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돌아가신지 5년째 되는 해다.


올해는 마지막에 지방이랑 축문을 불사르는데 ,잘 됐는지 재가 방안에서 오래 떠다니더라.

아버지 화장할 당시에,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친척 삼촌들과 갈등으로, 나는 아버지 돌아가신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못 간게 아니라 내 의지로 일부러 안간거였다.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삼촌들이 하는 행동이 너무 싫고 얼굴 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축문 종이랑 지방종이가 타서 재가되어 사그라 지는데, 거기 작은 불꽃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육신도 그렇게 허무하게 사그라 들었겠구나 했다.    




익숙해져서 그런지, 막상 오밤중에 제사 지낼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


낮에,   제사 때 쓸 음식들을 사와서 집에 딱 도착하니까,  눈물이 나도 모르게 쏟아졌다.




   제사 때 되면 아부지 사진 볼려고 앨범 보다가 잠든다.  

그러면 아버지랑 한 방에서 잠드는 거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제사 끝낼 때 두번 절하는데, 아버지 계신 거 같아서 내가 마지막 절하고 나면 떠나실 까봐 하기 싫더라.

뜸들이다 끝냈다..

 아버지랑  5분만 같이 만나서 같이 있고 싶다.




  아버지 사진 몇 장 올려본다.



오른쪽, 우리 아버지. 나는 아직 태어나기 전.






가운데 눈 감고 계신 분 우리 아버지.  나랑 달리 목소리가 좋으시고 노래를 잘 하셨었다.  







 아버지 살아계실때,  TV 보시고 주무시는 안쪽 방이다.   입구 쪽에 누나랑 내가 지내던 방이 있다.

저기서 내가 TV 보다가 잠들어 있으면,  잠든 나를 아기 들듯 번쩍 들어서 내 방으로 옮겨주시곤 하시던 아버지셨다.  

내가 서른이 넘었을 때에도  수 없이 그러셨었으니...  당신께서 낳은 자식이라 아기처럼 보이셨나보다.

이 사진만 봐도 아버지 TV 보시면서 누워 계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결심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친가 쪽 친척들과는 죽을 때까지 볼 생각이 없다.  

그 친가쪽에 작은 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께 작은 아버지 되시는 분이 아직 살아 생존해 계시다.   그런데, 5년 전에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정말 빨리 돌아가신거다.        

  
     복잡한 사연이 있지만, 어쨌든 나는 죄가 많고, 밝히기엔 너무 부끄럽다.

아버지 돌아가시는데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내가 했다. 

후회도 복잡한 마음도 많지만, 요사이 바쁜 계획이 많아서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정신차리고 계획대로 살아 볼련다. 

                                                                                    
                                                                                                                     읽어줘서 고맙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