고 의사들이 관찰만 했는데
뒤통수함몰과 팔엉덩이에 주사자국만 발견..
매장하고 수십년이 지나 파묘하고 유골수습과정에서
두개골박살의 흔적을 발견.
장준하는 기독교신자이자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
광복군에서도 신익희계열로써 김원봉과 대립.
남한내 빨갱이들이 장준하가 야당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싫어 죽이고 박정희대통령에게 덮어 씌움.
장준하가 모티브가 되어
노무현 백남기 노회찬 박원순
의문사 유족의 부검거부행위가 토착됨

장준하의 아들은 광복회장 하다가 파벌싸움에서 중공빨갱이 계통에 밀려나서 비비탄권총으로 저항하다가 쫓겨남.
장준하가 쓴 돌베게란 책을 아들이 재출간 했는데
김원봉과 공산당계열 조선인들이 저지르는 집단쎅스묘사처럼 김원봉의 치부는 다 삭제해버림.
아들놈도 반 박정희 반 박근혜 선전선동에 이용당하고 팽당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