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분야에서의 돈 복사기가 임계점을 지나서 유동성 블랙홀로 바뀌면, 하나님을 떠난 한국사회의 죄악이 드러날 것이다.
-도대체 왜 군사정권 때 한국교회는 샤머니즘=부도덕을 강조했든가?-
 
 

필자는 지금 신앙으로서 기독교를 논하는게 아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근간에 깔린 서방자유진영 국가질서 이면의 것을 말하는 것이지, 기독교의 종교갑질이 돼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적으로 구원은 예수안에만 있지만, 자유민주체제로서 국가 꼴을 이루는 자유민주체제-시장경제-법치주의윤리는 기독교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러번 강조하지만, 한국이 law으로 번역함은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佛法을 유대법과 로마법의 번안으로 족하다는 일본판단을 그대로 가져다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자체가 시장경제나 법치주의를 진흥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게 연결된 해석을 퍼뜨림으로서 국민의 한 몫으로 불교가 자리할 수 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유교나 개벽신앙도 법치국가에서 국민을 이루는 영역으로 서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글로벌 단위의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 사기단 같은 액트지오에는 사기당할 돈이 있으면서, 국가에 꼭 필요한 기능에는 돈을 안 쓴다.
 
유신체제를 이야기한다. 공자의 논어로 상징되는 유교체제로 왕 중심을 내세우고, 그 왕은 국가안보와 대기업 금융이익을 책임졌다. 군사정권 유신체제를 기억하는 세대들은, 당시의 기성세대(현재의 70-80)가 권위주의에 숨막히다고 하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금융혜택을 본다면 망할 기업이 있겠느냐?
 
민주당 지지층은 이 때 기억으로 영남 유교를 독재로 상정한다.
 
김대중의 카드대란에서 나타난 유동성 확장을 노무현 때 건설분야에 때려맞추고, 후진타오의 중국형 부동산경제를 수용했다. 이제, 군사정권에서 노동의욕 고취로 규제된 부동산투기를 정부가 적극 장려하는 시대로 왔다. 그리고, 계속 부채버블로 아파트 가격이 끝없이 올라가면서,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는 생각을 만들었고, 한국의 건설사에 부채를 끼고 아파트 투기자금이 들어가고, 건설사와 금융에 들어간 부채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한 자금을 토대로, 유동성 확장이 벌어졌다.
 
유신체제는 공권력 기반하여 대기업에 망하기 어려운 압도적 금융혜택을 주었다면, 김대중체제는 원불교가 주축인 동학신앙 귀족층이 많은 건설사에 돈 복사를 할 수 있게 부채들고 부동산 잡기를 권장했다. 유신체제는 권위주의 문제이고, 김대중체제는 결국 바지저고리 지도자의 신용을 담보로 세도정치가문의 이익 향유로 나타난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공공화. 바지저고리 임금 끌고 이익먹고, 안되면 세금으로 덮고)
 
교회장로 출신인 김기현씨도 돈 복사기로서 건설영역이 쉽게 유동성 먹는 하마로 뒤바뀌는 사태를 감을 못잡는다. 아파트 가격이 곤두박질 치던가? 건설사의 부실채권이 부동산가격을 끌어내리는 사태를 가면, 정신없이 기한의 이익 상실’(은행이 개인에 돈갚으로 재촉)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유신체제는 전두환의 광주민중항쟁 강경진압의 과잉금지원칙 위반의 도덕 문제를 수반하며 무너졌다. 강도를 잡읍시다, 라고 말하면서 전국민을 두들겨패는 것은 정의로운가? 이런 식의 문제제기였다. 김대중체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아니라, 동학의 비밀결사 조직을 일본제국주의가 아니라 자국민을 상대로 속이는 기망행위로, 동학원불교 귀족이 돈 복사기의 수혜자(이재명 대장동도 마찬가지)가 되고, 일반국민을 피해자로 놓는 것의 시스템적 형법상 사기 문제가 있다.
 
김대중체제의 돈 복사기는 결코 기획자의 잘못 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속신앙 위주로 극도의 도덕 없는 이익중심의 경제와, 이에 대하여 욱!하고 뒤집어 엎기 좋아하는 민주당 혁명 노선의 연대속에서 나타난다.
 
돈 복사기가 언제든 유동성 먹는 하마가 될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도 귀족들이 감투싸움 하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50대 이상은 누구나가 유신체제 때 지식인들이 했던 일들을 기억한다.
 
한국사회는 이웃에 윤리를 지키는 선이 아니라, 그 선을 넘어서는 성장을 좋아한지 꽤 됐다. 도덕 없는 물질성장으로 모든 것을 땜빵하는 일이 상당히 누적됐다. 그런데, 그 기제가 영원하지 않고, 하나님 심판으로 나서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누구보다 훌륭한 교회가는 사람을 보유한 대한민국은 성경의 하나님을 떠났고, 토착신과 다른 복음에 침윤되는 일이 나타났다.
 
국민이 원하는 일은 단순할 수 있다. 한국은 다시 가난해질 수 있다. 그래도, 그 과정이 이제까지 살아온 국민의 대졸 이상의 상식에 맞다면, 그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정권 전태일 억울함 못지 않은, 광주항쟁 무력 진압 전두환에 대한 광주시민의 억울 못지 않은, 우리사회에는 어마어마한 억울함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조선일보 가이드라인 지키느라 하나도 못했다. 결국, 돈 복사기가 아니라 유동성 먹는 하마로 곧 바뀐다. 그때를 전제로, 이승만 자유당 때를 미화했던 김영삼 정권을 세운 동학 할아버지들의 30여년 고집이, 다음 세대 등골뽑아먹은 죄악이었다는 최종판단이 필요할 때가 됐다.
 
(글을 적은 이유)
 
 
 
이승만 기념관을 가장 반대하는 쪽이 불교라고 한다. 사실, 불교는 민정당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한 신앙이면서, 해방공간 남로당 때는 원불교와 더불어 남로당 공산파였던 과거가 있는 종교다. 한국사회에서는 유명인사들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면서, 모범이 되는 어른을 본 일이 까마득해졌다. 이게, 다 조갑제 지만원 덕분에 보수의 어른이 씨가 말랐다. 보수의 윤리가 씨가 말랐다. 보수정권에서, 공정과 상식을 중시하는 서울법대 정치인이 지배하는 순간조차도, 중요한데는 돈이 1원도 쓰이지 않는다. 국민소득에 걸맞는 국민의식을 가진 시스템이 중요할 때가 됐다. 정치인은 이를 계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