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갑제닷컴마저도 ‘전라도 유교’에 푹 빠졌다-

필자는 좌파를 비판한다. 그러나, 영남 중화사상으로 호남 비하는 언제나 하지 않았다. 영남 사람들이 자기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할 때 말을 안듣는다 답답해하지 말고, 호남 사람들이 과거(노론 일당독재 세도정치)로 돌아가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에 치중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지적했다. 그것을 안하는 한에서 ‘도태우 공천취소’(대구의 불교신자)의 공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 이전에 한국사회의 상식은 ‘국민’이었다. 80년대 후반이후에 대학가는 비주체사상파 민족해방파가 ‘民’을 강조했다. 이관섭 비서실장은 이 시대 좌파를 체험 못할 연배다. 民은 동학의 民이며 맹자의 民이다.
필자는 일베 정게에서 ‘동학→서학’ ‘서학→동학’ 사고로서 논쟁을 자주 일으켰다. 조선일보가 환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불통으로 지적되는 부분, 이는 정확히 말하면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교’ 특유의 ‘암호’(코드)를 알아모시지 못한 이관섭 비서실장의 문제다. (반대로 경제문제는 모르나 김대기 비서실장은 동학을 포함한 대중심리 이해의 달인이었다)
이종섭 문제는 검찰 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판단과, 대통령실 참모에 ‘동학교인’이 핵심에 없어 보이는 상황이 겹쳤다고 본다.
법앞의 평등(서양법)---권력자에 기운 법치(중국법)
이 모순논리 사이에서 일원상진리를 외치는 원불교에 대하여, 이런 논리로 장기간 피해 입은 사람은 ‘악마교’라고 외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서방사회에서 이슬람에 장기간 피해 입고, 다문화를 포기하는 자각과 비슷하며,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와 레이건 지지층의 평가를 혐오로 보는 것과 매우 다르다.
동학인들은 신앙적으로 ‘씨족적 자아’(민족적 사고)에 ‘법앞의 평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적확하게 군사정권에서 영남개벽파가 1인 독재에 법앞의 평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박지원으로 추정되는 동학도 민중세력의 판단에서, 이미 이종섭은 개새끼로 인격살인이 끝났다. 국민의 시선이라고 한동훈이 말할 때, 동학도인 원불교(악마교)신자 백낙청의 ‘민중’을 국민으로 바꿔쓰는 백낙청의 어법이며, 80년대 후반에서 씨알사상의 맹자의 民을 국민으로 쓰는 어법이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민중신학 진영은 중국왕조 종말론과 성경의 종말론이 같다고 장기간 복음으로 사기를 쳐왔다. 이것에서 재판에서 사실심리 하든 30년 가까운 기간으로, 자신있게 국제사회에 한국에서 민중신학교단이 <국제예수사기단>이에요 할 수 있다. 중국 경전에서 성경의 종말론 냄새 나는 것에서는, 억지로 해석하지 않을 때 그냥 베이징 똥냄새 자체일 뿐이며, 성경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그러나, 원불교(악마교)신자 백낙청은 계속 이은선 교수나 이정배교수같은 꼭두각시 데리고, 복음사기극을 벌인다.
원불교(악마교)로 바라본 법치와, 원불교인이 아닌 사람이 바라보는 법치가 완전히 다르다. 절망적이고 시스템적으로 체계적으로 다르다. 즉,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조야한 실패한 버전임을 알면서 퍼뜨린 모든 사람들은, 민형사상 사기죄에 속한다.
조갑제씨는 전라도 꼬붕짓이 신앙화된 조선유학사에서 호남유교로서, 전라도 농민들에게 오랑캐 군주 이미지를 퍼뜨린다. 그런 의미로서 탕평군주가 아니다. 실제는 국제적 단위의 <국제 예수 사기단>으로 권력잡고서, 국가적 차원에서 동학교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례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 참모에 동학신자가 없어보이지만, 그간의 행적에 대해서 동학과 무관한게 아니다. 김정호 자유경제원장이 해석한 경제학 버전은, 서방기독교신앙으로 읽어야 할 부분을 전부 동학으로 읽었다. 대통령실은 이 해석 안에 있다. 이는 공병호 박사님은 기독교신자인데도 자유경제원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연고주의’로 별 비판 없이 쓰는 것과 연결돼 해석될 수 있다.
법학은 윤석열 대통령의 전공분야일 텐데, 논쟁적 사안인데도 ‘민중당파성’(여야 호남 동학당 1당)의 民이름으로 말 안듣는다고 이토록 흔드는 자세를 몰랐다는 것은, 박근혜 탄핵 때 가해자로 끼였다가 보수유권자와 똑같은 ‘피해자 수렁’에 빠지니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군사정권에서 1인 통치권자 중심으로 논할 때, 음지가 명백했고 호남소외론이 존재했다. 소위 보수언론이란 곳에서 호남의 노론 일당독재 모드 유교를 구사할 때, 음지가 어디서 생기는지를 모른다.
오늘은 다시 강조하지만, 부활절이다.
1987년 6월항쟁은 여야 모두 동학도가 은폐된 사람이지만, 외형적으로는 개신교와 천주교 외형이다. 필자는 빚내서 집사라 현재 경제구도에 명확한 반대노선이나,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보다 이해 못하는 사람의 사람 장벽에 갇힌 윤석열 정부 문제도 이해한다. <영남 유교>에서 유교는 뭐든지 낮아짐을 모르고 높임만 아는 상태에서, 기독교신앙으로 변했기에 호남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이젠 마찬가지다. 호남이 성서적 낮아짐을 배워야 한다.
보편신앙으로 호남이 중세에서 300년 독재했던 신앙구조를 보수언론이란 조선일보가 깔아버린다. 이런 속에서 뭘하든 피해는 보수유권자 50대 이하다.
노무현(1946년생)이 전두환(1931년생)에게 명패를 던졌듯이, 이젠 지난 30년 영호남 동학당 1당세력은 다음 세대에게 명패를 맞아야 사회가 돌아간다.
노론 1당독재에 말 안듣는 군주는 사학자 이덕일 주장으로 ‘독살’이 흔했다고 한다. 그리고, 철종 고종 순종은 철저하게 허수아비로 끝났다. 이 전통을 이어서 이승만 끌어내리기,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잠시라도 호남개벽신앙 주류면 국민이 편안할 날이 없다.
조선일보 마저도 전라도 유교에 미쳤다.
왜, 조선일보는 보수세력 50대 이하에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배려안하는가? 노론 어딘가에서 명령 나오는 데 꼭두각시를 자처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