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양반후손을 위한 종족의리사관과, 일반국민의 역사의 분열의 극복이 먼저다. -역사전쟁이란 이름의 백성 가스라이팅이 왠말인가?-
 
 

공자, 맹자, 중용, 대학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만 입장을 허락하는 텍스트가 있다. ‘춘추공양전’에 나타난 춘추사관이다. 조상의 특정인을 위해서, 사대부 당신인 너는 어찌할꺼냐? 춘추를 놓고 공자와 맹자는 또렷히 행간의 메시지를 드러낸다.
 
50대 이상의 연식이 있는 분들은 ‘순수/참여’ 논쟁이 있음을 안다. 군사정권에 종속된 먹물은 참여측을 뿔달린 마귀로 행했다. ‘참여’를 모두 중국경전에서 윤리를 뽑아내고, 서양정치철학으로 명분론적으로 덧 입힌다.
 
4.19 세대의 참여측에 사르트르가 이념의 대변이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하는데, 사르트르 책자는 한국정치의 풍토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사르트르라는 사람이 한국의 민주팔이를 지원했던 국제적 후원자였다고 말하는 게 사실에 맞을 것이다.
 
어떻든지 아시아적 역사관에 발을 조금이라도 담그는 순간 따라 나오는게 있다. 1987년 6월 이후 좌익측에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 소외지대를 없앴다. 그러면, 당하지 않는 것도 따라가는 약속이다. 이게, 깨질 경우 1987년 6월 항쟁은 기독교를 주장하는 개벽신앙 단체에 의한 대국민 기망행위일 뿐이다.
 
종족의리론(설계자는 세상 밖의 특권지대에서 아랫것들을 줄세운다)
그리고, 외지인. 연고가 닿지 않는 이들에 부담을 씌운다.
 
반면에, 1987년 박종철 사건으로 나타나는 87년 6월의 세력들(물론, 항쟁 지도부는 친중친북이다)이 아니라, 일반국민이 제도권에 알고 있는 신화화된 제도권의 그 내용(명분적 허구)을 보자. 일반국민에겐 그게 중요하고, 그 내용이 항쟁주체가 일반국민을 기망했음은 별개의 논리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 피조세계는 선하다. 그 속에는 생명이 흐른다. 모두 존엄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모든 국민은 각각 자유롭고 각각 평등하다.
 
종족의리론을 완전히 거부하고 서양법적인 시각을 가질 때, 서양역사관으로서 근대국민국가의 역사와 만난다. E.H.카아가 매우 잘 말했듯이, 국민국가역사는 모든 것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 필요한 부분을 서술한다. 국민국가 형성과 맞지 않는 부분은 다루는게 아니다.
 
 
❶ 우리는 매일 민주당 호남 극좌파의 전라도 본래의 친중 본색 양반가문의 의리론을 한순간도 하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❷. 군사정권 한국사처럼 반공종족주의로 과거의 서술로 머물기로 허락한 적이 없다.
❸. 그런데도 남로당종족주의와 종족주의화된 과거의 서술로, 논객 이면에서 짜고치기로 연합하려 한다.
❹. 국민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권, 평등권을 모두 반영하는 국민의 힘 정당에 맞을 수 있는 ‘자기 책임원리’의 한국현대사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❺. 남로당종족주의와 종족주의화된 반공서술의 쌍쌍파티의혹과, 법치주의 상식에 걸맞는 모든 행위를 제도권에서 발도 못 붙이게한다는 것은, 개뼉다귀 개벽파 사탄교인들의 통일관이, 남로당과 군사정권 기득권자를 뺀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에 불의한 피해를 준다는 이야기다.
 
조갑제기자가 연일 역사전쟁을 이야기하나, 그 역사전쟁 논의하는 자가 원불교 백낙청 내란죄를 말안한다. 남로당 인민공화국 종족주의 기준의 유교의리론과, 자기 파벌의 유교의리론이 종족적 상생 통합 아니냐, 이 소리다. 이는 양파의 개벽파를 뺀 나머지 일반국민의 기본권을 임의로 박탈하겠다는 말이다.
 
꼭, 나에게 지원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어느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이 천명~2천명이 되면 다른 사람 먼저라고 논하는 게 먹물계의 상식이다. 능력자가 실력을 발휘하면, 자기의 작업도 돋보이니까 그렇다.
 
한쪽은 공산혁명가 조상신을 위해서 한일 관계 정상화는 안되는 거 아니냐? --------아놔, 내가 공산혁명가 지주 마을의 노비냐고.
 
한쪽은 이승만 박정희 조상신을 위해서,......
---------이 때 관직 누리던 계급에 언제까지 멍석 깔아줄려?
 
헌법에 걸맞는 역사관은 심플하고, 클리어하다. 서양사관의 상식에 맞춰진 한국현대사 재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