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여러분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오히려 철저하게 회의적인 태도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내 동료들과는 다르게, 나는 철학에서 새 길을 개척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는 선구자가 아니다. 나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을 믿는 구닥다리 철학자일 뿐이다. 아주 오래전 합리주의와 계몽운동 시대의 사상이 그것이다.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마지막 추종자로서, 나는 지식을 통한 인간의 자기해방을 믿는다.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도 그렇게 믿었다. 페스탈로치는 지식을 무기로 가난에 대항하여 싸웠다. 여기서 내가 신봉하는 유행에서 한참 지난 사상이 약 150년 전 철저하게 잘 못 이해됐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겠다.
 
1800년으로 접어들기 직전, 낭만주의는 계몽주의를 단순히 사이비 개화 또는 천박한 계몽주의, 즉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철학사상에 매달리고 이렇게 구시대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낭만주의 특히 독일 관념론의 대표주자 세 사람인 피히테와 셸링, 헤겔의 철학을 지적, 도덕적 대재앙 이상으로 보지 못하겠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들을 덮친 사상 최대의 지적, 도덕적 변괴로밖에는 안 보인다. 내가 보기에 이 재앙이 가져온 엄청난 퇴보의 효과는 아직도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몇 해 전 콘라드 하이텐이 히틀러 전기에서 사용한 표현 같이, ‘지적 도덕적 부정不淨의 시대’를 초래한 것이다.
 
시대정신, 그리고 그 시대정신에 고무된 운동은 쉽게 저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은 철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철학은 그 시대의 ‘판관’이어야 한다. 철학이 시대정신의 표현자가 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는 한 마디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합리주의적 태도란 다음과 같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구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 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에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합리주의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단순한 언어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진정한 계몽주의 사상가,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상대를 확신시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지적 자주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중대한 문제를 두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득을 하느니 반론을, 그것도 가능하면 합리적이고 잘 다듬어진 형태의 비판을 유도할 것이다. 설득보다는 상대방을 자극하여 자주적 의견을 형성할 것을 요구한다. 자주적 의견의 형성은 계몽주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를 진리에 더 근접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주적 의견은 그 자체로 존중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의견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더라도 어쨌든 나름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가가 상대방을 유도하거나 상대의 동조를 구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논리 그리고 어쩌면 수학까지 포함한 좁은 분야 외에는 어떤 것도 백퍼센트 확증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든 주장을 제시할 수 있고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 수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주장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고 논리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여러 가지 논거가 타당한지, 무엇이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내가 앞에서 다소 모순적이지만 나의 구시대적 합리주의에 대해 경고했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경고하고 싶다. 나는 합리주의자이므로, 어느 누구도 개심시키고 싶지 않다. 더불어, 자유의 이름을 더럽혀가면서 누군가를 합리주의자로 전향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내 견해를 논박해보라고 여러분에게 도전하라고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사물을 새로운 견지에서 보도록,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 최대한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싶다.
 
모든 합리주의자는 칸트의 지론에 동조해야 한다. 누구도 철학을 가르칠 수 없으며, 기껏해야 철학적 사색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지론이다. 그것은 곧 비판적인 태도를 취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