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개신교+가톨릭)는 어찌하여 개벽신앙인들의 호구가 됐나?
-종교개혁 정신과 근대계몽주의를 포기하고 개벽신앙 할아버지 유년시절로-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의 부패한 독일 교회 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교회는 히틀러파시즘 때 ‘히틀러=구세주’ 독일 교회보다 더 심각하다. 생각을 안한다. 개신교는 교파 교단 및 개교회(주로 대형교회) 권력자의 노예적 판단이고, 가톨릭은 가톨릭 중앙의 판단에 노예적 판단이다. 어느 쪽으로든 성서적 신앙을 유지하려는 개인의 신앙적 결단의 정치적 힘을 볼 수 없다.
 
이 심각한게 ‘경제전문가’란 분들의 말만 믿고 무조건 몰빵하는 생각없는 국민성으로 확장됐다.
 
1990년대부터 지난 30년간을 ‘개벽신앙 할아버지’들이 사회의 권력을 쥐었다. 박정희 근대화 정치 이전을 기억하는 세대로 어려서 동성촌 문화를 살았다. 반면에, 본인 같은 엑스세대는 어려서 동성촌 문화가 아니라, 박정희 근대화정치 속에서 살았다.
 
본인이 최근 몇 년간 반복하는 주장은 노무현의 말을 빌리자면 본인만의 ‘오래된 생각’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하나 하나 운동권 좌파 내용들을 하나 하나, 한 줄 한줄 한땀 한땀 검증하면서 파악한 것이다. <감히 알려 하자>. 영어 원서도 아니라, 한글 번역서, 해설서, 등 풍부한 참고자료가 있다. 하나 하나 검증하자.
 
가톨릭 교황의 방북을 걱정하는 조갑제 기자의 걱정이 있다. 이를 문제제기하려면, 한국의 가톨릭은 가톨릭 조직신학으로 <불가능한 것>을 매달리나? 즉, 가톨릭은 조직신학으로 신앙 원칙 안 챙기는 <어버버버 연합>인가? 이런 문제제기가 있어야 된다. 오랜 검증을 안 거치고 하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이런 판단은 주저주저한다. 제발 투명하게 공론장에서 이 부분을 토론하자고 앙망한다.
 
한국의 가톨릭은 제사를 허락한다. 그러나, 군사정권 가톨릭은 달랐다. 조직신학 원칙을 깨지 않는 한도에서 허락했다.
 
반면에, 운동권을 지휘했던 민중신학(토착화신학) 지도부는 군사정권 가톨릭과 생각이 달랐다. 북한공산당은 결국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왕조다. 조갑제는 북한은 왕조니까 공산당이 아니라는 ‘헛소리’를 찍찍한다. 왕조니까 공산당이라고 보는게 사실상 정확한 판단이다.
 
민중신학의 토착화신학은 ‘유불선’이 합일된 중국공산주의의 중국고대사유를 앙망하는 大同세상 지향의 가치관에, 교횟말을 씌우려고 한다. 남북 문제와 얽힌 에큐메니칼 조직은 에큐메니칼 조직이 아니라,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복음으로 사기를 치는 집단>이고, 북한천도교 조직의 꼭두각시나 눈가림 조직으로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개로 나뉜다. 서방자유진영의 가톨릭은 ‘왕 신앙’을 격렬히 부정한다. 반면에, 해방신학 영역은 ‘왕 신앙’을 긍정한다. 출애굽기를 표나게 강조하고, 출애굽기 중심의 성경의 본문과 신약성경의 접변을 통한 삼위일체 신앙을 끌어낸다.
 
그러나, 답은 성경의 어떤 신앙 버전으로 가든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가 중심이고, 성경은 66권 창세기부터 강조가 된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설명안할 수가 없다.
 
반면에, 중국-홍콩 일국양제처럼 남한의 주권을 북한에 팔아넘기려면, 자유민주 대한민국에 대한 불만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이 망하는 지향의 <후천개벽 동귀일체>라는 개벽신앙 종말론이 있어야 한다. 남북문제를 주장하는 그 어떠한 정치적 의미있는 세력도 ‘삼위일체’신앙을 끈덕지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신반대운동 때부터 토착화신학 집단은 최종목적이 북한공산당 당성의 인식 지각과 얽혀지는 중국사상의 신적 존재가, 한국의 토착적인 기독교신앙이라고 ‘복음으로 구라를 치고’ 계셨다.
 
여기서, 한국에 개신교 조직에는 개벽신앙 양반조직과 무관한 분들이 있다면, 개벽종교 양반가문 출신 목회자가 있다. 이 분들이 집단적으로 헷갈리는 스탠스를 서자, 국민들이 ‘스스로 진리를 인식하는’ 개혁신앙의 만인제사장으로서 <아니오!>하는 일이 없었다.
 
본인은 모든 권력을 독점한 한국의 금권 권력에 정면 충돌하지 않지만, 한국경제의 낙관론과는 정반대편에 배팅을 한다. 경제문제도 똑같다.
 
도무지, 한국 국민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믿을 만한 특정인사의 사람을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딘가 배후의 뻔한 계열에서 오는 명령대로 행한다.
 
이제, 20-30세대는 완전히 조선시대 노비로 멘탈이 돌아가서, 자기가 가계부채를 지면 정부가 탕감해준다 그 생각을 한다. 자본주의 한국이 아니라 시진핑 중국도 일단 국제화가 되면 할 수 없는게 많아진다.
 
지금은 군사정권 때에 ‘충군애국’으로 1인 통치권자에 종속된 상황을 연상시키는, 전라도 개벽파 ‘후천개벽 동귀일체’에 종속된 상황이다. 군사정권에서 국민이 왜 생각을 안하니! 하며 파시즘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더욱 더 강력한 의미로 파시즘이다.
 
조갑제의 북한인권론이 94년부터이니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본인은 영어원서를 읽은게 없다. 30년간 검증을 했다. 본인만 한 거 같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환경담론이다. 본인만 열심히 환경공부를 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본인은 영어원서 읽은게 없다. 전부 번역된 한글 논문, 해설서 등을 참고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공적인 사고라면 행하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돈이 안되는 일에 행하는게 등신이지! 라고 말하는 등신이 풍년인게 한국이다.
 
40-50년대 출생세대는 군사정권 저항의 축이었던 먹물일 수 있다. 이 분들이 함석헌 저작집을 종교경전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함석헌이 그런 논조다. 개벽신앙안에 성경의 하나님 있다. 그런데, 없다. 함석헌은 한국형 사이비 신앙 특유의 논리의 종교적 독단을 했다. 없는데 있다고 우기는 것은, 종족적 원리로 쉽게 반대를 안한다.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개신교인과 가톨릭의 종교의 자유는 어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