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창균 칼럼은 한국식 선거정치의 정치셈법이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김창균씨 조차도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1994년 이후에 한국의 보수진영은 더 이상 인문학을 배우지 않는다. 조갑제기자를 통해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인문학을 몰라야 선진국이 된다는 궤변이 노무현정권 때 나타났다. 이젠 출산율 저하로 인문대 대학원은 진학률 제로라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 ‘살아있는 지식’은 다음 세대에서는, 도서관에 꽂힌 책으로서 ‘죽은 지식’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누군가의 육체를 통해서 살아움직이는 언어로 바꾸기 전에는, 그냥 도서관 서가는 책의 집합더미일 뿐이다. 다시, 그렇게 간다.
김경율은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꼭, 사극처럼 왕에 줄 선 계파 가문에 맞는 말만 할 수없다. 오히려, 자유민주는 권력독점으로 인한 시스템 폐해 방지가 기본이다. <배신이다>라면서 이분법을 내세우는 것이 황당하다. 민법상 조직에서, 꼭 주군에 충성하는 의미로서 일종의 사회생활을 잘하는 발언만 있지 않다.
서울법대 공화국이 되면 온 사방에서 법치 교육이 있을 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 보수교육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의외로 한동훈은 정치셈법인 여의도 언어에 바로 적응했다. 그러나, 다수 국민에겐 줄서기와 파벌 정치에 익숙하지 않고, 법치와 서민경제만 바라보는 입장이다.
필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5.18을 반복하여 자기화하는 것은 다른 씨족판, 청와대 왕국 정치에 집착이 아닌가 싶다. 물론, 청와대 왕궁정치로 5.18은 他者다. 그런 의미로 5.18을 비하하는 이들은 잘못이다. 물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어느 양반정파이고, 그 정파에서 상징적인 측면으로 거부할 수 없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과거를 찾는 조상신 정치의 현재의 ‘식민화’ 문제다.
선거 때에 국힘은 정치 세계관 정치책자 1권이 없는 사회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감투를 잡는데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을 노골적으로 불편해한다. 저쪽 민주당 진영은 공산혁명에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을 불편해한다.
권력 가진 이들에 대한 시기 질투를 유발하는 일이 있다. 탄핵 때 박근혜 대통령의 30만원 대 의상을 소시민 하층민과 비교하여 몰아갔다. 국민소득 천달러 안팎일 때, 모두가 소주만 먹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시바스리걸(아주 저렴한 양주)를 마셨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때의 김현철 스캔들, 김대중 정부 때 자식들 스캔들의 돌파여부가 있다. 꼭, 폭발은 아니라도 일정한 수준에서 갈무리하는 것은 필요하다.
일베노인은 박정희 전두환 때에 다져진 부족신앙을 구축한다. 이에 호응하면 우파, 아니면 좌파로 본다. 대통령 종족주의 안에 드는 것이 우파도 아니고, 그 밖에 있는 것이 좌파도 아니다.
군사정권은 공권력을 독점한 강증산이라는 영남봉건제가, 김대중체제는 세도가문의 설거지 역할을 책임지는 호남봉건제가 자리한다. 지금은 호남봉건제 안에서 영남봉건제 기억을 강조한다. 즉, 온 세상은 김대중 지향 호남개벽파 공산주의 체제인데, 이안에서 제한적으로 박정희 전두환 청와대 왕궁사가 논해진다.
청와대 왕궁사에 노예(노비)계약이 자유민주도 아니고, 김대중체제의 민족해방운동에 호구가 되는 영역이 자유민주도 아니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법리는 투명하다. 문제는 그렇다. 개뻑다구 개벽신앙 사탄교 노인들이 중국적 샤머니즘 우주관에 있어서, 자꾸 서양법 질서가 불편하게 한다는 불만감을, 박정희의 개인독재욕심 아니냐는 것으로 투영해버린다.
군사정권 권위주의 체제는 1인 통치권자 문제의 폐해였다. 김대중 체제는 당 국가 문제의 폐해로, 그렇게 피에프 부채 버블의 불의한 레버리지를 아무도 고발하지 않아서 빚어지는 거대한 금융위기가 눈앞에 있다.
개방적 상태에서 가시적 버블 붕괴 이전에 윤리적으로 안되는 일을 한다는 내부고발이 있었어야 했다. 아무도 안했다.
보수진영은 아무도 자유민주주의 공부안하는 개뼉다구 노인의 무임승차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배신이다! 하면서, 자신이 윤석열에 줄 섰다고, 한동훈 김경율을 찍어내자고 하는 것은, 국졸 중졸만 되도 할 수 있다. 필자가 중화민족 사유체계를 가진 중국 경전을 비하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중국경전은 명확한 사유의 한계가 있고, 또 헌법 자유민주질서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우주관을 갖고 있다.
한동훈 김경율을 김창균이 논하는 찌라시(일베노인 정게란)처럼 찍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쳐보자. 그러면, 또 또 또 훗날에 억울하다면서 정치게시판에 최태민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은데 떠드는 노인의 일이된다.
시장경제가 무엇이고, 법치주의가 무엇이고,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참고문헌이 넘치고 넘친다. 좀, 배워야 한다.
호남사람들이 자신들은 유태인이라면서 현실은 호남 중화사상을 갖는 경우와, 데칼코마니 같은 역반영 문제로 영남의 청와대 왕궁사 스토리는 경악스럽다. 어느 쪽으로든 국민들은 가스라이팅으로 지치고 질려버린다.
아직도 청와대 왕궁사에 젖을 만큼 우파의 인문학은 왜 발전을 안할까? 이와 동전의 양면으로, 권력은 특정 귀족가문연합에 독식돼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 전제가 옳다면 김대중파 귀족가문으로 보이는 윤석열-한동훈의 영입은 없었을 것이다. 실력도 없고, 팔아먹을 과거는 지겨움에 빠졌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인구는 줄어든다.
일베노인은 자유민주주의를 공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