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13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마지막으로 본 이후 처음으로, 20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모국에서 티비로 보게 된 셈이다.
“다시 대한민국”으로 시작되는 새 대통령의 취임식 슬로건은 절로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와 취임식에서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연상케 하였다.
이 슬로건은 레이건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도 대선 캠페인에서 사용했다는데, 트럼프 대통령 대선 당시엔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이 쇠퇴해가고 있다는 절망감과 불안감이 팽배하던 분위기라 그런지, 큰 공명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필자도 나름 자유롭게 미국인을 전도해 왔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후 전례 없이 태도가 돌변한 한 무슬림 교도의 항의를 받았던 일을 통해 전도의 여건이 나빠진 것을 몸소 실감하던 차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슬로건도 보고 평가하는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적 현실인 만큼, 트럼프 반대파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슬로건을 과거 백인 남성 우월주의나 인종차별과 연관짓는 의미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번 새 대통령의 “다시 대한민국”은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그런 경제적 혁신의 정신으로 국정 제 분야를 새롭게 발전시키자는 의욕이 담긴 표현이 아닌가 나름 생각 한다.
또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강조한 “자유”와 “자유시민”, “반지성주의” 그리고 “과학기술” 등의 표현은 언뜻 17-18세기의 시민혁명과 계몽주의를 생각나게 하는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이 시대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 비판할지도 모르나,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21세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고 갖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자유”나 “지성”이라는 것이 상대주의 가치관적 현실 속에서 볼 때 그리 변변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목하 한국의 사회환경을 생각해볼 때, 이 “자유”나 “지성”은 반성과 정립과 갱신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사안임 또한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어쩌면 초스피드로 진행된 정치 입문과 유세 과정에서 새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집단지성”을 슬로건으로 걸고 있는 반대 당에 의해 심리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적지 않게 부자유 내지 반자유적 폭력성을 심히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17-18세기 계몽주의 물결이 중세 말기 극도로 타락한 교회적 폐단으로 촉발된, 부당한 교회 권력과 기독교 중심적 이성으로부터의 자유를 구가한 것이었다면, 사회개혁적 의식을 지닌 한국인들이 말하고 싶은 자유란 세상의 각종 권력과 인간 중심적이고 집단주의적인 편파적 이성으로부터의 자유일 것이다.
획득한 자유로부터 다시 자유의 회복을 주장하고, 획득한 이성으로부터 다시 지성의 회복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불완전한 현 세상의 운명적 속성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위대한 것은 계몽주의적 인본주의가 안고 있는 자유와 인간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를 본래적 바른 위치로 돌려놓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자유와 이성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성경을 통해서만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 이성의 범주 안에 드는 지성도 결국 마찬가지다. 회복된 이성과 자유로부터 비로소 은혜의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다.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지략’일 것이다. 성경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고 말씀한다. 지략은 지혜에서 나오는 것인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성경은 밝히 말씀한다(잠 9:10; 11:14).
평소 정독 습관이 있다는 윤 대통령이 모쪼록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책 중의 하나로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쳐온 성경을 애독하는 축복받은 대통령이 되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복음주의 음악 가수이자 래퍼, 작곡가 및 전도자로 알려진 Carman의 ‘아메리카 어게인(America Again)’의 다음 가사 내용은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초대 대통령을 둔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비추는 영적 거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