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와 개벽신앙 신앙 차이의 얼렁뚱땅, 자유민주 대한민국 수호와 고려연방제의 얼렁뚱땅, 신앙적 일치 하나도 없이 막~~연한 하나됨의 주장은 ‘동귀일체’(천도교)나 ‘일원상진리’(원불교)가 마치 성서적 개념인양 여기는 한국교계 지도자들의 얼렁뚱땅 정신의 발현이다.
첫 번째, 한국교회에서 논하는 에큐메니칼은, 교회 구성원을 둘러싼 단일한 조상신을 따르는 것인지, 성경의 예수를 따르는 것인지 심각하게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신학적 차이로 분화하며 좁은 의미의 미국 복음주의만을 지키자는 방식을 넘어서서, 엽기적인 신앙적 얼렁뚱땅이 뭐냐?는 의미를 논하자는 것이다.
부활절마다 교회가 연합했다고 할 때, 조직신학(교의학)에서의 연합과 일치가 아니라, 전혀 다른 ‘개뻑따구 신앙’의 동귀일체의 작동의 의혹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두 번째, 조직신학적(교의학적) 얼렁뚱땅은 한국형 자유주의 신학에서의 세상성 분석의 얼렁뚱땅으로 이어진다.
신학이론 수입상으로 a급 능력을 보이는 분들이, 한국의 신앙현실로서 세상성을 논할 때는, 기독교세계관을 명백하게 벗어난 ‘개뻑다구 세계관’을 보이는 일이 빈발한다.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개벽신앙 파벌이 권력을 가지며, 민중신학 패당은 의도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무속신앙을 진흥한다. 이를 세상성 차원에서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은, <신학대학 졸업>을 넘어서서 최소한 <사회학과 졸업>을 추가적으로 요구한다.
한국의 세속신학(시큘라 테올로지)인 무당신앙은 서양의 세속신학과 명백히 다르다. 이를 같다고 ‘이퀄’ 치고 들어가는 모든 분석은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세상성을 서양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성공을 해야, 기본적으로 세상 속에 성령 하나님 역사를 논할 수 있다.
교의학적 얼렁뚱땅+세상성 분석의 얼렁뚱땅은 고도의 몽롱한 부족적 자의성으로, 조선유학사의 연판장 정치로 넘어간다.
세 번째, 기독교신앙이 송시열 유교 같은 호남유교의 표면/이면 원리 분리에서 표면 논리같은 명분적 허구로 비하된다.
민중신학 교단은 꾸준히 복음주의 교단에 조직신학적 엄정함을 추구하는 것을 공격하고 비하했다. 민중신학교단은 신학이론 수입은 엄정함을 추구했지만, 한국의 정치신학 분석에서는 <원불교(사탄교)>꼭두각시 언저리만을 지루하게 반복한다.
네 번째, 이는 대단히 자의적이고 선별적이고 주관적인 반 성경적 논리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1980년대 기독교민주화운동은 교회연합으로 군사독재의 종교적 이념이 된 대종교 반대운동으로 나아간다. 그러는 이들은 문재앙 고려연방제의 토대가 된 원불교(사탄교) 반대운동은 안한다.
군사독재의 국가주의에 토대가 된 것이 우상으로 반성경적이라고 하면서, 남한의 공산화에서 공산화의 당성(일원상진리 원불교 교리)는 우상이 아니고 반성경이 아니라고 본다.
북한혁명가들 및 민족해방투사 우상숭배는 졸라게 하면서, 일본신사 참배 문제로는 규탄한다. 罪는 부족앞에 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 죄를 논하는 것이 성경적 입장이다.
다섯 번째, 사실은 교회조직이 세상이 망가지도록 주도하면서, 안 망가진체 하는 고도의 위선조직이 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계약자유원칙
계약자유원칙은 민법 계약편
민법은 신의성실원칙이다.
시장경제는 약속의 문화로서 종교개혁과 근대계몽주의 지대의 문화관습위에 있다. 이를 통렬하게 엿먹이고, 그 엿먹이는 문화가 문재앙 때 금융교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짓 안했어요. 토착화신학 대중화로 한국의 금융교란 전도사 안했어요! 하는 내숭쑈가 벌어진다.
그러한 위선이 만드는 표현 형태는 조선유학사 정치연판장을 닮아버린 에큐메니칼 조직의 정치참여다. 도저히, 기독교조직의 분석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교회는 신앙의 양극화가 진행중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현학적 개념어로 돌진하는 신학대 직계부류와, 다른 복음 선동에 휘말리는 평신도와 엄청나게 벌어진다. 사실, 경제유튜버에서 슈카월드 전석재 같이 일상어로 신앙 내용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성도들에게 신앙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그 자료를 자기꺼라고 행사하지 않아야, 한국교회에 개혁주의 정신이 복원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