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인들에게는 기복주의 기도가 자연상태다. 이웃을 성찰하지 않는다. 이웃을 연구하지 않는다. 냉정한 말로, 주식하는 분들이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에서 90층에서 물렸다. 아무 생각이 안 날 것이다. 미국에서도 요즘 유행한다는 데, ‘질러 버리고 기도하는’ 방식의 투자란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동서양을 아우르는 기복주의의 결론은 무엇인가? 다양한 형태의 말세의 징조일 것이다.
본인은 대학 입학 때,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그야말로 소명의식으로서 한국학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민족해방통일전선으로 ‘개벽파 공산주의’귀족가문의 장악에 밖이어야 했다.
나는 정말 노력한 만큼 빛을 보고 싶었다. 그렇지 못했다. 나는 죄스러웠다. 나를 자책했다. 왜 이랬을까? 차라리, 완전히 밖에서 섰으면. 사실, 요즘 적고 있는 글들의 대부분은 정확하게 사실근거가 있는 학술논문의 종합이다. 그러나, 지금 지배층이 ‘민족해방공산주의’와 어둠으로 연대하고, 밖으로는 안했어요 하는 내숭의 보편화에서, 그 내숭의 유지에 상당히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 사실, 그 자체인데, 그 사실이 아프게 누군가에겐 들릴 수 있음을 이해한다.
사실, 우리 또래는 다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자유민주 수호자가 반공체제에 빨갱이처럼 몰릴 줄 누가 알았나? 특히, 제일 절망적인게 있다. 군사정권 한국교회가 했던 말. 다수에게 전파할 수 있는 권력지위가 얼마나 소중한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세상에서 원불교 촛불두목 백낙청 파벌 지배하에서, 철저하게 밖으로 버림받은 나의 아마도 일생일대의 요약적 제시를 누가 믿어줄까? 역시, 사실로 믿어주는 분들은 ‘기복기도’가 아니라, 정말로 이웃을 성경대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일 것이다.
조갑제기자는 연일 종족주의로 본인의 정반대 대척점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기독교인은 종족주의로 작심하고 행하는 글쓰기에 판판이깨질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기독교인은 복음수호의 개인이고, 종족주의는 씨족과 얽힌 집단이다. 하나님께 조갑제기자는 평생 교회에는 출석하되, 평생을 자신의 신앙을 개벽신앙에 유지한 분인데, 어느 순간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길 앙망한다.
홍준표씨도 양반짓. 이준석도 어린놈이 양반짓.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진다는 데, 공적 아젠다로 토론할 주제는 아몰랑. 자기 밥그릇 싸움과, 조선유학사 사대부처럼 자기 중화(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다)에 빠져 있다.
교회에 오래 출석한 분이면 다안다. 믿음이 없는 ‘해주시옵소서’만 붙이는 엄청난 멘트를. 우리는 기독교신앙을 통하여 신분노예제 중국경전이 아닌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하나님이 이승만을 통해 명하신 비전을, 복음전파를 통하여 다음 세대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복음은 사회철학이 아니다. 조갑제기자의 행보가 있어보니까 안다. 조갑제씨는 함석헌 저작집처럼 중국경전안에 서양문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없다!! 완전히 없다!! 반면에, 특정지역에 기독교신앙 형태와 그 지역의 서양철학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승만을 도대체 왜 종족주의로 긍정하나? 이승만을 통해 하나님이 명하신 뜻은 그게 아닌데.
그렇게 그렇게 안타까움을 표하는 하루 하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