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후 1919년 3월29일 독일의 과학자 O. Beiersdorf가

"Rotary Wing Controlled by a Photoelectric Circuit"이라는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 특허는 1922년 9월24일 인정되고 특허 번호 DE318232를 받습니다.

이 기술은 자가충전을 해가며 해상을 스스로 활공비행을 하여

먼거리의 전함을 격침시킬수있도록 해주는 기술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크루즈미사일의 원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특허가 발표되고 1930년 이후 많은 유럽국가들이 이와 유사한 형태의 공격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1941년 당시 소련의 전기회사 모세네르고에서 일하던 미하일 페르브킨은

(넵 맞습니다. 그 유명한 소련연방 제1부의장 페르브킨입니다. 하지만 이때는 그냥 전기기술자 ㅋㅋ)

회사내 몇몇 기술자들이 제안한 자율비행을 해가며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 날라가

타격을 줄수있는 유도무기 개발을 승인하고 착수합니다.


최초에 발표된 프로토타입 SB-1은 일반탄과 별 차이가 없었고 

카메라에 의한 목표물 식별기능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정확한 형태를 식별하기 쉽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 기술이 바다위에 떠있는 구조물 공격이라

실루엣 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진격으로 공장은 파괴되고

연구에 참여했던 개발자들은 상당수가 사망합니다.

페르부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공장과 인원을 보충한뒤 

SB-1의 연구를 느리지만 어렵게 어렵게 지속하게 됩니다.


이 무기의 가장 큰 목적은 자율비행이었기에

연구팀들은 날개를 단 형태의 모델을 1943년 제안합니다.

모델은 4개의 날개를 단 크로스 엑스윙 타입이었고

새로운 공장에서 풍동실험을 시작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모델이 실험에 사용되었지만

대다수는 실패하여 폐지 됩니다.

혁명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처형되었기에

단순한 노동자들로 만들어진 연구팀들은

너무도 많은 시간을 터무니없는 시행착오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1943년 9월11일 Fritz X에 피격당하고 있는 USS 사바나]




독일도 이미 Fritz X라는 라디오신호에 의해 가이드 되는 폭탄을 개발하여

실전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그냥 글라이딩만 하는 정밀유도탄이었고

자율비행에 의한 목표타격은 아니였기 때문에 

부족한 과학자들과 당시 기술로 없던것을 만들어내려던

소련기술자들은 너무도 많은 실패를 계속하게됩니다.



당시 소련의 이순신이라고 할수있는 니콜라이 쿠즈네초프는 이 무기에 관심을 보이며 지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스탈린이 독일은 침공하지 않는다 걱정하지마라 아무도 전쟁준비하지 마라 전군에 명령을 내렸지만

당시 소련해군은 육군과 다른 인민위원부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눈을 피해 쿠르츠네초프는 스탈린의 명령을 무시하고

해군에 전투준비를 시키고 강화하여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때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 제독입니다.

당시 독일해군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흑해장악을 시도했었지만, 

쿠즈네초프의 흑해함대 때문에 작전에 실패하게 됩니다. 

당시에 흑해를 독일해군이 장악했다면 

소련은 정말로 나찌독일에 점령당했었을 것입니다. 

스탈린은 쿠르츠네초프가 명령을 어겼다란 점에선 분노했지만,

쿠르츠네초프덕에 소련이 살수있었다란 점에서 인정하여 스탈린의 신임을 얻습니다.

이후 쿠르츠네초프는 스탈린에게 독일해군에 맞설수있는 강한 해군육성 계획을 제시하고 

스탈린은 이 계획을 지지합니다.  

쿠르츠네초프는 이때 SB-1의 테스트를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지시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이 SB-1M 입니다.







1945년까지 SB-1M은 100여대가 생산되고 

2차대전 이후에도 테스트가 계속진행되었고 1946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1200미터 거리를 활공하여 원거리 적을 탐지하고 타격할수있는 혁신적인 무기였지만,

크기와 성능에 비해 100키로 밖에 되지 않는 탄약으로 전함을 격침시키기에는 무리였었습니다.

1946년 말 떠오르는 쿠르츠네초프의 인기를 시기하던 스탈린이 쿠르츠네초프를 경질하게 되면서

더 이상의 지원은 끊어지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1947년 이후에도 남아있던 기술자들이 농업기계공학시스템에 의해 조직된

디자인 사무소의 일원으로 남아 연구를 이어가게되고

오늘날 우리가 보게되는 렌셋의 모체가 됩니다.


 
위의 자료들은 레어해서 아마 다른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일거라고 생각드네요

재미나게 보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