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63rsg55G4&list=PLy1djSD3FaRwEvMy82QjMtbhz3zPO5cdd
이 영상 10:57부터 보면 지만원 박사님께서 법원에 법정 영상 증거물로 제출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귀중한 영상 뉴스가 시작된다.
지금 역사왜곡세력이 1980년 봄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던 대규모 시위를 일컫는다. 문익환 목사가 어떻게 북한에서 조국통일상 수상 제1호가 될 수 있었는가? 김대중 일당은 어째서 1980년 4월부터 갑자기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국 규모로 조직하기 시작하였는가?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9년 10.26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부터 북한은 광주사태를 일으킬 북한특수군을 남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는 영상 뉴스가 바로 위 영상 10:57부터 시작되는 '대한뉴스 제 1281호-간첩소식'이다.
국군이 철통같이 해안을 지켜도 잡히는 간첩선은 겨우 십분지 일에 불과하다. 하물며 전라남도 해안을 뻥뚫려 있었다.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유병현 합참의장이 전남해역을 경비하던 부대를 모두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재배치시켰기 때문이다. 위 뉴스를 보면 해안경비가 철통같았던 동해안에도 1980년 3월부터 북한군을 실은 간첩선들이 침투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비근한 예가 바로 1980년 3월 25일 새벽 포항 앞바다에 무장간첩선 출몰한 사건이었다.
3월 말에 여기저기서 무장간첩들이 사살되거나 무장간첩선이 격침되자 김일성은 즉시 문익환 목사에게 지령을 내려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데모를 조작하게 하였고, 문익환은 즉시 민청협 조직을 김대중에게 홍위병으로 붙여주면서 김대중의 외곽단체와 더불어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데모를 전국 대학가에서 조직하였다.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데모--이것이 오늘날 역사왜곡세력이 1980년 봄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데모의 실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