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경제와 관련하여 박정희를 변호하는 것
은,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가 아닌 그 ‘방식’에 집중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보수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와 관
련하여 박정희를 변호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문제가 아닌 ‘본질’의 문제에 접근
해야만 한다.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
를 하기 위해서는 박정희가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실용주의적 관점이 중요하
며, 보수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실용주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박정희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주장이다.
1. 박정희에게 정치란?
박정희가 정치,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신체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탈
정치’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정치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러한 결론
을 내린 것은 아니다. 사실 박정희의 경우 정치를 체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전인권(2006)이 말했듯이 그는 ‘반민주주의자’가 아니라 ‘몰민주주의자’라고 하
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원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에게 있어 정치란 어떤 의미였을까? 박정희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개혁을 ‘관념’
이 아닌 ‘실용’의 문제로 이해했다(베네딕트 2008, 105). 이러한 메이지유신의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박정희에게 있어서도 정치는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념이
아니라 국민 생활에 직결된 것이었다. 이는 『지도자도(指導者道)』에서 박정희가
민주주의에 대해 논평한 부분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형식’과
‘실제’의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주권의 연원은 국민에게 있는 고로 국민의 권리는 침범을 당하지 않
도록 보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물론 혁명전에 있어서도 제도면
에 있어서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내걸고 국민의 권리는 형식적으로 보
장되도록 되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실지로는 주권은 일부 특권층에
있었고 국민의 권리는 그들에게만 있었지 일반국민은 법적으로 보장
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었다. ⋯ 국가가 파멸에 직면하고 국
민의 주권이 비참히 유린되었을 때 여기에 일대 수술을 가하여 국가
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소생시키고자 한 것이 이번 군사혁명이다.
⋯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을 받고 국가가 파멸하는 순간에 처해 있을
때, ⋯ 국가와 민족의 수난을 피하기 위해 취해진 행위는 정당한 것이
다(박정희 2017a[1961], 25-27).
위 인용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박정희에게 있어 기성 정치는 국민 생활과 유리
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박정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동안의 정치는 “특
권층의 전매특허적 완상물(玩賞物)”에 불과했던 것이다(박정희 2017c[1963],
281). 물론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러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경험의 소산은 아니
었다. 박정희가 정치에 대해 내린 결론은 한국사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관념
의 결과물이었다. 박정희에게 있어 한국사는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퇴영
(退嬰)의 연속’일 뿐인데, 그 중심에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박정희 2017b[1962]).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정치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서 배제하는 ‘탈정치’야말로
국민 생활을 증진할 진정한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그가 말한 ‘행정적 민주
주의’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정치’와 ‘행정’의 분리라
는 박정희식 권위주의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기왕의 부패를 일소하고 국민들의 자치능력을 강화하여 사회정의를 구현”
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박정희 2017b[1962], 229).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를 기성 정치와 다르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엘리트주의
적 발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가 생각한 정치
역시 서민 대중에 착근한 ‘신세력층’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박정희 2017c[1963],
150-152). 여기서 우리는 조희연(2010)이 말한 “결손 국가와 결손 국민”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나 일본의 기준에서 봤을 때 근대적 국가와 근
대적 국민이라 볼 수 없는 후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 이를 정상 국가
와 정상 국민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박정희에게 있어 정치는 ‘관념’이 아닌 ‘실용’의 문제였다. 그가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의 고운 손”을 미워했던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이다(박정희 2017c[1963], 270-271). 그에게 있어 필요한 사람
은 시집을 읽는 ‘관념론자’가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기능공’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박정희나 그를 추종하는 보수
주의자들이 박정희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한계를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정당화
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정욱(2017)의 글은 박정희와 공명(共鳴)하는 보
수주의자들의 정치관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박정희가 ‘혁명
가’ 다음에 ‘경영자’의 길을 선택한 것을 ‘신의 한수’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치
를 ‘혼란’ 그 자체로 보는 박정희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남정욱도 만일 ‘혁명가’
다음 단계가 ‘정치가’였다면 한국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그의 글은 박정희의 초기 저작인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이나 『국
가와 혁명과 나』에서 정치적 수사로 버무린 주장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
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책들에서 보이는 상호모순적인 내러티
브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남정욱도 인용하고 있는 박정희의 개인
의 자유에 대한 강조와 전체(공동체)에 대한 강조는 상호모순된다. 정치적 선전
물(political propaganda)에 가까운 책에서 개인적 철학이 어떠하든 자유와 같은
규범적 호소력을 가지는 정치 가치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보수주의자들은 박정희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실용주의적 성격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실용주의의 정치는 정치 논리를 배제한 채 경제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에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규범적 관점으로 승화된
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탈정치’가 ‘탈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박
정희의 탈민주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박정희가 탈
정치를 한 배경에 대해 살펴본다면 더욱 긍정의 여지는 없어진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박정희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경험의 소산이 아니라 한국사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관념의 결과물인데, 박정희의 초기 저작에서 보여지는 한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은, 송철원(2020)이 말했듯이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을 줄곧 강조한 식민사관의 ‘재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