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하자면, 광주 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여기고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진실을 바라보고 깨어나도록 하는 일이 사랑의 새계시를 영접하게 하는 일과 유사합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정도, 겸손의 정도, 깨달음의 정도, 분별력의 정도, 자유한 정도, 평안의 정도, 행복의 정도...

예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다들 다릅니다. 전광훈 목사님이 하시는 일을 무시하고, 종아하지 않는 사람은 속교만을 가진 사람들이고 영적인 세계의 연관관계를 모르고, 사탄이 종교와 문화와 정치 가운데, 개인에게, 단체에게, 교회, 회사, 가정에게 역사한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볼지 모르나 숲을 보지 못하고, 또한 더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5분만 겸손해보시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몰론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즉시 말한 사람에게 너는 뭔데, 교만한 놈아... 그러겠지요....

겸손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깨달음이 옵니다. 다음 4944번 말씀을 살펴봅시다.

격려가 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온전하지 못한 겸손으로 온전한 겸손에 도달한다. 

주의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한 순간에 지옥으로 빠질 수 있다.

다시 격려해주는 하나님의 말씀: 
죄가 사람을 아주 겸손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천사로서 죄를 통해서 눈 깜짝할 동안 지옥에 가서 자기안에 평안과 질서를 세우고, 그가 다시 돌아 왔을때는 지옥을 구역질 나게 여기게 되고, 그의 혼은 전과 같이 순수하게 된다. (큰 요한복음 2권 209장 6절) 

베르타 듀데 4944 1950년 7월 31일
말씀의 힘. 효과가 없는 역사. 

사람이 말씀을 거부하는 동안에는 말씀의 힘이 역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영원한 신성을 증거하는 말씀을 원하지 않는 동안에는 그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즉 영원한 신성이 발산해준 것으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내면에서 거부하는 일은 하나님의 대적자가 드러나게 영향을 미친 일이다. 왜냐면 선한 사람은 말씀을 행복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대적자가 선한 사람에 대한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발산해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은 어디든지 도달할 수 있지만 저항을 만나면 즉시 효력이 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아직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영적인 강요를 행사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명백한 대항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적으로는 믿음과 관련된 모든 것과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하고 머물고, 그의 심장은 닫힌 채로 머문다. 왜냐면 그의 이성이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 그의 심장의 동의가 필요한 것을 부인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온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많은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따뜻하지도 않고 차갑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거부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고,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그들의 관점으로 자주 이웃 사람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힘의 원천이 아니다. 왜냐면 그들이 단지 영적인 의미가 없이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조상들의 책을 고백하더라도 그들은 조상들의 책을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상들의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읽고, 조상들의 책이 그들의 영을 깨우치기보다는 그들의 영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왜냐면 능력이 심장 안으로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책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단지 죽은 문자이다. 왜냐면 인간 자신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영이 영에게 말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의 흐름이고, 사람이 인간이 말씀이 하나님의 불씨에 도달하기를 원할 때 단지 말씀이 하나님의 불씨에 역사하고, 모든 방어하는 일이 흐름을 중단시킨다. 왜냐면 하나님은 영접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긴밀하게 갈망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 크게 역사하는 일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갈망은 또한 받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보장한다. 하나님의 힘을 갈망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힘의 흐름에 자신을 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힘이 흘러간다. 그는 이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이웃이 전혀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것이다. 왜냐면 그가 자신의 갈망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은 절대로 이런 연결을 이룰 수 없다. 왜냐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어져 있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의 힘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하나님의 힘의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고,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힘의 공급을 받지 않는 동안에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통해 아직 하나님을 힘의 원천으로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러므로 타락하게 된 하나님의 대적자의 영향 아래 있는 동안에는, 그는 이 땅에서 아무일도 성취하지 못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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