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재건축 이후의 시대
-시장경제에는 倫理가 있었다-
 
 
지식인은 자신이 믿는 신앙의 사제다. 라는 말을 지금처럼 실감할 때도 없다. 물론, 한참 떠들면 아주 좁은 의미로서 특정 교파 교단 빼면 개새끼 놓는 페친을 본다.
 
유시민의 책을 전시용으로 꽂았던 KBS 박종훈기자의 재건축 이후의 시대 주장에 관한 유튜브는, 일정부분은 동의하지만 일정부분은 동의하지 못한다. 경제유튜버가 정치유튜버처럼 너무 소아적이며 자의적인 기준으로 현 정부를 공격한다.
 
군사정권 때부터 기독교인들은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지 이 찬송가를 말하면 단번에 알 것이다. 그때, 열배 레버리지 선물 거래같은 피에프가 어디있나? 오로지, 근면성실의 문제다. 사쿠라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로 성인군자 박정희 임금 통치력. 이 말도 전부 다 뻥이다. 그때 하면 된다라고 그랬다. 시간은 금이라고 그러고, 시간을 미래세대가 선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부채 레버리지로 일으킨 자본시장을 꺼뜨리지 않고 가는 식에서, 박정희 때부터 일관된 경제철학으로서 선부론차원으로 경제가 먼저 일으키면, 도덕이 뒤 따른다는 가치관이었다.
 
그러나, 최태원이 노소영과 김희영의 중도노선 서다가 노소영을 버리는 것을 보자. 그리고, 민정당 시대를 구분지어서 버리며, 그 이후의 민주당 역사에 충성맹세 잘 했는데 억울하다는 식의 멘트를 본다.
 
미국이 중국을 비판하면서 선부론의 노선에서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도덕이 결코 뒤 따르지 않았다.
 
먼저, 부를 키우자, 먼저, 파이를 키우자, 먼저, 부풀리자.
 
슈카월드 전석재도 슈카코믹스 채널을 통해서 주장했다. 시장경제에는 윤리가 있었다. 시장경제는 씨족이 완전히 다른 이들끼리의 상호신뢰로 돌아간다. 이재명의 대장동은 화천대유 종족주의의 문제다.
 
군사정권의 양적 성장은 대통령 주변의 인사들에 먼저 돌아가고, 그 나머지가 순서대로 내려갔다. 지금도 본질은 비슷하다.
 
워낙 경제이론을 무시한 양적 팽창이기에 경제이론대로 가면, 못 견딜 사람 많다. 폭동 난다. 그럴 분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이 다 소진된 이후는? 물론, 한국정치처럼 설득력 젬병인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이 다 소진되기 전까지는, <아닐 수 있잖아> <아닐 수 있잖아>하는 반론에 자유롭지 않다.
 
박종훈기자는 기자영역에서는 경제박사이나, 이 꼭지에 한한한 경제유튜버가 정치유튜버처럼 지적한다. 국힘이 이런 부동산 철학이라고 민주당이 다르지 않다. 똑같다. 그런데, 둘다 똑같은데 한쪽을 까면 다른쪽이 괜찮아보이는 그 착각은 이젠 그만둬야 할 때다.
 
시장경제 본래의 倫理.
 
결국, 성서적 노동관의 회복이다.
 
지금은 압도적으로 고대중국의 부역관점이 앞선다. 성서적 노동관을 발도 못 붙이게 한다. 양적 팽창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경제영역에서 출렁이면서 곡선으로 바닥을 가는 것을 못 견딘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비쳐진다.
 
 
작금의 민주화운동이 고의로 은폐하는게 있다.
 
강천석 논설위원 포함한 모든 개헌론자는 김수환 추기경님등 민주화운동에 기독교진리관을 주장한 모든 분의 망각이다. 최태원 같은 민주화세력의 자의적 필요에 따라서, 과거의 분들을 망각에 쳐넣어야 한다고 본다.
 
오랫동안 잊혀왔던 진리.
 
19876월 항쟁에서 보수민주화세력은 당시 민정당 국민윤리 기준으로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을 논했다. 과연, 지금 그렇게 그 약속을 지키고 있나?
 
지식인은 지식을 떠벌이고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진리를 추구함이 남에게 믿어지게 하는 힘을 가지는 사람이다.
 
양적 팽창으로서 부도덕한 경제가 언제까지 제1순위인가? 개도국스타일을 쭉 유지하다가, 다시 그 스타일에 맞는 수준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그 이전에, 오랫동안 꿈꾸었던 선진국수준의 민주시민윤리로서 경제관을 수행하자는 생각이다.
 
시장경제이론의 배후에는 이스라엘 코드가 있다.
 
양적 팽창으로서 박정희 때부터 나오고, 노무현 때 부채레버리지로 다시 양적 팽창 펌프질 나오고, 미국이 중국을 때리면서 도덕없는 양적팽창 경제의 허망을 이야기할 때, 미국이 한국 비판은 뺐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시장경제주의자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자다.
 
나는 이 찬송에 얽힌 하나님 역사를 부정해서 안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