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반복하여 민주화신화는 공소시효가 중단되지 않은 사기죄라고 논했다.
 
그러면, 사기피해자가 있으니 하는 이야기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맹신하여 인생을 다 버린 사람은 바로 본인이다.
 
특히, 기독교민주화운동 관련한 이들이 1인 통치권자 문제의 비판은, 정말 공감하고 연대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이분들이 철저하게 침묵하는 영역이 있다. 호남개벽신앙 혹은 호남유교와 연결영역이다. , 반 성경적 불의한 피해가 보수유권자에 가는 데에 침묵한다.
 
기독교 페친분들은 주로 권세 가진 분들을 거명하는 실명 비판을 좋아한다.
 
국민과 세계를 전부 속이는 데 성공한 이들을 어쩔건가? 실명 비판은 진짜 무의미하다. 아니, 정말로 그분들이 잘못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정면의 실명비판은 내가 위험해진다. 성경이 그런 비판을 금지한 목적은, 하나님이 신자들을 보호하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정권 때 노론유교에서 김대중체제의 노론유교, 사람은 거의 안 바뀌었다. 호남소외론에서 젊은 세대 소외론(저출산)으로 바뀌었다. 공권력남용에서 재정문란으로 바뀌었다. 철인왕 플라톤 국가론 정치에서, 강증산 상제신 정치로 바뀌었다.
 
시편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방식처럼, 모든 억울한 사람들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이 있다. 결국은,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그러하듯, 하나님만 바라본다. 기독교인은 혁명가가 아니다. 들이박으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니다.
 
결국은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상황을 뒤엎는 하나님의 역사하심만이 변화의 핵심일터인데,..... 우리는 어떻게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맨 앞에 놓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말, 너무 악하다. 기독교공동체를 향하여, 예수만 믿는 신자들의 약점을 악용한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종교사기극이다. 세계에 말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증명에 자신이 없음이 아니다.
 
결국, 실명비판을 할 수 있는 대상은 넘치고 넘치고 또 넘치는데, 그대로 하면 성경에도 위반되고 내가 위험해진다. 의미가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비판을 하면 진실이 전해지나?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30년 전의 내용이라도 계속 하나의 거짓말이 반복되면, 공소시효는 중단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는 공소시효가 중단되지 않는 거짓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입증은 혼자서는 얼마든지 된다. 법적으로 의미가 없다. 3인이상의 자발적인 증거의 통합부터 사회가 변한다. 결국, 누군가 사회의 목소리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과 검증을 하는 속에서만 사회는 의미있게 변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