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으로 번영했고, 신채호의 민족사관으로 민족(국민)’이 망했다.
-세도가문에 서양법의 강요 일반국민에 신분노예제의 강요-
 
 

필자는 이승만을 띄우면서도 사실상 신채호 노선에 서 있는 조갑제기자의 입장을 <노인 이언주>, <노인 변희재>의 관점이라고 보았다. 조갑제기자는 이준석의 추종자 천하용인도 따르기를 거부하는 이준석을 따르며, 국민의 힘 총선 진영에도 등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보수의 원로지위라는 것은, 의무는 안하고 권리만 이행함의 절정치인 세도가문의 습속이지, 서양민주주의 관행이 아니다.
 
필자는 굉장히 복잡하고 독특한 관점을 논하지 않는다. 그들이 했던 방법론으로 그들을 분석하는 시점을 취한다. 필자의 관점에서 촛불진영이 민주정의당의 권력구조를 분석하며 했던 사회구성체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여, 원불교 촛불마왕 백낙청이 구축하는 시스템을 설명해 왔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의 삽화로 소비에트 혁명사 책의 저자이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는 원론적인 내용을 다뤘음에도 공안사건으로 문제가 됐던 과거의 흑역사를 다루었다. 그들은 민주정의당에 대한 원망을 기초(당시의 현재성), 일제 36년을 분석했다(과거). 그렇게 모든 역사는 재해석돼야 하고,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2023년 입장에서 그 시절인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 사이의 텍스트는 어떻게 해석되나? 조갑제기자와 그 동연배의 개벽신앙 노인들에게는, 전두환 쳐부순 신화의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70년대생 우파부터는 억울함이 싹이 튼 시대였다.
 
현재의 70-80대 개벽파 할아버지들은 모든 억울함이 <서양법>이다. 이 분들이 80년대 후반에 내보인 분단통일의 이분법은 결국, 전라도 개벽파 양반가문의 종족습속과 종족권력을 구축하는 의미리서, 남로당 및 조선공산당 전통의 복원으로서 민주화운동이 실제였다.
 
분단 =막힘, 답답 이라는 기본적인 무교 이미지 위에, 이승만파는 오랑캐라는 전라도 유교 관점이 덧입혀지고, 통일= 풀림, 열림이라는 기본적 무교 이미지 위에, 남로당 운동을 통한 건국반대운동은 정의롭고 그 전통을 잇는 것이 정의롭다는 유교 관점이 덧입혀졌따.
 
분단과 통일은 결국 헌법 4조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 편이 개벽신앙으로 내란 민란을 하여 성공하면 그것이 종말론적 행복이라는 주장이 통일인데, 일반국민에겐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국가가 날강도 당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분단><통일>의 이분법은 철저하게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에 이어지는 개뻑다구 신앙으로서 호남개벽파 종족주의(반일종족주의)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 밖에서는 황당한 것이다.
 
문서자료로 통일을 다루는 문서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다.
 
니체의 위버멘쉬같은 초월자로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사회에 대한 강렬한 원망이다. 그리고, 귀족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씨족이 법 밖의 초월자로, 모든 부족이 법 밖의 존재였던 전두환이 되는 것을 이상세계로 본다. 이것은 조선유학사의 조선후기 해석에서 각 씨족마다, 각각의 중화주의를 내세우며, 각각 분파가 각각의 독자적 우주를 구축하는 것의 긍정화로 나타난다고 본다.
 
1994년부터 개뻑다구 개벽신앙 사탄교 노인끼리는, 대한민국을 근대국가 설정 이전의 세도가문들의 갑질 역사 복원으로 이면에서 합심을 사실상 했다. 물론, 세도가문들은 자신들만의 갑질이 아닌 것처럼 비춰지기 위해, 학문이 짧고 양반갑질은 그리워하는 무수한 잔챙이 양반들의 통로도 열어줬다.
 
조갑제닷컴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일베정게에서 한달만 경험하면 알 수 있다. 좌파진영은커녕 우파진영의 노인네들이, 이토록 서양문명으로서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알곡만 누리면서, 이 시스템의 작동을 위한 의무는 처절하게 외면하는지를. 이제껏 돌아온 것은 개뻑따구 개벽신앙 사탄교 노인들이, 모조리 체제 작동의 문제를 50대 이하의 젊은 세대에 전가한 것이다.
 
이승만의 주장은 간명하다. 민족이 기독교신앙을 통하여 서방자유진영과 함께 하길 바란다. 이승만노선은 결국 서양법 노선이다.
 
신채호의 주장은 조선공산당이 고종황제 신앙이었으니, 임금님 신앙이 곧 민족신앙이다.
 
한국경제문제는 부채문제, 부채문제는 부동산문제, 부동산 문제는 백낙청 원불교 고려연방제연결의 지방자치와 연결된다.
 
그 원불교 고려연방제는 개벽신앙 군주=정부라는 관점과 연결된다.
 
조선시대 종법제 역할로 세도가문들을 부동산 건설이익으로 돈벌어주기 위해서, 백성들이 부채들고 투자하게 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안 지는 시스템을 전제한다.
 
이승만 노선이면 이미 절망이지만, 신채호 노선에서는 노무현 문재인의원불교 고려연방제 설계로 인해서 망한 조직의 개혁 없이 그 노선을 따르라고 할 것이다. 그 시스템은 놔두고 정권만 바뀐 윤석열이, 고려연방제 세력이 아니라서 책임을 모조리 전가하고 뒤바꾸며 하나도 안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서양법 노선을 이어받은 박정희도 무당신앙 환타지를 막고(그때 용어는 유토피아는 없다’), 철저하게 현실주의 입장에서 하면 된다는 노선이었다. 신채호 노선으로 돌아선 1994년 이후 종족주의로 국가를 철저하게 쪼개버리면서, 부정부패로 가거나 공산혁명으로 가거나 양자택일 그 밖이 안 나오게 한 것이다.
 
문재앙의 평화경제로 문재앙 줄선 귀족들 돈 벌어주면서, 북한 김정은에 상납할 자금을 마련하려 인위적으로 불린 자산시장을 떠받쳐줄 아무것도 없다.
 
우파 노인들은 윤석열 정부의 공무원이 노예 백정이 조선임금을 바라보는 신화적 관점으로 막아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정부정책은 터질 것이 안 터지는게 아니라, 터지는 과정을 보다 더 국민이 덜 아픈 방향으로 취사선택을 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일반국민은 시장경제의 안정을 위한 탈 씨족적 신뢰를 긍정한다.
 
부동산가치가 어느 누구는 2017, 어느 누구는 2015, 어느 누구는 2013, 본인은 2004년 가치가 중심이라고 본다. 이런 비평은 느낌적 느낌이다. 부채 레버리지 버블이 전혀 끼지 않은 시점은 노무현 버블(2006-2008)의 이전 버전이다. 물론, 거기까지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은 진정한 시장가치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에서도 조갑제의 천하용인도 부정하는 이준석 띄우기 같은 부동산평론이 널려 있다.
 
상호신뢰를 위해서는 세도가문이 조선조 습속을 영원히 포기하는 양보를 해야 한다. 세도가문은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일반국민에게 노예제로 돌아오는 것은 어때?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다.
 
부동산경제의 이면에는 중국은 당 독재와 얽힌 종법제 신분제, 한국은 원불교 백낙청 촛불마왕과 얽힌 고려연방제 원불교 번안의 지방자치와 얽힌 신분제가 얽혀 있다. 민주당의 주장을 보면, 여전히 똑같다. 민족신화의 세계로 남북을 아우르는 어떤 초월적 신이, 기복신앙 무당처럼 성장을 가져다준다는 전제로 경기북도타령이다.
 
한국의 성장은 끝이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시장경제와 법치주의의 투명한 자료와 전문가가 있어도, 개뻑다구 개벽신앙 사탄교 양반가문들의 활동 영역 확보를 위해서 등판이 쉽지 않은 구조다.
 
이승만 노선(이승만을 우상화하는 것이 전혀 아닌)은 대한민국의 번영의 길이고,
 
신채호 노선은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 길이다.
 
역사의 긴 시험이 이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