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을 배우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신화'를 보라는 거.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정말 놀랍게도
현대 관점의 작법과 정확히 일치하는걸 알 수 있음.
그럼 고대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고 신화를 만들었을까?
절대 아니지.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고대인들로 하여금 산발적으로 만들어졌을테고,
그 중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현대까지 구전되어 내려올테니
당연히 신화는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거임.
그리고 그 '선택'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정리해낸 것이 현대의 '작법'인 거야.
현대 작법으로 쓰여진 모든 시나리오의 뿌리에는
지금껏 모든 인류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있는 셈이지.
우리가 보는건 봉준호의 기생충이겠지만
그 뒤에는 김기영의 하녀가 있을 테고
그 뒤에는 오손웰스가 존포드가 셰익스피어가 호메로스가
서있는 거야.
그런데 아쉽게도 인간은 한정적인 존재.
인지도 편협하지만 수명조차 100년 남짓.
그래서 인류는 삶에서 적으면 한 두편 많으면 수십 편
소설, 회곡, 영화을 남기면서
수십만년에 걸쳐 그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있어.
AGI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러겠지.
만약 인지의 한계가 없어지고 수명조차 무한한 존재가
전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이야기를 수초만에 탐독한다면?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작법을 만들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그 끝에는 인류가 원하던 '궁극적인 이야기'가 있자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그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나는 그 '궁극적인 이야기'를 보고싶은 욕구가 더 크다.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류는 무엇을 보고 예술을 해왔던 걸까.
특이점은 반드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