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공론장”이 있다면, 지식산업센터 과잉공급 옆에 또 짓기는 없다.-한동훈 법무장관님이 공론장을 믿기에 국민으로서 반론해본다-
 
 

검색엔진에 ‘훈민공론장’을 쳐보시라. 강명구 교수란 분이 한국에서는 공론장 개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중심 권력자가 논할 때에만, 겨우 공적 사안에서 백성의 토론이 가능하다고 논한다.
 
공론장은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하버마스는 독일사회민주당의 親美파이다. 하버마스는 독일인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칸트의 선험적 조건을 논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게, 동시에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서 독일인의 특성인 ‘사회계약’은 독일인의 특성이 아니고, 독일인의 특성은 王을 논하는 것이란 말과 비슷하게,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의 조건을 따진다. 이는 동시에 한국 법에서 ‘공정거래법’이 독일 부르주아 계급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고, 王을 중심으로 다양한 합종연횡과 카르텔이 있었던 상황을 전제한다. <선험적>이란 말은 경험이전에 독일인에게 王이 있었다는 말과 사실상 같은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색당쟁의 나라였고, 그 나마 호구임금으로 존재한 고종황제가 ‘운지천’ 드링크를 거하게 마신 이후에, 항일운동사에는 임시정부가 여러개, 조선공산당 사건은 가짜공산당도 벌어질 만큼, 파벌의 억!소리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국의 시장경제는 지방자치별로 19세기 노론의 약탈 경제를 범하고, 그리고 중앙이 철종, 고종, 순종의 허수아비 임금처럼 정리를 하는 구조로 선택했는데, 김영삼 때 바로 사고가 났다. 귀책사유는 김영삼 시대를 재조명 해보면 민간의 통제불능한 비도덕행위를 중앙에서 정리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타나고 있는 게 현재다. 윤석열 정부를 찍은 유권자는, 어차피 멀지 않은 시간에 터질 부동산 문제에서 문제의 기원이 아니라, 현재의 관리자에 책임전가할 민주당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도 상당한 일이라고 본다.
 
독일인들과 한국인들의 王의 표상이 다르다. 한국정치는 압도적으로 東學세력이 여야를 꽉 쥔다. 민주당이 70%의 개벽파세력(호남개벽파), 국민의 힘당이 20%의 개벽파세력(영남개벽파)이 쥔다. 사실, 국민의 힘 당에는 지지층의 절대다수가 개벽신앙을 믿지 않는다. 당권을 쥔 영남개벽파는 이준석 현상에서 나타나듯이, 뻑하면 호남개벽파 후원을 받아서 보수정당을 엎어뜨리는 일이 반복된다. 종법제 속에서 자기의 잇권을 해결하는 문제로 본다. 개벽파 노인들에게, 왕은 종족적 어드밴티지를 줘야 한다는 전제다. 조국, 추미애, 윤미향, 이재명은 이러한 근대국가 형성 이전의 조선시대 老論습속의 복원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王은 호구임금으로 귀족의 재산증식 탐욕을 후원해주는 뒷배 수준에 다름 아니다. 반면에, 유럽에서 王은 기독교신앙에서 성부 주권을 상징한다. 유럽문화에서 좌파는 정부의 신성화다. 다만, 한국좌파와 유럽좌파의 현저한 차이가 있다.
 
기독교문화 속에서 독일 철학사가 있는 것과, 조선시대 사색당쟁과 그 연장편의 동학 문화에서 한국정치가 있는 것은 너무 다르다.
 
한국은 지식산업센터가 과잉공급 되는 옆에 또 지어진다. 의사소통은 개념이 같아야 벌어진다. 그런데, 한국은 東學의 비밀결사 민란신앙으로 어떤 내용을 말할 때, 이면의 다른 개념으로 우회하는 전략이 빈발한다.
 
한국의 경제문제는 가계부채 문제
가계부채문제는 부동산문제
부동산 문제는 노무현의 10.4와 문재인의 판문점과 얽힌 중국식 지방자치 문제다.
 
그러나, 민법 108조 가장행위로서 시장경제를 주장한다. 시장경제의 자기조정 모델은 공론장에서 담론윤리와 독일인에게는 하나로 연결된다. 미국의 시장경제는 ‘행정체계’-‘경제’-정부형태-종교문화 연결되는데, 미국의 기독교과 독일과 다르다.
 
한국의 건설문화는 이재명의 대장동이 빙산의 일각일 뿐으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시장, 군수, 구청장의 특권화와 이에 기반한 무제한적 탐욕으로, 나타났다. 의사소통으로 쌍방의 소통과 윤리가 아니라, 한쪽의 무한 탐욕과 한쪽을 호구화하는 전제가 나타난다. 원불교의 대승불교화해로, ‘탐욕’의 이면과 시장경제를 나란히 놓는 국민눈속임이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계는 짓는 순간 과잉공급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손해가 아니니까, 계속 짓는다. 마찬가지로, 김기현 당대표는 혁신위를 거슬러서 가는 것이 국민의 힘 선거에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老論의 약탈경제를 막고자, 1인 독재모델을 시험해봤다. 그냥, 중국 공산당식 사회구조를 한 것이고, 국가 자리에 ‘당’을 바꾸면 기가막히게 들어맞는다. 1인 통치권자가 없는 속에서 어떻게 국민통합이 가능한가?
 
法이 국민통합의 도구여야 한다. 즉, 法을 준수하는 데 피해가 없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후원회장 촛불 마왕 백낙청을 품는 기괴한 논리를 구사했다. 내란죄의 독일 제국시민과 기가 막히게 동학의 원시반본 교리가 닮았다. 헌정질서 이전에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으로 돌아가자는 게 백낙청 논리의 핵심이요, 매우 적확하게 내란죄다!! 조선일보는 연고자라고 품는다. 이재명은 대장동횡령이 매우 논리적으로 강한 판단을 받는다. 민주당은 연고자라고 품는다.
 
이상민 장관 탄핵 때 보이는 민주당의 자세는 ‘남로당 종족주의’에서 외지인을 뿔달린 괴물로 했다. 그 연장선상에 최강욱의 ‘암컷’ 발언도 있다. 민정당 때 반공이 호남을 뿔달린 괴물로 본다면서, 지금은 자신들이 그 밖을 뿔달린 괴물로 사실상 보고 있다. 지금 여와 야당의 동학세력은 상생, 상생 거린다. 자기들 눈에는 상생인데 남의 눈에는 황당이다. 종족법과 연결되는 중국사상은 전부 이런 식이다. 공론장에 얽힌 담론윤리 자체가 아니다.
 
요점은 간단하다. 공론장이 있는데 있는 기준으로 최강욱을 비판하는 한동훈 장관님이 매우 낭만적 상상이고, 최강욱은 공론장 자체가 없는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공론장이 없지만 있어야 한다. 공론장이란 표현은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세금을 빨아먹고 자기들끼리 하면서, 전국민에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포장하는 명분이 됐다.
 
전국이 종족별로 자기 대로 논리다. 정치권의 설계자 수준은 이면에서 조선공산당 라인끼리 일당화해놓고, 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이중전략이면, 개인화된 법치 국민이 어쩔꺼냐로 본다.
 
보수의 구명정 이준석이라고 조갑제가 말한다. 그 순간부터가 공론장은 이미 없다는 이야기다. 무조건 이준석을 빨아대는 초월적 존재로 이준석을 설정한다. 이렇게 종족윤리가 뚜껑 열린 속에서, 무질서를 극한대로 하여 일반국민을 고통을 최대치로 높이고, 이면에 깔린 개벽파 노인들의 행복만 극대치로 올리는 시스템인 것이다.
 
공론장은 서양정치학, 서양역사학과 만난다. 강용석변호사가 김용삼 기자와 만나서 전두환을 인물 우상주의로 빤다. 이런 인물우상주의 지식체계는 김대중이든 전두환이든, 공론장 형성의 교육기제 자체가 아니다. 한국은 조선시대 노론의 서원 문화를 연상시키게 다양한 형태의 ‘기념사업’으로 도배가 돼 있다.
 
도대체, 공론장이 있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토대가 있음을 한동훈 장관님은 국민에게 보여주셨으면 한다. 오히려, 없고, 없었으니까 있는 부작용이고, 민주화신화는 전부 ‘사기 범죄’라는 것이 사실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이다. 즉, 민주화단체의 상당수는 ‘부당이득금반환’의 청구대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의 이야기이고, 법적 증거로서 몇 인이상의 판단을 모으는 일이, 다양한 방해로 절망적 불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한동훈 장관님께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사상 논리를 근거로 대한민국에 공론장이 있었다는 근거를 주장해보시라. 민주화신화가 전부 사기라는 것으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혐오 발언”이란 문제제기도 독일 사회민주당과 얽히는 기독교문화, 즉 사도신경보다는 니케아신조로 성부주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공동체적인 독일 기독교문화 및 미국 민주당 기독교문화와 얽혀 있다. 그러나, 이재명 현상에서 보듯이 대순진리회 인지구조로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재명은 자기들을 감싸는 데는 혐오 발언 금지를 논하고, 이재명의 인지구조에선 화이론이 명료하여 사실상 혐오발언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게 다 거짓이며, 공론장이란 말은 대표적으로 허구였던 개념이다. 세웠으면 좋겠으나, 김기현 당대표가 인요한 혁신위 무시하듯, 이미 권력자들도 알만큼 아는 하버마스사상을 개무시할 것이다. 노론습속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작동하는 이면기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국민만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