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정권 때에도 국정교육이었고, 권력을 쥔 귀족들의 의지대로 하향식 주입식 교육이다. 국가권력에 의존한 귀족들의 이익에 의해서 왜곡된 지점을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은 영화 『길위의 김대중』과 영화 『건국전쟁』으로 조상신 중심으로 상향식을 취하나 본질이 군사정권과 똑같다. 여러 파벌로 나뉜 귀족들의 세도정치에 대해 묻지 말라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체제는 안정을 지향하는 봉건 왕이다. 군사정권은 왕 중시의 오랑캐몰이로, 좌파측 기억으로 빨갱이 몰이를 했다.
김대중체제(김영삼 정권 이후 30년)은 세도정치로 불릴 만한 제후 귀족 중심의 ‘종족=대동’의 봉건정치다. 김대중체제는 <개뻑따구 개벽신앙 사탄교 귀족연합>중심의 오랑캐몰이로(‘적폐청산, 수구청산’), 우파측 기억으로는 반동분자 청산과 연결된다.
군사정권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있다.
대기업이 수출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원가 관리를 하는 기업을 권위주의로 도와야 했다. 그러나, 이는 국가 권력에 줄 선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굉장한 시기 질투를 포함했다.
못 살겠다면서 民들이 합종연횡의 합종으로 뭉치면, 정부기관이 연횡으로 물리치는 장면이 군사정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군사정권을 상징하는 장면인 저임금 수출은 세계적 차원의 인플레이션과 연결돼 있다.
서민은 못 살겠다고 울부짖으나, 계속 방송은 정부 주도로 왕과 귀족 중심의 언저리만 돌았다. 이런 주제 비판이 1980년대 대학가 좌파들(김대중지지자)들의 레퍼토리였다.
김대중 체제를 상징하는 한 장면이 있다. 이는 상가 공실 문제와 지식산업센터 공실문제다.
권력에 쉽게 닿는 귀족이 늘어나는 만큼, 귀족들은 정치권력을 지렛대로 자기 재산(자본소득)을 불리려 한다.
건물의 가치를 올리려 임대료를 일방적으로 올리고 있다. 임차인인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귀족은 자기 중화사상으로(군사정권은 왕 중화사상) 자의적으로 올린다.
지식산업센터 공실도 김대중체제를 상징한다. 지방자치에 얽혀있는 귀족의 최대치 이익을 위해서 대량 공급을 하지만, 정상공급인양 주장하는 광고를 신뢰한 국민은 손해를 하소연할 데가 없다.
군사정권은 구조적으로 국가기관에 줄 선 대기업과 국방만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안했고, 김대중 체제는 세도가문 정치를 완전히 뚜껑열어서 귀족의 부패를 열었지만 그 부작용은 외면한다. 왜냐하면, 귀족이 정부보다 힘이 세고, 국민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길위의 김대중 팀이나, 영화 ‘건국전쟁’팀이나 조선시대 老論의 족보학에서 말하는 임금 이미지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중립어법이 아니라 종족신앙으로 종족연고주의를 최대치로 하겠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남로당 섬멸 과정에서 서북청년단의 가해를, 이승만이 명했다거나 아니면 그 당시에 이승만에 줄 섰던 일반인의 후손을 겨냥하는 종족의리론을 하거나, ......
남로당파들이 이승만 정부의 탄압으로 월북하고, 6.25 남침 전쟁에 기여했다는 것으로, 지금와서 정치보복하라는 입장은 매우 황당하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그 할애비의 6.25 남침전쟁 정신을 이어서 남침하겠다고 공언했다.
저출산 고령화도 영웅(종족 귀족)의 과대화
부동산 문제도 영웅(종족 귀족)의 과대화
부채공화국도 영웅(종족 귀족)의 과대화와 연결된다.
영화 『건국전쟁』은 30년 동안 서북청년단에 앙심 품고 있다는 전라도 호남개벽파 자파에 제대로 염장질렀다. 이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다. 권력층에 보복하지 못한다면, 이에 속한 일반인에 보복한다. 지난 30년간 한번도 빠짐없다.
김덕영 감독은 ‘노론’들의 철종, 고종, 순종 이미지로, 이승만 대통령을 아예 갖고 놀생각으로 또 한다고 한다.
박정희, 전두환 1인 통치권자 권력 독점은 새 발의 피다. 김덕영 감독은 입만 열면, ‘허! 저런 수준의 지식가지고 남을 대변한다고 나섰단 말인가!’ 싶은 말이 마구 나타난다. 권력독점이 왕이 아니라, 제후로 낮아졌다.
세도가문 정치는 각각 양반가문 별로 독점해서 무원칙하게 나아간다.
군사정권은 왕 중심으로 헌법 10조, 11조, 12조를 잊었다.
지금은 영화 ‘길위의 김대중’,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제후귀족 중심으로,
헌법 10조, 11조, 12조를 잊는다.
김대중 호남종족 천동설(호남 중화사상)
이승만 영남종족 천동설(영남 중화사상)
이 둘의 경쟁구조 만들고, 원불교(사탄교) 일원상진리 교리면 다 치유됐다고 개뻑따구 개벽신앙 사탄교 노인은 오인한다.
근본적으로 ‘공자-맹자’의 인식론에서 경상도 버전이든, 전라도 버전이든 타자인식이 아예 다 왜곡됐다.
군사정권은 국정교육의 억압이 있었다.
지금은 조상신 교육의 억압이 있다.
현재의 부동산 문제 해결도 못하는데, 해방공간 소련파시점을 가지는 어떤 빨갱이 새끼도 문제지만, 설마 우파는 과거로 안 돌아갔겠지 하는 데 해방공간 극우의 노선으로 돌아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 하면, 권력을 쥔 세도가문이 ‘머가리’가 텅텅 빈 측면 때문이다.
세도정치는 결국 생산적인 일 없이 권력 주변의 이익으로 누리겠다는 귀족의 폭주로 나타난다.
이 땅에 양심들은 영화 ‘건국전쟁’을 보지 말아야 한다.
이승만을 근본적으로 긍정하나, 개뻑따구 개벽신앙 사탄교에 깔린 중국식 종족신앙을 안하는 서양인문학 구조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 배경에 노론의 족보학으로 이익을 보는 노론양반가문같은 정치효과로 노비동원을 깔고 있다.
그렇게 노론의 족보학 정치는 시장경제로서 국민교육으로 필요한 내용을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소산이다.
노론의 족보학정치는 영남으로든 호남으로든 헌법의 법 앞의 평등, 국민의 자유권, 평등권을 해석하는 지평을 틀어막는다. 영남 천동설, 호남천동설만 남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영남 천동설, 호남천동설을 원불교(사탄교)의 일원상진리로 대승불교적 결합시킨다고, 시민공론장으로 있을 몫의 원천적 결여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원불교 일원상진리로 통합은 부족장 중심의 이면 합의를 전제하고, 그 합의에 복종은 이면에 신분제를 전제한다. 이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의 역행이다.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은 헌법 파괴로 국민의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및, 헌법 10조, 11조, 12조 위반이다. 물론, 영남 천동설이 선거로서 영남 유권자에 모으는 데 나쁘지 않다는 국힘 내부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원래 틀린 것을 선거라고 옳다고 하는게 옳을 수 없다고 본다.
헌법을 수호하는 의미로 매일 ‘건국전쟁’영화를 지원하는 조갑제닷컴과 월간조선의 시점을 비판한다. 조갑제씨는 그 분 평생에 보수주의 이념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고,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의 등판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군사정권의 1인 통치권자 폭주는 국가권력에 연결된 측에서 반론을 억압했다.
김대중체제의 부패한 귀족의 폭주는, 이익은 우리가 먹고 손실은 니네가 져라로 나타난다. 영화 건국전쟁에서 나타난 부작용에서, 월간조선과 조갑제닷컴이 남탓만 하지, 책임을 지겠는가?
국민이 바라보는 헌법의 대한민국은 영남 천동설 종족국가도, 호남천동설 종족국가도 아닌, 양 정당이 법앞의 평등을 이루며, 각각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국민국가다.
김덕영 감독은 입만 열면, ‘이승만=임금’시점으로 고정하는 발언이 대량 나온다. 대체, 그게 왜 중요한 건데? 노론들의 임금 기억이 대부분 자기들 이익 연결이다. 국민의 민생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