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이 1950년 이후 쓴 시는 ‘토속적인 바탕’이나 ‘정밀한 언어의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
북에서 조선문학동맹 시분과위원장을 지낸 이용악은 6·25전쟁과 김일성을 칭송·찬양하는 시를 숱하게 썼다.
‘별조차 눈감은 캄캄한 밤에도/ 울던 울음 그치고 타박타박 따라서던/ 어린것들 가슴속 별빛보다 그리웠을
/ 김일성 장군!//(중략)//흰 종이에 새빨간 잉크로/ 어린 여학생은 정성을 다하여/ 같은 글자를 또박또박 온종일 썼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평양으로 평양으로’·1951년)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알지 못하기에 섣불리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월북 시인이 모두 그처럼 노골적인 찬양시를 쓰지는 않았다.
해방 이전엔 명성이 더 높았던 시인 백석(1912~1996)은 북에서 ‘원수님’을 칭송하는 동시를 쓰기도 했으나
이후 농장 노동자로 살며 40여 년간 절필했다. 박태원·이태준·안회남은 북 정권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
임화·김남천·이원조는 1950년대 숙청당했다.
반면 이용악은 김사량·박팔양·이기영 등과 함께 북 정권에 적극 가담했다(정진석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
이용악이 북에서 쓴 시까지 망라해 2018년 나온 ‘이용악 시전집’은 엮은이의 말에서
“폭압적인 전두환 군사정권을 이은 군 출신 대통령 노태우” “이승만 반공독재의 연속이었던
박정희 철권통치하의 엄혹한 세월”을 적시하면서
“월북 이후 작품을 통틀어 ‘이용악 시전집’을 이제야 내놓는다는 건 그러므로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라고 했다.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이자 세계 최악의 세습 독재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용악이 북에서 활동한 행적을 관용하고 해방 이전 시 세계를 따로 떼내 높이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폭넓은 관용을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문화예술인에겐 왜 적용하지 않나.
이용악보다 우리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훨씬 더 기여한 서정주에 대해선 한때 행적을 집요하게 문제 삼아
‘미당 문학상’을 끝내 없애버렸다.
지난달 별세한 단색화 거장 박서보는 사재를 내 ‘박서보 예술상’을 만들었지만
일부 단체가 “유신 정권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해 결국 1회 만에 폐지됐다.
우리 사회에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왜곡과 편향이 심각한 지경이다. ( 조선일보에서 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