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뭘까요?-

조선유학사에서 매우 반복된 공식이 있다. 당쟁에서 패배해도 후손을 향해, 당쟁에서 승리를 해도 후손을 향해 글을 남기려 한다. 특히, 당쟁에서 패배한 이후에 남기는 글은 핵심적 쟁점이다. 그러나, 이는 양반신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일반평민에겐 직계 조상은 드러내놓고 외부에 말하기 드러내기 그럴 수 있다. 큰 성과를 못 내서 그럴 경우도 있고, 아니면 ‘가짜 족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평민이 결혼도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문학을 통해서 공부를 시작할 때 본받고자 했던 분들은, 냉정한 말로 전부 씨족사회 기준으로 ‘남’이다. 그리고 <독거노인>이 예약된 모쏠아다는 다음대가 없다.
필자는 안티조선의 대학가 장악에서 밀린 것이 한스럽게 안타깝다. 보수정권이 되도 이 진실규명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 나의 20대는 대학에서 김동리 소설가가 임헌영씨를 박사논문 못 쓰게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지식 먹물의 사회였다. 그분들이 나에게 박사논문 못 쓰고 안티조선에 밀려나게 했다. 분명히, 나는 능력으로 모자라는 사람 비하하기 좋아하는 일베 정게에서 ‘찐따력’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 가졌다.(특히, 일베정게에서 모쏠아다 진따 캐리커쳐 그릴 때, 본인 그렸나 싶을 정도로 본인과 닮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분명히 책을 많이 볼 만큼, 결혼이 가능할 능력자와는 거리가 멀겠으나, 모쏠아다로 독거노인이 예약된 쪽에서는 비참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양심’을 지키며 살라고 허락하신 상황이 아닐지?
삼류대학 출신이니 유명한 먹물과는 연고가 없다. 씨족 족보도 아니고 학연-지연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예수 믿은 분들은 지식에서 신앙을 보인다. 특히, 제일 인상깊게 다가오는 부분은 분명히 그 시절에 양심을 지키기 굉장히 어려웠을 순간에, 양심을 지키려 노력한 부분이다. 나의 노력은 후대에 예수를 믿은 분들에게, ‘예수신앙’을 통해서 파악되듯 파악되리라 믿는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게르만족은 유대인을 증오했다. 시장경제를 유대인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시장경제를 유대인이 주축을 이룰까?
그들은 시장경제에서 ‘화폐’로 나타난 신호들이 하나님과 언약된 약속으로 본다. 균형으로 수반하지 않을 때 처하는 재앙에서 하나님 심판을 본다. 그들은 누구보다 신앙적으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갈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언어는 기독교신앙이 아니다. 서양인본주의이나, 그 인본주의는 신앙에 서 있다.
반면에, 한국경제의 주축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지배했다. 군사정권에서는 왕이 이끄는 지배체제에 편을 드는 조선왕조의 왕권제와 얽혀진 경제가 나타났다. 서양인문학으로 보면 유신체제가 재벌들에 금융혜택을 준 것일 뿐이다. 그래도 그때는 재벌들이 국가의 재원을 몰빵 받았다는 책임감이 있던 때였다. 그러나, 군사정권 내내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지배했다.
<재벌의 양적 팽창=유교 대동>이란 가치관이 시장경제 맞아?? 그 당시에 외면상으로는 예금을 강조하는 것이 무척 시장경제의 토대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나, 재벌에 금융혜택을 위한 국민호구화의 한 양상일 분이라는 지적도 만만찮았다.
지금은 전혀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투자안하면 가난해진다. 투자해라. 서울중산층이 얼마? 재산 10억. 투자해라. 안 하면 거지된다. 그렇게 유도하면서 부동산을 잡게 한다. 그 부동산 잡은 비용은 금융으로 들어가서, 신용팽창의 도구가 된다.
군사정권은 예금자---------평민
대기업은 만팡진 대출자---- 귀족
의 유교적 신분제를 전제했다.
빽이 없는 일반인은 꼭지에 물린다. 신용팽창 불쏘시개---평민
빽이 있는 이들(심층전문 정보)은 피해 없는 재산증식 ---귀족
군사정권은 시장경제가 민법 기반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여전히 민법관계가 없다. 시장경제가 규제철폐가 전부인 것처럼 논해진다.
군사정권은 재벌들이 유교적인 책임이라도 있으나, 지금은 재벌들이 경영책임으로 심오한 어떤 것이 있다는 이미지를 가진다. 군사정권의 경제는 유교적 애국주의에 토대됐으나, 김대중체제의 경제는 허경영의 불로유, 혹은 다미선교회 종말론 성격이 종합된 신앙유형과 얽혀진다.
일베정게에도 2년 뒤에 통일이 된다고 주장한다. 꼭, 표현은 道敎로서 ‘되다’(노자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데 좌우지간 믿어!)로 한다. 군사정권은 이성언어가 지배했으나, 반론을 틀어막았다. 이제는 저학력 노인들의 무당신앙을 동원하여 반론을 통제한다.
우파 부동산 유튜버 중에서도 양심윤리 없는 떡상론주의자들이 많다. 그러나,.....
1) 이성적으로 더 비싼 가격으로 사줄 사람이 없다.
2) 좀처럼 큰 폭으로 수정되기 어려운 금리 때문에, 나아가서 부동산 시장에서 ‘크래쉬’가 나타날 위험을 은폐하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은 유교적 제왕으로 책임 밖인데, 이제는 김대중체제는 진인 정도령 수준으로 사이비종교 교주로서 무책임의 영역에 달한다.
이명박 때, 박근혜 때,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
한결같이 군사정권 때 쌓여진 정부 신뢰를 부동산 이익으로 판다. 군사정권도 조선일보, 지금도 보수는 조선일보겠으나, 과연 지금 강천석 논설위원과 김대중 논설고문 같은 강력한 호남동학파 색깔이 군사정권 있었겠는가?
일본 부동산 잃어버린 30년의 시작부분을 연구하면서, 필자는 신뢰 붕괴가 나타나는 지옥행 열차를 바라본다.
한국은 군사정권의 유교지배체제에서는 기독교인은 비하만 했고, 지금처럼 원불교 증산교연합군인 민주당 김대중 지배체제에서는 기독교인은 완전히 외면대상이다. 그들이 도교의 조물주 언어로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하는 것이 책임을 1이라도 질 수 있나? 책임 질 영역에 달하면 전방위에 사법부에 원불교 판사들의 정치판결로 짜고칠 고스톱을 보인다.
돈으로 살 수 없는게 있다.
시장에서 물물거래가 토대가 된 공적 신뢰다.
그 신뢰는 전적으로 오로지 그 시대의 먹물에 하나님이 책임을 부여하셨다.
군사정권에서도 ‘양심’이란 말이 있었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누구나 그 시대에 양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양심’이란 말을 지킨 분들을 높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일베에서도 비하받을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찐따다. 출석교회라고 다를수 없다. 고등부에서 봉사하려 했으나, <찐따 선생 싫어요-비운동권이라 정치 피해당한 사람의 억울함은 안 보이고, 왠 사회 부적응자가 우리애 주일학교 선생?>의 분위기였다.
물론, 내 이름이 곧 양심은 아닐 것이다. 70년대생들은 많이 공부한 사람이 정말 많다. 서로간에 의지하면서 양심을 향한 경주가 될 수 있다.
황우여씨가 대한노인회에 찾아가서 90대 비례의원을 이야기했다.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라고 비판하면, 페이스북은 한국귀족에 뭐 먹었는지 아니라는 내가 ‘스팸’이란다.
대공황기에도 지금과 비슷하다. 부채에 기반된 자본시장 커짐과 그에 기반한 높은 소비력을 구사하다가, 자본시장 폭락하면 가난해진다. 지금 진짜 걱정해야 할 때는 그 때 사회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지옥행 나락을 가지 않도록 하는 마음의 준비다. 물론, 권력 가진 분들이 내가 아니라고 한다고, 하고 싶은 내용을 안할 분이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행하는 기성세대가 있네. 정말로 다음 세대에 그 지식을 믿게, 믿어지게, 삶으로 보여줘야 할 의무는, 오로지 70년대생 고학력자들에게 남아 있다.
저출산 극복의 유일한 힘은 결국 ‘돈으로 살 수 없는 사회의 공공도덕’회복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군사정권에서 저임금 소외지대를 외면하는 경제성장을 질책했던 사람들이, 김대중체제에서 자산시장꼭지에 물린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자기들만 예외일것이라고 계속 똑같은 시나리오로 ‘사이비종교’ 신자들에게 이상한 거 강매하는 기획의 반복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을 사회기득권이 무너지지 않을 노동공급으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약자서민이 사회의 공공성을 믿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많이 배우도록 허락하신 분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양심따라 걸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