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겸손을 주장하는 분이 있다.
첫 번째, 배울게 1도 없고 중화사상적 세계관 가진 노인들이 말하는 겸손이다. ---이면의 속내 : 이 나쁜놈, 말들어 임마
두 번째, 인간이 하나님 창조세상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의 겸손이다.
한국인에겐 NIV가 쉬운 영어라 편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영어 고어”를 담은 KJV가 가장 스탠다드로 보인다. 성경본문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한결같다.
법학과 사법시험 교재 부피를 자랑하는 바르트의 교회교의학도, 아니 한국에 번역된 조직신학 책들도 결국은 성경의 부분만을 다뤘겠구나.
성경본문과 성경해석은, 고스란히 세상속에서는 경제학자들의 거시경제지표와 경제해석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각각이 엄청난 능력이지만, 미래를 못 맞춘다는 의미로 진정하게 겸손하다.
일베정게에서 들은 풍얼로 KJV 번역본을 추천하는 댓글을 봤다. 누가 그렇대. 하는 말을 수용함으로 다 알았다는 자신감.
그렇게 우주 초월로 권리만 누리고 의무를 팽개치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포기하고, 진정한 겸손에 도달하게 하나?
사실, ‘진리’를 다수는 연구 자체를 안한다. 연구를 해봐야 진리 앞에 겸손을 안다.
성경공부를 해야 하나님을 안다.
물론, 모든 국민이 전부 진리를 연구하지 않는다. 연구를 하는 이들은 연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그대로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가치의 정보를 전해야 한다. 자기만을 위함을 하면 안된다.
진정한 겸손은 결국은 예수를 따를 때만 추구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