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주년 대회를 기억하는 방식 보고 무척 실망했다. 물론, 이 대회는 이 당시에 여의도 광장에 있었을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사실, 이 당시에 설교본문은 요한복음 15장 13절.
군사정권 민주정의당의 상당히 많은 교회의 6.25 전쟁 반복을 막자는 설교의 패턴을 만든 장소로 기억한다. 필자의 관심은 신앙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로 의미있는 부분으로 본다.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담지 않는다. 역사가에 의미있는 부분을 선택한다.
반면에, 50주년 대회는 여의도 광장에 있었을 사람으로, 교회성장학에서의 요순시대 같은 과거 회상으로, 조금 일탈의 흔적을 본다.
필자는 이 집회측의 기억방식을 거부하며 필자의 신앙방식의 연장선으로 본다.
특히, 이 당시에 민정당의 역사학 기준으로 회개해야 또다른 6.25가 없다는 설교문이 많았다. 민정당 역사학 기준이 다 무너졌다. 사실, 냉정한 말로 푸코의 [말과 사물]의 에피스테메 개념을 적용할 때, 미소 군정이란 지배체제를 뺀 문화영역은 중국 경전의 종족전쟁 패러다임이 지배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 마을이니까 너는 뒤져
우리 마을이니까 너는 뒤져
6.25 전쟁은 수많은 군대의 업치락 뒤치락은 곧 다른 이들의 색출과 죽임의 반복이었다.
군사정권 국정교육을 전제로 논했던 것은, 이제 요한복음 15장 13절을 설교로 새롭게 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빌그래험 여의도 집회부터 민정당 시대까지, 인본주의만 바라봤다.
원불교 김용옥이가 극찬한 친북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이 말하는 의열단 선언이란게 가혹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런 정서 안에서 누구도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중대한 또 다른 명제가 나온다.
서로 사랑한다는 생각은 종족정주 심리로 우리마을 외지인 나는 그 종교심리가 작동안해야 가능하다. 동시에, 서로 쌍방에 준수한다는 신뢰가 있어야 된다.
빌그래험 여의도 집회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기억이 그렇다면, 민정당 시대에 흐질그레 한 강북의 찌질한 교회에서 나온 설교문들의 원형 패턴을 발견했다고 바라보는 인문학 역사가의 관점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느 판단이 맞는지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문제로 놔두는게 이승만의 [독립정신]의 뜻이다.
여의도 광장에 있으셨을 분으로 추정되는 교회 할아버지들의 관점에 무~~척 실망했다. 물론, 필자는 70년생이니 이때 네 살. 그리고 빌그래험 집회의 영향의 끝물인 80년대 중후반의 찌질한 강북교회의 체험으로 간접체험에 다름 아니다.
6.25 전쟁을 둘러싸고 간절하게 성경을 바라보던 그 맥락(콘텍스트)은 빼버리고, 그 분위기만 챙긴 것인 복음통일에 대해서도 무척 황당하다.
역사가는 텍스트를 본다. 군사정권 북한선교론의 텍스트에서 안 말한 내용을 억지로 끼워맞춘 해석이 아닌지?
서방 문명 사회의 역사학은 기본이 경쟁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
후대의 역사학에서 의미있는 주제.
과연, 1973년 집회의 기억을 이따위로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물론, 판단은 하나님 몫이고 필자는 하나님앞에서 누가 진실인지 변론하자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