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유튜브 삼프로 박태균교수 출연 내용은 보지 않았다. 박태균교수는 反美성향의 운동권들의 특유한 프레임을 언제나 사용했고, 현대사도 그런 프레임에서 해석했다. 나에게 안 봐도 본 것 같은 사람에 박태균도 속한다. 우파의 역사전문가라는 사람은 은퇴한 기자인 김용삼 기자, 조갑제기자, 그리고 칠순은 여유있게 넘어선 이승만 기념사업회에 붙어 있는 할머니다. 이래도 되나? 이 분들의 성과가 검증될 수 없는 구조에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고의로 고의로 고의로 좌파가 이기게 하는 거시구조를 짜면서도, 아닌 척 내숭을 부리는 이중잣대 아닌가?
한국법체계에서 대학기구 및 학문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모든 표현은 ‘취미생활’이다. 뒤집어, “똥글”을 써도 대학기구 및 학문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은 학문을 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즉, 박태균 교수의 주장은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신분이기에, 이에 합당한 대칭을 이루는 신분의 사람이 없는 한, 그대로 국민들에게 ‘진실’로 접수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가공할 미친 짓을 해서, 이렇게 엽기적으로 좌파로 기운 운동장을 만들었나? 조갑제 덕분이다!(나는 조갑제 때문이라고 안했다. 덕분이라고 말했다.) 文이 어느 정도 돼야 헌법 및 이념이 작동되는데, 조갑제는 정반대의 착각으로 ‘무당신앙 해원풀이가 극한대에 달함’을 사무라이라고 명명하고(실제 일본 사무라이도 아니다. 만화방 사무라이), 文은 좌파이며 文의 확대는 우파의 패배를 유도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정치철학의 좌파 계급투쟁에, 어떻게 하면 우파를 내부에서 패배하게 만드는가? 조갑제의 지난 30년은 이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뿐 아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는 내년 중에 가시화될 모양이고, 올 가을부터는 한국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위기가 재조명된다. 지난 30년 과거사 논쟁을 재조명해야 윤석열 정부가 바가지 안 쓴다. 여전히, 조갑제는 지난 30여년의 개벽신앙 경제운영의 문제점을 논의 자체를 못하게, 박정희 이야기로만 일관한다. 우파 안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당에 유리한 프레임이 나오나, 애 닳게 연구하는 분으로 밖에 안 보인다. (연구를 만약에 안했다면, 연구를 해서 명령하는 어떤 윗 분이 있던가)
결국, 상부구조에서 계급투쟁 영역에 속하는 영역을 ‘친북친중파’가 전부 장악했다. 이념전쟁 이전에 기본에서 밀린다. 제도권에 헌법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씨를 말리니까, 조갑제의 지배력이 매우 커진다. 조갑제기자와 월간조선 인맥의 지배력이 커진다. 그러나, 그 덕분에(때문이라고 이야기안했다) 조갑제닷컴과 월간조선의 지성의 한계가 우파 진영 전체의 지성의 한계로 확정돼 버렸다. 이들보다 우월한 사람들만 좌익측에서 등판시키면 뭘 해도 그들이 다 이기게 되는 싸움이 된다.
군사정권의 1인 통치권자 강조의 애국담론은 국민의 기본권을 외면한다.
그리고 민주통일(박지원-이해찬파)과 자유통일(김무성-조갑제파)의 상생 구조에서는, 개벽신앙 호남파(민주통일)과 개벽신앙 영남파(자유통일)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국민기본권을 짓밟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개벽신앙은 군사정권과 다른 이름의 ‘아시아적 봉건주의’를 종교이념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는 이념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역사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하나, 이념전쟁에 승리했다고 여기는 조갑제의 자유민주, 헌법, 자유시장경제 등 거의 모든 전면용어가 518%로 싹 ~~다, 전부가 다 틀렸다. 전부가 다 개벽신앙으로 왜곡된 표현이다. 이념전쟁에 승리를 하는데, 역사전쟁에 패배해? 족보학으로서 중국사패턴은 부족국가로서 지배층을 표나게 한다. 꼭, 그렇게 기득권자를 기득권에 박지 않으면 좌익에 진다. 이 말을 번안하면, 부산경남권의 개뼉다귀 개벽신앙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안하면, 흔들어서 민주당을 이롭게 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국민들은 경제 불황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달관하자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올까? 국민이 이들에 정면 맞승부로 뭘 하겠나? 법정 투쟁을 하겠나? 정치투쟁을 하겠나?
우익측에 전문가 몫을 배정안한다(조갑제, 김용삼, 이승만 기념사업회 소속 어떤 할머니는 현역 전문가 신분이 아니라서 제외돼야 마땅하다.)는 것은 ‘우익측에 인간의 존엄성’으로서 존재의 몫을 소외시킨다는 말이다. 학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침해의 상습성을 의미한다.
이런 잣대는 한국경제 운영에도 나타난다.
디플레이션 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채들고 부동산 잡으라는 유혹이 빈발한다. 로크의 [통치론]은 인간노동의 결과로 재산권을 바라본다. 개인 재산은 인간존엄성 결과다. 이를 ‘레버리지’로 일으켜서 정부(즉, 재벌, 지방자치단체, 건설사, 언론사, 정치인등 연합이기도 한)의 성장의 토대로 한다.
제일 압권중에 압권은 한국의 가시적인 경제위기에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북한주민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식 사고는 별 다른게 아니라,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서 귀양지를 훌쩍 뛰어넘고,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에서 귀양지를 훌쩍 뛰어넘는 사고로 나타난다. 냉정한 말로 ‘초등 학생’의 아이도 가능한 정신의 승리일 뿐이다. 여기에, 모든 이성논리를 말아먹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
조갑제기자다.
도대체, 왜 조갑제, 김용삼, 그리고 이승만 기념 사업회 소속의 이승만 연구 할머니는 조선시대 사대부처럼, 무제한적으로 커지려 하고 작아지지 않는가? 역사는 체험이다. 국민 개개인마다 다 다른 체험이 있다.
군사정권은 1인 통치권자 중심이고, 지난 30년은 1종족 중심이다. 이런 분들이 좌파독재체제를 우파 안에서 굳어주게 했다.
조갑제의 역사전쟁 프레임을 수용하는 분을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을 몰라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본류인 군대로 치면, 병력에서 압권으로 상대에 밀리게 한 사람말을 믿으라는 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의 전쟁개념을 빌려서 그람시의 헤게모니이론도 있다. 문화 상부구조에 전문인사는 하나 하나가 용감한 장수들이다. 이들을 씨를 말리고, 6.25 참전군인 호호 죽늙은이가 현역에서 싸우는 모습이 지금 한국의 우파 문화판이다.
개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