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도 인우보증이 나오는 세대가 있습니다.
 
단 한권의 조직신학책도 안 보신 세대의 신앙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신앙이 답답하면서도, 이분들을 지체로 인정할 수 없다면 내 신앙이 잘못된 것이죠. 신앙은 인문학적으로 말해서 주관적이라서 실증적일 수 없습니다. 평생을 신앙공동체에서 함께 한 분들이, 자신의 절절한 신앙을 검증한다. 언제나, 저보다 20세 이상 윗세대 기독교인은 꼭 신앙의 인우보증’(이웃이 보증서주는)나옵니다. 이분들의 신앙의 경주에서 평생 그것은 주님께서 옳다고 하실 겁니다.
 
사실, 모든 기준은 성경이고 성경의 하나님이 저를 판단한다고 봐야 맞죠. 오늘은 양심에 찔릴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심대로 하려고 하는데, 그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교회공동체는 쌍무계약인데 편무는 아닌가? 양심대로 하려는 이행을 급수정하고 약식으로 자기 만족수준으로 바꾸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믿음대로 삶만큼 중요한게, 교회공동체 내부에서 상대도 내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대로 어느 정도 행해준다는 기대감>입니다.
 
필자가 원불교 백낙청에 내란죄 처벌을 주장하는 이유도 최소한 법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법을 믿고 따를 가치가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동학신앙 교리에 섞어서 쓰는 그런 뜨거운 신앙을 바라보면서, 네 네 네 좋습니다. 해드리고 싶어요. 그 분들은 결국은 저를 보면서, 조상숭배로 오래전에 만세전에 사대부 귀족을 볼 겁니다. 평생 조직신학 한권도 안 본 세대는, 아랫세대로 배운 세대들에 마음껏 칭얼댈 수 있고, 저는 이분들이 젊은 세대에 양반가문처럼 연기를 해드려야 하는 엿 같은 상황이 오는 겁니다.
 
이 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교의 바로잡기는 파워 권력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분들 배려에 모든 가치를 다 바치고, 배운 젊은 세대들을 이 노인세대가 입벌리면 난세의 영웅처럼 감 넣어준다고 믿는게 지속됩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각자 다른 환경에서 신앙하니 다르게 주님을 맞습니다만,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교회공동체 지도부의 선택에 있습니다.
 
저는 이 분들. 70년생인 저보다 20세 이상 연상. 40년대생 기독교인들의 기억 속에서처럼, 신앙과 연결된 학문이 한국 땅에 없는데 미래에 열려야 한다는 군사정권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다 실력자가 있는데, 신앙이 성숙하길 거부하는 이런 분들 때문에 등판이 안되요.
 
교회출석하시는 노인들이 그 옛날 배운 사람자체가 양반귀족이었던 때를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들에게 칭얼대는 식으로 보는데, 사실은 젊은 세대는 처참하게 좌파쪽과 보수 노인사이에서 양쪽에서 가스라이팅당한 겁니다.
 
미국이 한국에 말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한미동맹은 쌍무계약이다. 한쪽만의 일방의무가 아니다. 신앙의 기준은 인우보증이 아니고, 국제관계의 기준은 씨족신앙이 아닙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미국교회에서도 평민 신앙은 절대 교의에 다 맞다, 이런 거 아닙니다. 열심히 출석하며 뜨겁게 신앙하면 그 자체로 인정입니다.
 
한국교회의 지도부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