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금리 시대의 ‘자본소득’ 은 세계적으로 고도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한국은 서구좌파 기준으로 넘사벽의 最惡의 惡을 보였다고 본다. ‘저금리’는 아주 손쉽게 지방자치와 연결된 이해관계자집단이 부를 증식하고, 국민구성원의 부채를 늘리는 일이 됐다.
필자는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기자의 부동산 관점으로, 한명숙이 한나라당 찍으면 부자 된다는 이야기를 지적하여, 정말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다는 착각을 재생산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실의 국민은 3-4억 현찰 보유자요, 70%의 가계대출을 끌어들여야 평균적 부동산을 산다. 집값이 30%만 하락하면 자기 돈 전액손실 구간에 들어간다. 부자가 되면, <시장-군수-구청장> 및 <정치인-지방자치의원-건설사-언론사연합>이 부자가 된다. 국민은 가난해진다.
필자는 수요공급곡선에 입각한 공급부족론 프레임을 작동시킨 자유경제원의 김정호교수의 논리를 부정했다. 채상욱은 가계대출발 수요요인으로 보는데, 본인의 오래된 생각은 자본소득을 누리는 건설업의 먹이가 있으면 공급이 있고, 없으면 공급이 없다는 것이다. 김기현의 김포시 서울 편입 주장을 헬쓰에 미친 중랑구와 도봉구에 속한 정치지망생이 비판했다. 이미, 착공한 사업장은 어떻게든 완결 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착공도 하지 않은 사업장은 현재와 같은 사업환경이면, 시작조차 안할 가능성이높다. 이미, 이명박 정부 때 보였던 관행이다. 도봉구와 중랑구 정치인은 재개발을 논한다. 재개발은 절대적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의존이 높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도봉구와 중랑구의 정치지망생은 또다시 국민이 더 많은 부채를 지고, 그들의 건설 수수료를 위하여 집을 짓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본다.
국토균형개발 이데올로기는 ‘영정조 탕평책’이라는 중화사상에 미친 노인들의 상상세계를 현실에 작동시킨 노무현의 발상이다. 사실상, 정치사회과학적으로,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과 관련된 양반가문연합의 집단 이익이 아닌지 강하게 의문한다. 모든 국민 시점의 균형이 아니다. 권력과 연결된 특정 양반집단 연합 기준의 균형이다. 모든 국민 시점의 균형이라면, 가령 경기도 지역에 비싸도 너무 비싼 초호화 지식산업센터의 초 과잉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싸게 부채를 끼고 매입한 지식산업센터로 국민은 가난해지고, 정치인이 부자가 된다.
표영호 부동산 유튜버는 한국에서 지식산업센터 공급을 제대로 계산 했나 의문한다. 본인은 그 공급계산을 아예 안했다,고 확신한다. 노무현 때도 그랬다. 부동산업계는 현찰을 많이 가진 수요층을 뻔히 알고 있다. 강남 및 현찰부자 동네다. 그 주민들을 마치 왕에 대한 후궁이 우리에게 납시옵소서. 하듯이 노무현 때도 거의 모든 지역이 강남주민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강남주민이 10배는 존재하는 모양새였다.
19세기 老論의 사회존재론을 그대로 현재에 끌어들이고, 노론의 집단이익 당파성을 노무현과 문재인은 ‘민족공산당’으로 세우려는 의지를 보였다. (결코, 김일성주의와 얽힌 공산주의가 아니다. 이러니, 더 最惡의 惡!이다.) 노론 내부끼리는 각각 자기 중심의 약탈경제였고, 그 내부에서는 어떠한 횡적 연결이 없다. 조선 중화사상이라고 표현된 小중화주의는 각각 마을마다 자기중심주의다.
그렇게 각각 마을마다 초초 과잉 공급을 하고 지방의 특정사대부가 불의한 이익을 먹고, 그 사대부의 최고책임자인 정부가 바가지 쓰는 구조다. 정부가 바가지 쓸 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지방의 특정사대부의 부패이익을 감싸달라는 구조가 나타난다.
서울의 접경지대의 경기도 도시를 서울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는 주민에는 절대로 유리하다. 사실, 행정구역은 행정상의 문제이며, 행정서비스의 이동일 뿐이다. 그러나, 그 접경지대의 건설 이익으로 뒷돈을 챙기는 이들에게는 절대 불리하다. 이미, 경기도를 쪼개서 경기남도와 경기북도를 나누고, 서울의 북쪽에 대하여 안 봐도 비디오! 북한과 중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어떤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지 싶다.
국토 균형 발전이란 노무현의 이데올로기는 노무현의 10.4를 중점한다. 모든 예악사상의 중용은 王이 중심이다. 일반국민 중심이 아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김대중이 1971년 대선에 영미식 혹은 독일식을 한다고 주장해서 시작했고, 그리고 1987년 대선에도 김대중이 반복주장했다.
과연 시장주의 경제에서 나타나는 시그널을 일방무시하고, 부동산 부정한 이익의 ‘탕평’을 의미하는 국토균형발전은 가능한가?
서울과 경기도가 가격이 같으려면, 경기도민의 더 많은 부채가 필요하고, 서울과 충청도의 가격이 같으려면, 충청도민의 더 더 많은 부채가 필요하다. 노무현 기준으로는 균형인데 일반국민 기준으로는 균형이 아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의 만남에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할 때, 남로당 인민공화국 후손 기준으로는 평화인데, 그 씨족 밖인 한미동맹파 기준으로는 극강의 반 평화다. 19세기의 대원군 역할인 김무성의 의지로, 이준석 홍준표가 생환했다. 김무성 중심으로는 균형이며 탕평이다. 일반국민은 황당하다.
이런 것이 시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모든 것은 시장, 군수, 구청장의 책임인데, 폰지사기 구조로 나타난 시장은 더 이상 사줄 사람이 없는 구조로 처했다. 금리가 올라도 너무 올랐는데, 이 구조에서 부채를 들고 새롭게 사줄 사람이 없다. 모든 것이 부서진다. 경기신문은 환난상휼을 주장하며, 영끌 피해자에 대하여 일반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사실은 부동산에서 ‘농업시대의 대동미’같은 탕평 균형을 전제한 발상에 원죄가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계약자유원칙이다. 쌍방 신의성실을 전제한다.
반면에,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은 노무현과 지방자치의 ‘군주’와 ‘제후’간의 밀약을 전제한다. 균형이 균형이 아닌 것이다. 유교의 군주제는 물꼬의 독점을 전제한다. 토건사회의 정책의 물꼬를 쥔 군주는 일방적으로 일반국민에 불리한 저금리를 해주고, 지방 사대부들의 이익을 보장한다.
서울의 확대가 큰 흠결을 주장하는 동아일보 사설은 2006년 이후에 지역의 건설이익을 독점한 개벽파 사대부의 이익을 보장해야만 한다는 헌법에 없고, 개뻑다귀 개벽신앙에만 있는 관점의 집착이다.
우파진영은 부동산의 시대가 끝나감에도 참 논쟁이 없다. 지방자치와 얽혀진 이재명 부패에도, 그 부패의 발생의 구조적 양상은 모르고, 이재명이나 문재인이 감옥 갈 때, 만화영화에서 악마가 처단되는 그 기쁨을 누리는 저급한 카타르시스에 중독돼 있다.
이명박 때 이미 다 경험했다. 현재와 같은 건설환경이면 공급은 준다. 공급부족이면 가격 급등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은 현실에 어긋난다.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성장률과 금리와 수출에 기반한 유동성이 보장이 돼야 오른다. 정치인들의 정치입문은 국민을 대변하는게 아니라, 재산증식이 첫 번째 요인이 아닌지?
홍준표씨가 윤석열 대통령을 야단칠 때, 영락없이 조선시대 세도정치의 그것이다. 황당하다. 은근 슬쩍 국민도 모르게, 세계 最惡의 惡을 보인 노론의 불평등 구조가 마치 ‘민주화’인 것처럼 논하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김기현의 김포시 편입 발상을 그렇게 프레임질 하고 있다.
우리는 왜 노무현이 세운 이념틀에 대하여, 도대체 몇 년 이 지났고 환경이 다 바뀌었는데 극복한다 말을 못하는가? 정치지망생들은 부동산 이야기만 할 거면, 중개사 자격증부터 따는게 맞다. 국민은 부동산의 시대가 끝났고, 끝나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지망생은 ‘님의 침묵’처럼 가버린 님을 앙망한다.
지방자치가 제대로인가? 국민은 단 한번도 군주제 중심의 탕평론이란 反시장주의를 동의한적 없다. 노무현 때 시행당시에 정치인 연합이 국민을 사기를 친 것이다. 탕평론은 군주중심이든가, 제후(당시로서는 이해찬)중심이든가, 어차피, 민주정의당의 ‘정의’에 속하는 것의 ‘열린우리당’(현재의 민주당)버전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이 공감이 전혀 안되는 그들끼리만의 논리일 것이다.
1) 국토균형발전 - 정치집단이 골고루 건설뒷돈을 먹자는, 농업중심의 반 시장적 발상
2) 현재의 경제왜곡의 근원
3) 모든 국민이 전부 비판하는데, 정치지망생들은 여기에 집착.
4) 부동산 붕괴 이후의 한국 사회의 비전에 대하여 논쟁이 없어도 너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