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공자는 몽고계 입니다. 공자의 아버지 이름은 "숙량흘"입니다. 몽고계이지요. 현재 중국인들의 조상인 화하족이 아닙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고려인 출신이라는 얘기가 한참 돌기 시작할때, 한국인들은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한다는 얘기가 중국에 나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우기기, 거짓말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주원장이 고려인이라는 사실이 쏙 들어가게 만들게 하기 위한 성동격서 전략이었던 것이죠.
주원장의 군대 총사령관, 명나라 초대 재상, 황후, 후궁들, 환관들 모두 고려인이었고 이후 명나라 궁궐은 조선에서간 조선공녀들로 가득차 고려어, 조선어로 가득찬 궁궐이었습니다.
이것은 주원장이 한국어를 쓰는 고려인이었을 거라는 강한 추정의 근거가 되지요. 말이 통해야 궁해서 지시를 내리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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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은 황후(고려인 한여비)뿐만 아니라 후처들도 조선여인들로 삼았다. 그리고 조선의 환관들을 명나라 황실의 환관들로 삼았다. 주원장이 한반도출신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나인이라면 황실을 관리하는 환관(내시)들을 어떻게 조선인들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명나라 황실은 조선을 각별하게 환대했다. 조선의 태종은 양녕대군이 세자시절인 1407년 양녕을 명에 사신으로 보냈다. 당시 13살이던 양녕대군은 남경에서 영락제를 한 달간 3번이나 만났다. 영락제는 양녕대군을 수행한 35명의 사절에게 선물을 주는 등 조선에 공을 들였고 양녕대군이 남경에 머무는 동안 양녕대군을 남경 도처를 안내했다. 명나라의 예부상서는 양녕대군에게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양녕대군이 귀국할 때 영락제는 양녕대군을 다시 만나 언제나 “조선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양녕대군에게 여러 서적을 선물로 주는데 선물목록 중에는 영락제의 어머니인 마 황후(고려인 한여비)의 전기 150권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태종에 의해 양녕이 실각하고 세종이 왕위를 오른 뒤에도 영락제와 세종대왕은 밀접한 관계를 이어간다. 영락제와 세종은 자주 종교와 철학, 역사, 도덕, 과학, 기술과 관련된 서적 및 의견을 교환했다. 명이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두 나라간 교섭은 더욱 늘어났다.
명나라 개국시조 주원장이 고려인이라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주원장은 부인이 고려인이고, 1등 개국공신이 고려인이었고, 옆에 측근들이 고려인들이었다. 또한 이성계는 주원장의 승인을 받아 조선왕에 올랐는데, 주원장은 자신을 비웃는 한족관리들 때문에 조선에 많은 환관들을 보내달라고 요구해 와서 조선에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북한의 김일성도 자신의 생가를 성역화하고 남한도 김대중. 노무현. 박정희 등 대통령의 생가를 성역화하는데, 주원장의 경우는 明이 망할 때까지, 아니 현재까지도, 지나국에서 주원장의 생가는 전혀 언급되지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단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원장이 한반도출신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원장의 황후는 고려인으로 고려인 한영정의 딸이며 한확의 누이로,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어머니가 된다. 주원장이 명나라 태조에 즉위하기 전 또 다른 고려여인을 왕비로 맞는데 석비(碩妃)이며 함산공주(含山公主)를 낳는다. 또 주원장의 황후(고려인)의 동생 한계란(韓桂蘭)은 후에 명나라 선덕제의 부인이다. 이러한 주원장의 부인들에 대해 지나국의 사학자들은 고려가 보낸 공녀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명나라 건국이 1368년이니 영락제(永樂帝)는 이미 명나라가 개국되기 8년 전에 태어났으며, 당시 원나라를 섬기던 고려에서 국가의 운명을 걸고 원나라의 반란군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에게 고려조정에서 공녀를 상납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더구나 영락제가 태어나던 1360년 이전의 주원장은 당시 황건적의 거대 세력 장사성(張士誠), 진우량(陳友諒)등에 가려 별로 드러나지도 않던 조그만 비적 무리에게 고려조정이 공녀를 조공 받았다는 것은 상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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