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의식 속에 조건화가 남아있는 한, 그것은 조만간 다시 나타나 그와 반대로 하겠다고 한 모든 결심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압도합니다. 유일한 해법은 자신을 관찰하고 변화시키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려면 좀 더 복잡합니다. ‘어떻게 자신을 관찰하는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마음속에 분노,공포,또는 혐오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이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관찰하는 것을 기억하기 전에, 그것에 압도되고 그 다음에는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게 됩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나서 잘못을 깨닫고 후회 하지만, 그 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또는 누군가 화내는 반응이 시작되는 것을 진짜 관찰하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도하자마자 그는 화나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마음속에 떠올립니다. 이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그 분노가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원인이나 상황으로부터 감정을 관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붓다는 마음과 물질의 궁극적 진리를 탐구한 결과, 마음속에 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두 가지 변화가 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호흡이 조금 거칠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더욱 미묘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 생화학적 반응인 감각이 온몸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보통의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절한 훈련을 받아 호흡과 감각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호흡과 감각의 변화를, 그것들이 위험한 힘을 모으기 훨씬 전에 미리 자신에게 주의를 주는 경고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호흡과 감각을 바라보면 쉽게 그 부정성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물론 반응하는 습관은 뿌리가 깊어서 한 번에 제거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위빳사나 명상을 꾸준히 수행하면서, 우리는 적어도 몇 번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스스로를 관찰하는 법을 깨닫습니다. 점점 관찰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반응하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우리가 부정적으로 행동했다 할지라도, 그 반응의 시간은 줄어들고 그 강도는 점점 약해집니다. 결국에는 아주 화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호흡과 감각을 관찰하여 평정하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게 됩니다.
마음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의 평정함 덕분에,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행동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창의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정성에 기계적으로 똑같이 반응하는 대신, 우리는 가장 유익한 반응을 선택 할 수 있습니다. 화난 사람을 만났을 때, 무지한 사람은 자신도 화를 내고 마는데, 그 결과 둘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요하고 평정하면 그 사람이 분노에서 벗어나 문제 상황을 건설적으로 헤쳐나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감각을 관찰하면 우리가 부정성에 압도될 때마다 우리가 고통 받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이해합니다. 이 이해와 함께 우리는 그들을 향한 자비를 느끼고, 그들이 더 불행해지지 않도록,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고엔카 위빳사나 명상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