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넘어서, ‘쓰레기’가 풍년인데-

군사정권의 한국문학사는 ‘춘원 이광수’를 강조했다. 지금은 ‘최남선 선생’이 강조가 된다. 대중적 인지도는 춘원 이광수가 맞다. 글을 쓸 때는 독자를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춘원의 독자는 일제 강점기의 노비 신분과 겹치는 일반인지만, 최남선이 쓰는 글의 독자는 같은 문사다. 최남선의 연구는 굉장히 수준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어떤 이면의 모습을 파악하면 이런 문제가 파악되지 싶다. 사실, 서양의 정치학인 politics보다 政者正也의 세계관이 압도하는 게 과거로 갈수록 한국 먹물들의 세계관이었다. 정치인들이 세상에서 외부로는 서양 근대성을 구현한다고 하면서, 내면으로는 조선 사대부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할 때, 정치인의 생각은 서양문명을 조선사대부의 양명학적으로 인식하며, 그 내부끼리 경쟁하는 구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기있는 경제유튜버들은 모두에게 공개된 딱딱한 통계지표를, 자신이 평생 실전 현장에서 이해한 경제이론과 덧 입혀서 바라본다. ‘경제이론서’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 유튜버가 현장에서 반복하여 익힌 그런 현장형 이론이다. 거기에 데이터를 덧입혀서 바라본다.
필자는 문학전공이지만, ‘안유화’가 인기가 상당히 있는 경제유튜버지만, 그 여자의 책 『더 플로우』가 경제이론의 인문학적 토대를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고 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안유화처럼 경제이론을 인식하는 분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파평윤씨인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론을 쓰는 유명인사도 있는데, 이해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려면 경제이론에 깔린 경제학 본래의 ‘이념’을 이해해야 한다.
정치인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김종필의 전성기처럼 직설적으로 한문을 과시하는 분은 없다. 그러나, ‘워딩’이 그 자체로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때가 많다. 이준석은 요즘 시대에 ‘언론’이 원하는 ‘센 말’로 제목에 걸리게 하는 법을 안다. 그러나, 이준석이 실력 있다고 보려면, 그야말로 완전히 모든 세상 판단에 개념이 없어야 한다.
정치인의 워딩이 가령 ‘버블을 영원히 막을 수 있다’라고 보거나, 지금 같은 현장에서 김대중 시대 이후에 반복된 공식인 전라도 유교와 연결된 공식이 무의미하게 반복될 경우에, 군사정권 때 1인 지도자에 종속된 생각없는 정치인이었다면, 김대중체제에는 당파에만 종속된 생각없는 정치인이란 판단이 된다. 군사정권 때 진짜 김대중지지 민주당 성향의 기성세대들이 방대하게 이야기했다. 아무 내용 없이 ‘애국’만 반복한다. 지금은 아무 내용없이 ‘종족=대동’으로서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 화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분들이 있다. 군사정권에서 박정희 전두환 충성이, 지금은 김무성/박지원-이해찬 충성으로 바뀐 것 뿐이며, 원색적으로 자기만을 위하는 정치인이 많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은 그때나 지금이나 적었다는 이야기다.
정치인의 판단은 문사만이 가능한데, 문사는 집단을 이루고 쉽게 배척할 수 없는 상태에서만 판단의 공론이 가능하다. 어떤 정치인도 자기 평가하는 거 좋아할 수 없다.
현재 매스미디어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정치평론은 조선시대 사극이 현재의 정치구도와 같다고 볼 때, 정치인의 처세술의 판단이다. 국민을 위하는 시점이 없다. 이는 동시에 매스미디어에 신문 데스크가 얼마나 독서량이 없는 좆밥들이, 신문 데스크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보수언론에 비해서, 데스크급의 독서량이 많이 적어졌다고 본다. 과거에 조선일보 데스크에 오른 기자는 그 자체로 文士였다. 지금의 조선일보 사설을 보라. 전혀, 아니다. 대학교수급 외부기고자와 같은 퀄러티의 사설을 보여준 과거와, 명백히 달라졌다.
사람의 말이 엄청난 독서량이 깔린 독서의 궤적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여 일반인이 알아듣기 쉬운 어투로 말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역정과 실력을 말해준다. 그 판단은 역시 실력자만 가능하다.
문장을 잘 쓴다는 말은, 비 본질적이다. 사실, 군사정권 때 순수문학 진영에서 흔하게 나왔던 기존 인사들에 ‘빨아주는’ 멘트다.
군사정권 때는 당연히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말이 있다.
너 참 개념이 없다, 란 말이다. 개념이 없다면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면서 부끄러워 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다. 공부한 사람은 소수요, 소수는 어깃장 놓는 집단 떼법에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안다.
필자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응원한다. 총선 이후에 자산버블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고, 윤석열 정부에 몰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이를 대비하는 정치인의 워딩이 안 보인다. 정치인의 경제실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판단도 역시 文士일 경우만 공감이 된다. 대폭의 공천개혁인 경우와 아닌경우에 대중의식의 차이는 아주 많이 난다. 물론, 세상은 文士가 힘이 없고, 자기만을 위하는 정치가 기준일 때 그런 시각으로는 인요한은 무리한 주장을 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나는 심플하게 본다.
‘국민을 위하며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를 지키는 정치를 지지한다’. 물론, 군사정권 때에 1인 통치권자를 강조하며 물개박수치는 그 관성 그대로, 종족=대동으로 특정 소속을 강조하는 메카니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1인 통치권자 관행이 얼마나 국민을 위했느냐는 현타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의 ‘워딩’은 그의 독서가로서 평생의 역사를 보여준다. 한동훈의 인기는 단순한 언론 주목보다, 나름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강조가 된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기획에 맞선 프로젝트로 메가시티를 내세우는 게 ‘정법’의 생각이라는 말이 맞다고 해도, 그 워딩은 ‘경상도 사람 일반인’의 좌파의 불의한 의도에 맞서는 진심어린 생각으로 보였다. 무속인이전에 정법도 경상도 사람이었다. 반면에, 메가시티를 반대하는 중랑구와 도봉구 정치인은 재개발 이야기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관련한 언론의 문제와, 인플레이션 발 공사비 문제 등등에 대해서 까막눈 정치인만 가능한 드립이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제 위치에 있어야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가능하다. 실력이 없고 이름값만 있는 이들이, 언론이 좋아하는 감정적으로 센 말만 하면서 버티는 경우는,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매우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民을 위하는게 오직 자기 뿐이더라. 다른 이들은 전부 부패했더라. 이 판단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文士여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