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쉽게 글을 써야 하는가? 서양철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20대에는 서양철학책 (번역책) 문체에 빠져서, 어렵게 쓰는 표현을 좋아했다. 서양철학책이 어려운 말로 쓰는 표면적인 어법을 파고 들면, 쉽게 구어체로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특히, 책을 안 읽은 일반인 시점에서 인문학 전문가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실감했다. 문어체는 기본적으로 ‘재수가 없’고, 해설없는 전문용어는 역겨워진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88년 무렵의 김대중 김영삼 진영에서 민중진영의 메시지인 원불교 김용옥이가 ‘나의 도는 쉽다’(吾道는 易也)의 반복이기 쉽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의미로서 사회가 이해 못해도 계속 떠들 수 밖에 없는 주제가 있다.
박정희, 전두환의 권력집중만 견제하지 말고,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에게도 무한반론의 자유로서 집단화를 견제해야 한다. 일베 정게는 숱하게 반복되는 메시지가, 제왕학 공부를 못해서 윤석열이 전부를 못 읽어서 우리가 피곤하지. 라는 동학 노인의 이야기다. 그런 생각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정반대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온 우주를 알 수 없고, 모든 인간은 부패할 수 있다. 공권력 남용만큼 아니 더 위험한게 ‘당파’다.
사도바울이 교회에서 예언자들을 상호검증 시키게 조직하려 했듯이, 자유민주사회에서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조선시대 역사는 검증하는 사람을 무엄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실패해도 노예는 그냥 뒤집어 쓰면 됐다.
군사정권은 공권력 남용하는 왕의 문제점이다.
지금은 민주화했다고 하나 원불교 백낙청파벌에 너무 과잉 되게 집중됐다. 얼마든지 사람은 악해질 수 있다. 특히, 1인의 권력 남용 못지 않게, 파벌로 집단화되면 약자를 밟을 힘이 주어진다. 미국은 의회를 미쳤다고 나누어 뽑나?
모든 지식인은 옳으면서 틀렸다. 지식인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독점해서는 안된다.
조선시대 당쟁사는 종족중심으로 진리를 독점하려는 역사다. 이 역사 다시 회복하면, 독점된 진리는 곧 백성들의 노예화로 나타난다.
‘소학’과 ‘동몽선습’이 추구하는 베이징 중심에 한반도가 종속되는 사회다. 동학 씨족들은 너무 승복 잘해서, 동학세력은 히틀러 파시즘지경까지 만든다.
인간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인간은 언제나 틀린다.
영원히 옳은 것은 예수님 뿐이다.
(글을 적은 이유) 마르크시즘 및 주체사상 하나도 모르고서도 원불교 동학사상 하나만으로 넉넉히 조선공산당으로서 기독교 박해가 가능하겠구나를 실감하면서,...............
이분들이 예수신앙 만나서 낮아짐을 배울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 군사정권 의 한국교회 문제. 그리고, 다 희망을 포기하자는 입장으로 이들만을 깨자는 입장이 있다.
호남중심의 동학세력 해석으로 종족권력화가 영원히 옳다,라는 판단 자체가 위헌이며 세계인권선언 위반이다.
사쿠라 조갑제는 젊은 세력으로서 반론자를 씨를 말렸다.
필자는 반면에 어디를 가든 그 그룹의 식자를 먼저 세운다. 필자는 본인을 맨 나중에 놓는다.
인간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