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엥 골드만이란 문학이론가는 역사는 예외적 개인이자 문제적 개인이 기록한다고 적고 있다. 이를 성경 말로 바꿔쓰면 ‘예언자’일 수 있다. 군사정권은 전능한 초월자의 이름으로 선악구분을 전능하게 해버린다. 그리고 민주당은 남로당 조상신의 전능함으로 민중당파성(미래에 세워진다고 그들이 믿는 인민공화국 당파성)으로 선악구분을 해버린다. 어느 쪽에도 지적 겸손은 없다. 조상신은 오직 수직종속관계의 계시만을 허락하며, 삼위일체가 없다. 역사의 기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이고자 하는 이들에게서, 하나님 영광의 기록을 위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기독교인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개벽신앙은 족보학으로 조상신 중심으로 우리 마을/딴 마을을 나눈다. 이런 우리 마을/딴 마을의 영남 버전이든, 호남버전이든, 이젠 지긋하고 몸서리쳐진다. 다시금 한국민족이 예수로 돌아서면 어떨까? 하나님 뜻을 완전히 대변하는 예언자가 어딨나? 성경에서는 예언자는 하나님 말씀 받아쓰기할 권리만 있다. 세상속에서 그러한 것을 읽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겐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하는 세상을 바라봄일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서 현실을 체험한다. 말씀이 주인됨을 믿고 사는 모든 기독교인은 교회 중심으로는 신앙인이고, 세상 속에서는 역사가라고 믿는다. 역사....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이 주인되는 하나님의 역사. 민정당 때는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임이 학원가의 상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있어 보인다. 대중성을 가질 수 있는 영역에 진입이 너무 너무 어렵다. 그 대중화영역은 개벽파가 꽉 쥐었다. 지겨워 미치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