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주일 아침에 ‘끄적 끄적’하는 똥글-

한국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철학적 신학)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다분히 신학이론의 기계적 반응이라고 본다. 실제로 전쟁은 ‘무당신앙’, ‘샤머니즘 자연관’과 벌이는게 맞다. 헬라 인본주의가 신앙체험을 방해하는 빈도수보다는, 한국인에게는 샤머니즘 자연관이 신앙체험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김동리 소설의 ‘무녀도’의 대립각은 그대로 살아있다. 옥성득이란 자칭 교회사가는 기독교와 무당신앙의 대립에서 무당신앙 편을 들었다.(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 군사정권 한국교회 설교에 상당부분이 ‘샤머니즘’과 전쟁이다. 이렇게 한국기독교인 신앙체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흐름이 있었고, 옥성득처럼 샤머니즘 타신앙이 기독교라고 우기는 흐름이 있었다.
무당 굿의 세계는 구경이다. 무당신앙이 결코 유교 성리학처럼 가시적인 신분제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노비들에 몸에 박힌 심층무의식을 이용하는 신분제의 재활용으로 자신들이 삥 뜯는 기제를 사용한다. 특히,무당신앙은 아무것도 배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농촌의 노비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감정’을 사용한다. 무당은 철저하게 농민들을 구경꾼으로 가둔다.
신기한 일이 있다. 우파논객의 대다수와 정치인들이 모두 공천권에만 집중된다. 일반국민은 조갑제기자가 이준석에 공천권 줘야 한다고 주장할 때, 어떻게 저럴수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는 월간조선 출신 아무개씨의 주장에서도, 아예 인민에게 줘야 한다고 그러지? 이때에 무당신앙은 아니나, 무당신앙 위에 집지어진 전라도 유교, 혹은 그 위에 지어진 전라도 개벽신앙을 보게 된다. 영남은 조선시대에 정쟁에서 패배자 감정이 젖어서 자기 성찰이 베었다. 호남은 조선시대 승자였고, 누가 생각하더라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지배화는 무수한 꼭두각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선거가 왜 벌어지고, 어떤 이들을 누가 어떻게 왜 배제했나를 생각해보자)
한국의 부동산은 2006-2008년 노무현 버블 때 한국이 중국의 부동산 논리를 수입하면서 버블이 불었다. 리만사태 때 크게 꺼졌으나, 이명박 정부가 더 큰 부채를 사용하여 틀어막았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을 준비하는 박근혜 정부 관료내부의 작품이라고 나는 본다. 빛내서 집사라. 그 문제와 한줄로 연결돼서 문재인 정권의 제대로 된 부동산 버블이 나타났다.
2006년 이전에 성동구 성수동은 평당 3천만원 한다고 할 때 미쳤다고 생각했다. 2004년 무렵에 노무현 때 감정평가 방법을 바꾸어서 평당 700만원을 1500만원으로 바꾸었다. 성수동을 가보자. 성수동의 이면에 깔린 산업을 보자. 이게 시장경제 상식으로 제 가격으로 볼 수 있을까? 평당 2억 5천만원이다. 전혀 아니다. 이런 동네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을지로에서 장사가 안되도 너무 안되는 유동인구가 거의 적은 동네가 평당 1억원이다. 미국과 세계가 장기간 고금리가 불가피하다. 어린시절에 인플레이션 시대를 겪은 세대는 ‘미국 대선의 해’만 예외적 혜택이고, 나머지는 쭉 일관하는 특정한 공식의 지속을 기억한다.
김기원씨처럼 어디쯤 가면 부동산 바닥이란 판단은 매우 위험하다. 각자는 이미 90년대 부동산 바닥을 보았지 않나? 부실채권 문제가 5대 은행까지 올라가고,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공적 자금 계산이 되는 시점이 바닥이다. 혹은 외환시장이 무너져서 달러당 2천원 이상이 고정돼서, 모든 재산평가를 35%이상 하락시키게 고정하면서, 은행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때가 바닥이다.
대부분의 하락론자는 여기서 멈춘다. 그런데, 책임의식을 가진 일반국민은 이런 생각을 해야 마땅하다. 마스터 장 유튜버처럼 미국 보다 고금리해야 한다는 이론을 생각하기보다, 이게 무너지면 다음에는 뭘로 메꾸나?
노무현 때 국토균형 개발이란 프레임이 있었다. 노무현이 강증산이란 말이다. 이명박 때부터 ‘증산교 상생’이 많았다. 군사정권 관치경제라는 성리학 임금이 시장 자율을 통제하는 게이트 키퍼가 됐다. 이제는 증산교의 강증산이나 원불교의 부처왕이 게이트키퍼가 된다. 북한공산당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군사정권 권위주의 왕이 아니라, 이재명처럼 남로당 인구만의 안락, 혹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잘못된 판단처럼 이준석등의 호남개벽파 인구를 밀어준 영남 내부의 호남꼭두각시 종족을 위하는 것이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大同 이라는 생각이 지배한다. 군사정권이 성리학적 군주관으로 시장을 왜곡시켰고, 90년대 이후 김대중체제는 개벽신앙 군주관으로 왜곡시켰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있다. 이른바 ‘國家’라는 틀 안에 든 정치인들은 고도의 무책임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일반국민은 구경꾼이었다. 지금은 개벽신앙의 교주-포주-접주 영역에 속하는 국민들이 고도의 무책임성을 보인다. 오직, 권력을 유지해야 조선시대 사대부처럼 자신의 부를 확장할 텐데, 그리고 일반국민은 구경꾼이다.
사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인문학 공부는 돈 안되는 일이었다. 그때는 권위주의 때문에 말못했지만, 지금은 돈 안되는 일은 아무도 안해서 결과는 똑같은 일이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세계관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민은 자유민주주의에 줄 서는 것을 넘어서 실천해야 한다.
자산버블은 터진다. 윤석열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개벽신앙 지배체제의 30년 악행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자. 상가가 과잉임대료로 망해도, 건물 값 떨어진다고 임대료 안내리는게 일반화다. 이것은 ‘놀부정신’의 복원일 뿐이다. 이런 것이 안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 정상이다.
기독교신앙 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적 인문학 영역도 스스로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는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노아의 방주는 기독교인에게 이스라엘의 최초의 하나님만 믿는 믿음을 의미한다. 거짓된 왜곡 버블이 꺼진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국민이 정치인만 바라보지 않고 직접 생각할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