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용화? 일본인과 대만인은 자국어표현으로 자유진영과 이미 한 몸
-문재앙 동북아균형자론 때 미국인이 ‘극대노’했던 이유는 세계관-
 
 


문재앙이 미중관계에서 중국편 들면서 미국에 헤헤, 미북관계에서 북한편들면서 미국에 헤헤. 그러는 것이 노무현 때 부시 미국 국무부처럼 트럼프 미국 국무부에서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가 아니었다. 미국 백인측에서는 한국의 자유진영 일탈을 주장했다. 동북아균형자론에서는 자유진영 세계체제와 별개의 이단인 ‘小중화사상’이 대량으로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번역기를 쓰면서 미국인들과 성경영역에서 소통하고 있다. 만 3년을 해왔고, 앞으로도 7년을 더하면 성경과 관련된 미국과 한국인간의 번역 의사소통의 ‘버그’(오류)는 다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번역의 품질은 계속 더 향상됐다. 갈수록 90%의 한국인(번역기보다 영작을 잘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에겐 영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묘한 발견이지만 미국인들은 대만사람들의 자국어 표현과 일본사람들의 자국어 표현에 매우 관대하다는 점이다. 이미, ai 번역으로 상당히 품질 높은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모른다. 대만인이 쓰는 중국어는 모든 표현이 중국어 자체가 경전과 얽혀져 있다. 여기서, 돌아나와서 서양시스템으로 국민국가적 전환이 명료하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도 만만찮은 유교문화가 있다. 히라가나에서 ‘토씨’를 제외한 한자는 역시 이면에서 자유진영을 훼손하는 별개의 시스템을 줒아할 우려가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의 근간에는 서구 기독교문명안에서 신앙고백 차이만으로도 생각의 대립으로 피곤해하는 점이다. 이재명 후원회장 원불교 백낙청이 자신의 분단체제론이 인용한 월러슈타인의 세계체제론은 아날학파의 역사관 위에 있다. 정치 곡선이 가장 짧고, 경제 곡선이 중간, 그리고 문명 곡선이 아주 긴 곡선이다. 아시아권 국가가 서방자유진영의 시스템에 관련한 지식을 자기화하면, 미국인들은 국제관계에서 진정한 관계로 생각한다. 반면에, 문재앙처럼 ‘현저한 중화사상’계열의 세계관을 설파할 때, 미국 자국민들은 “꺼져!” 하고 싶어진다.
 
조갑제닷컴 할아버지는 80년대 후반에 복거일이 주도한 영어공용화 주장을 반복한다. 한국인이 영어를 공용화하면 돈을 버는가? 그런 인식 수준으로는 영어를 꼭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 어느 언어로 적어도, 번역기로 전부 번역이 되는 사회다.
 
진짜 문제는 조갑제기자가 아무리 영어를 잘하여 조갑제기자가 말하는 내용을 설파한다 하더라도, 조선시대 사색붕당 정쟁편의 연고온정주의에 기반한 이준석 義理를 주장하는 수준에서는, 문재앙 못지 않은 중화사상 계열의 사고관에 이게 뭐야! 하는 반응을 유발한다.
 
중국학책에서 나타나듯이 씨족의리(법)과 종족의식은 중국인에게 하나다. 중국 속국을 주장하는 한국인에게도 이 원리는 그대로 통한다. 반면에, 서구진영에서는 법앞의 평등을 주장하기 때문에, 중화민족식 일원론을 부정한다.
 
게다가, 로마법체제는 누구에게나 선명하고 투명함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인이 보기에 헤겔사상은 ‘몽롱함’의 극치다. 유럽의 기독교인의 종족주의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겔 사상은 개뻑따구 개벽신앙의 몽롱함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부터 한국의 영미식 혹은 독일식 지방자치를 주장했다. 그래놓고 실제로 한 것은 중공식 지방자치의 초석이었다. 그리고, 또 이러한 상황을 깔아놓고는 서구식 지방자치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왔다갔다 왔다갔다 할 때, 서울대 법대를 나온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암호 해독 실패’로 레고랜드 사태를 빚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배권력은 친중적인 개벽파 귀족에 세뇌가 돼 있다. 경제권력에 끼어있는 특정종교인 개벽파 도그마를 모르는 김진태 지사가, 중과실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대 법대 나온 기독교정치인 김진태도 해석을 못하는 게 대량 나온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연대했다. 연대의 실제 몸통은 동학 교단임이 명백하다. 바지사장으로 김영삼 세력은 개신교, 김대중세력은 천주교 외형을 빌렸다. 그리고는 에큐메니칼 기독교를 주장한다. 에큐메니칼 기독교의 요한계시록 해석으로 창조론을 주장하면서, 실제는 동학교단의 종족전쟁 개념을 말한다. 이 부분은 누구나 쉽게 입증가능하다. 단, 입증은 무지무지 ‘짜증’이 확 올라올 정도의 울화통을 전제한다. 누구나 이를 입증하고 나면 드는 생각은 ‘이 피곤한 이들’하고 떼어서 살고 싶다고 본다.
 
군사정권은 대놓고 관치경제를 위한 gatekeeper로서 철인왕 플라톤 정치의 박정희, 전두환 영역을 만들었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시대에서도 여전히 gatekeeper가 존재한다. 김대중은 성리학적 군주신관의 군사정부는 잘못이고, 개벽신앙의 바지 임금 군주신관은 괜찮은 것처럼 주장했다.
 
중화주의 국제체제는 수직종속체제다. 충성/반역 같은 수직종속 원리가 내면에 지배한다. 반면에, 서구 자유진영은 수평적 체제다. 규칙 준수와 일탈의 문제가 논해진다. 영국 언론에서 한국이 급기야 <재정문란>으로 19세기 노론의 기록을 경신하나 하는 우려의 시각이 짙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더블에이 수준의 야구선수 몸값이,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값싼 선수 몸값과 같다. 동일한 노동이 동일한 몸값이 아닌게 당연해진 시스템이 됐다.
 
문재앙의 동북아균형자론으로 남북로당 공산민족의 종족적 대동은, 미국 국민과 한미동맹파를 노예화를 전제한다. 반대로, 이승만의 자유-공화당 종족주의는 문재앙 파들의 노예화를 전제한다. 이런 질서를 안하기로 하여 서방자유진영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취한다고 했던 것이 1987년 6월이다.
 
그런데, 민족신화를 사용하여 서방진영에 비위맞추고 뒤로는 중공과 북한과 맞추는 공산화를 하고, 원불교의 일원상진리인것처럼, <하나님을 사기치고, 이웃을 사기치고, 세계를 사기치는 일이 나타난다>.
 
성수동 같이 자체적인 생산이 없고, 오직 부동산 부채레버리지만으로 평당 2억 5천만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자국민의 부를 부자로 끌어오면서, 그런 약탈경제를 하면서, 유럽좌파 사회민주주의의 약자편향이라고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지속불가능한 거짓이 됐다.
 
미국인들은 영어로 공자 맹자를 번역해서 읽을 때, 뜻을 파악하기 대단히 어렵다. 미국의 친중파의 한계를 미국인들이 중국문화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조갑제기자 같은 이의 세계관은 미국인들에게 그러한 피로감을 준다. 자국민에게도 종족주의로 언어 불통의 피로감을 준다. 김세의 기자가 이준석에 ‘했어, 안했어’로 요약한다. 조갑제기자는 이를 의제화하지 않는다. 조갑제기자는 부산경남권 습속이라고 이를 공부하라고 훈장질하는 썸네일을 걸었다. 대체, 이것을 왜 알아야 하나?
 
언어는 이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디플엘과 구글번역기의 품질이 날로 날로 좋아진다. 특히, 특정영역에서 반복해서 사용할수록, 품질이 계속 올라간다. 번역기의 품질이 좋아질수록, 이젠 남아있는 것은 세계관이다.
 
한국에 서양인문사회학 학문 발전 수준이 어마어마하다. 조갑제기자와 일베노인은 민주정의당 수준에서 갇혔다. 민주당 성향 김어준처럼 우파 세계관을 표해서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영남 종족주의=우파, 자유주의>, <이거 바깥=좌파>라는 표현이 불가능하게, 세계가 단일화된 인터넷은 번역기를 돌려서 국경을 넘어서 ‘관찰’하는 문화가 나타난다.
 
일베노인과 조갑제닷컴 노인들은 가깝게는 80년대 후반. 멀리는 유신시대까지의 과거만 고장난 레코드판으로 반복한다. 그것을 세계가 인정하는 게 아니라, 세계가 속이 부글부글 끓는 상황이라고 보는게 맞다. 우파진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세계관을 아무것도 진흥안하며, 일베노인이 자주 하는 착오가 ‘청나라=미국’으로 보고, 왜 미국은 청나라 종속 습속대로 행하지 않나 하는 따짐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본인과 대만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는 비운동권이다. 반공실향민 2세다. 군사정권 이후에 90년대 조선일보 슬로건(김수환 추기경의 87년 프레임의 연장인 듯)대로, 살아왔다. 군사정권으로 회귀하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공부길을 해왔다. 반면에, 군사정권 때 민주당원이었던 조갑제기자는 90년대 내내 민정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청소년기를 가진 이들에, 학원폭력배 이상의 가해를 했던 이들에 노이로제 걸린 세대를 비웃듯, 군사정권 옹호를 복원한다.
 
조덕삼 장로가 자신의 노비였던 이자익 목사를 키운 장면부터, 1987년 김수환 추기경의 박종철 문제제기까지, 한국에서는 쭉 조선왕조 신분노예제로 돌아가지 않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 노력은 기독교인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이고자 할 때, 기독교세계관대로 살아야 하고, 자유진영이고자 할 때, 자유진영의 룰대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한다.
 
조갑제기자는 부산경남권 종족주의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라.
문재앙은 남로당 인민공화국종족주의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라.
 
국민과 국제사회를 부글부글 끓게한다.
 
문제는 ‘영어 공용화’여부가 아니다. ai번역기 품질 보라. 90%의 한국인은 평생 이길 수 없다. 이세돌이 ai에 지는 시대인데. 물론, 약간 한계도 보인다.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는 번역기보다 영어표현이 우월해야만 한다.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일반대중영역은 본인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ai번역기보다 영작을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관이다.
 
생각해보라. 중국인에게 서방자유진영 시스템 주장하지 않는데, 왜 서방자유진영에 왜 청나라 지배체제처럼 안합니까? 하면 말이 되나? 또, 이쪽 저쪽 일관성 없는 왔다갔다는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춰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