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원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中庸의 의미에 개벽파 특유의 용어 훔쳐 포장하기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정책은 현재의 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맞춰집니다. 경제학원칙은 일관되게 균형지점의 지속가능성의 문제까지, 가짜 부로서 국민소득을 무너뜨리는게 상식으로 봅니다.
 
지속가능성은 꾸준히 인풋과 아웃풋이 균형을 이루는 그런 상태를 전제합니다. 균형지점에서 위로 한없이 올라 있으니, 이 구조에서 아무도 근로의욕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속가능성은 균형지점에서 오히려 낮게~~ 설정하는 겁니다.
 
기독교신앙으로 사도신경 공동체든 니케아신경 공동체든, 어떻게 봐도 무방합니다. 각 신앙영역과 각각의 경제학이론으로 지속가능성을 보는 논리가 있습니다. 성서적 토대에 기초된 경제철학입니다.
 
세도가문들의 영원한 행복, 그런 세도가문들만의 그런 과거 없습니다. 그것은 신화입니다. 그 가문만 내용일 뿐입니다. 일반국민은 당당히 안 믿을 자유를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녹색성장 때 환경 공부한 사람 어쩌면 혼자 뿐인지도. 그리고 보수진영의 환경전문가는 이화여대 박석순 명예교수 1명인지도.(정작, 웃기는 것은 박석순 교수님은 거의 유일한 환경전문가인데, 권력에 의해서 중용되지 못한다) 그때 지속가능 사회에 대하여 공부하면서도, 좌파 기독교 신앙과 환경의 밀접함을 느낍니다.
 
한국 보수교회가 말하듯, 미국 우파기독교와 미국 좌파기독교는 그렇게 다른게 아니에요. 오히려, 원불교나 증산교, 천도교가 어떤 형태의 기독교버전과도 안 맞는 적대적이라고 보는게 맞죠.
 
환경 뿐만 아니라 경제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으로 세상은 복잡한 경제라고 말할 때, 미국 복음주의 교회가 전제하는 세계상을 딛고 선 경제철학입니다.
 
조갑제닷컴 할아버지들의 개벽신앙이 서 있는 동경대전, 그 동경대전이 나타날 때 노론독재. 그리고 노론독재의 원조인 청나라는 모두가 지속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지속가능성이 궤멸이 가는데, 욕망이 그 위로 가면 당연히 시스템 붕괴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