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조갑제기자를 한국현대정치사상 역대급 ‘사쿠라’로 부르는 이유-
삼권분립은 신앙적 표현으로는 삼위일체의 법철학적 표현이다. 결국, 삼권분립은 제한정부로서 제한이라는 군자의 덕을 행사하는게 아니라, 삼권분립은 국가를 하나의 교회공동체로서 주님의 공동체를 어느 누구도 독점 못하게 하듯, 국가를 공공성으로서 돌아가는 것에 어느 누구도 사적 행위로 독점못하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가를 우상이라고 보는 신앙은 일정 수준은 정당하고, 세상적 현실에서 남로당 인민공화국 후손이 헌법질서를 부정하기 위한 명분적 핑계로 악용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일정 수준 정당하다는 것은 세상적 국가가 성경의 하나님과 비슷한 논리구조로 설정하여, 세상과 분리되는 의미로서 바리새적 기독교인에게는 우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독교국가가 자국을 우상으로 무정부주의로 사는 신자는 거의 없다.
君子不器로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 부서지면 큰 흠으로 보는게 중국문화권의 귀족상징이다.
부산 경남권 동학 할아버지들의 지지를 받은 조갑제기자는 그런 방향으로 동학신자 할아버지들의 감정에 연결하되,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최대치의 엿먹임을 시도하는게 조갑제기자다.
물론, 사실적 역사로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 기득권자로서 영남 노인먹물의 시점으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역사란 것이 결국 사실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체험의 기록으로 해석의 방향성도 중요하다.
1987년 6월 10 민주항쟁으로 서양법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찬양하라고 띄우고서는, 정작 그 문제로 권력을 장악한 조갑제기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의 조소앙의 육성교의 성인군자론 프레임으로 박정희를 띄우고 있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더도 덜도 아니라,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제단이 무너지면 반복하듯, 그 연장선으로 서양의 부르주아 계급이 문화를 지배하는 영역으로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간절한 애원함을 처참하게 뭉개며, 여야 모두 동학질서로 하되 기독교인은 아무것도 안해줘도, 저절로 난세의 영웅처럼 그분들을 위해 일해주는 엽기적 가정법이 진절머리 난다.
토착화신학파들이 잘 보았듯이, 유불선 조상숭배 신앙에서는 권력독점이 상식이다. 권력독점이 아닌 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다. 권력독점하기 위해 피비린내가 상식이고, 노예계급 짓이기는 게 상식이다.
옥성득교수가 기독교인이 아니고 교회공동체에 축출해야 한다는게 이런 한국사의 맥락에 있다.
동시에, 친윤이란 분이 사극 여인천하의 정난정의 독점을 위태롭게 하는 한동훈을 견제하는 시각은 삼권분립을 알고 있을까 싶다. 결국, 삼권분립은 소통으로서 공적 언어의 토대를 전제한다. 조상숭배신앙은 꺼져! 안하면 애국심은 존재할 수 없다. 조상숭배와 함께 하는 애국심은, 우리부족이 선점한 잠시간의 상태의 영원화를 말한다.
조갑제기자는 한국현대정치사에서 역대급 사쿠라다.
수 많은 자료, 수많은 인재. 하나도 못 쓰게,.... 당구 30의 눈으로도 보이는 모든 스리쿠션 길 다막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