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신앙은 국가주의보다 더욱 폭력적이며, 북한공산당식 폭압신앙이듯 국가독재든 불건강함의 토대가 된다.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 배가 침몰하는 데, 바이올린 연주자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찬송을 연주한다.
 
친윤 이철규의원은 대구동학도 종족주의를 그 순간에 말할 텐데, 필자는 민족복음화운동과 연결된 기독교적 건국론을 강조한다.
 
수평적으로 법 앞에 서 있는 국민공동체는 법앞의 평등으로 존재한다.
 
사실, 좌파 혐오로 치면 바이든도 좌파요 미국 민주당도 좌파요, 해외에 미국 공화당과 색깔을 달리하는 유럽 좌파 이야기도 많다.
 
반공세력에 가장 원초적인 충격의 경험인 공산당의 반동분자 박해경험은, 곧 공산파의 한 종족 권력독점의 중국문명에 나타난다. 이 문화를 써서 우파라고 논하는 어법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산당 반동분자 척결로 쉽게 바뀐다.
 
좌파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땅에서 이념 지형은 원불교 공산주의가 문제다.
 
그런데, 원불교 신앙으로 국가독재에 편들다가 김영삼 이후에 원불교 호남동학공산주의 편들면서, 과거를 감투유지만 쓰려는 분들은 아예 보수측의 이념 진흥을 안한다.
 
자신은 호남 동학파 원불교 공산주의 지배체제에 타협해서 원불교 촛불두목 백낙청의 형법 내란죄를 아예 논의에서 배제하고서는, 진중권 좌파론?? 진중권이 좌파로서 혐오적 어조를 안 쓰는 의미라면 인정한다. 그분은 한번도 우파정치철학으로 입장 바꾼게 아니다. 문제는 이철규 자체가 우파철학을 가졌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중권은 좌파사상이지만 대학교수신분으로 이성적으로 논하는 것에서 보수층이 대변된다는 느낌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보수측에서 인문학으로 대학가에 뿌리가 뽑히고, 박정희 조갑제 책장사 빼곤 전멸지경에 이르렀다. 이 판국에 조갑제를 능가하는 분들이 아무도 제도권에 못 있는데, 이로 인해서 국힘이 정치생명체로서 존속이 위험한데, 진중권이 도와주는 상황으로 보는게 사실에 맞을 것이다.
 
헌법의 국민기본권인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씨족신앙에서는 작동이 안한다.
 
진중권은 보수에 이웃으로 외지였지만 긍정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인정하는 속에서만 국민기본권이 작동한다. 그런데, 이것을 몰랐다면 진중권은 호구로 이용했다는 말로, 굉장히 모멸적으로 느끼게 될 수 밖에 없다. 이 간단한 일자체를 사고를 못한다.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사회의 약속에 깔린 합리성을 수호하는게 보수주의자다.
 
어제 어느 목회자가 경천애인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예수계명과 같닥 했다. 나무위키에도 그 목회자 같은 헛소리가 있으나, 경천애인 검색하면 성경과 아무 상관이 없게 나온다.
 
영적 전투란 말도 있듯이, 교회공동체는 신앙수호가 지켜야 할 매일의 전투다. 여기서, 목회자가 <똥물에 튀겨죽을 똥학>을 은근히 우위로 놓고 하면, 사도바울 교회관에 따라서 목회를 그만둠과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
 
사회의 약속이란 약속은 안 지키고, 니들은 우리를 무조건 편들어줄꺼지?
 
약속을 안 지키는데 무슨 보수지?
 
보수우파는
 
보수진영의 시장경제 인간 자체입니다. 인물 키우고
법치주의 인간자체입니다. 인물 키우고
그런 서양학문 진흥을 안한다.
 
철저하게 19세기 세도가문 감투질로 간다. 그런데, 감투질 시대를 정치사회학으로 접근하면 경제위기가 올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대구경북 붕당 사대부 언어로서 한동훈 외지인말이면 이해라도 한다. 근대정당이 이게 뭔가?
 
보수주의자는 자기를 통해서 세상에 진실이 퍼진다고 믿는다. 좌파는 노신사상으로 자기와 다수의 길이 만나는 공동체로 본다. 보수주의자는 그렇지 않다. 자기를 통해서 진리가 퍼진다고 본다.
 
내 평생에 나에게 기회가 안와도 좋다.
 
언제적 운동권인가? 헌신적으로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이끈 분들에 대접을 해야 한다고 나는 말을 한다.
 
이철규씨가 생각하는 그 한심한 수준의 우파 판단,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외지인 이름으로 좌파 개념이 답답하다.
 
냉정한 말로 권력 밝히고폭력 좋아하면 글로벌 기준으로 모두 좌파다. 한국에는 즉 글로벌 단위로 보수가 약해도 너무 약하다.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침해가 너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