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다행히 ‘개딸’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출석한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에 10일 오전 지지자들이 모였다. 뉴스1
최저 기온 영하 5도가 예고된 이른 아침부터 왕복 12차로 대로를 사이에 두고 확성기 싸움이 요란하게 펼쳐졌다.
지하철 남한산성입구역 1·2번 출구 쪽에서는 “대장동 수괴, 이재명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울렸다.
반대편 3·4번 출구 사이에서는 “우리가 이재명이다. 검찰 독재 타도하자”는 구호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등장한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의 어제 모습이었다.
이 대표 출석이 한 시간쯤 남은 오전 9시30분 무렵 그의 지지자들 대오가 대략 완성됐다.
손팻말을 들고 파란 풍선을 흔들며 집회 진행자가 ‘진짜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이를 기다렸다.
이 대표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민주촛불시민’(주최 측이 붙인 명칭)은 수백 명 수준이었다.
길 건너에 포진한 ‘애국보수시민’의 수가 비슷했는데, 얼굴이 알려진 유튜버 여러 명이 눈에 띄었다.
경찰 기동단이 차로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어 소음 전쟁만 벌어졌다.
이 대표 측 군중 옆을 계속 오가며 참가자 얼굴을 하나하나 봤다.
목적은 ‘개딸’ 규모 확인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직전에 대다수의 청년 여성 유권자가 자기편이라고 주장하며 지지 여성들을 개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주인공 부친이 말괄량이 딸에게 애정을 담아 붙인 호칭이었다.
민주당은 자기들이 말하는 개딸은 ‘개혁의 딸’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지지 온라인 모임에 스스로를 개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들을 보기가 어렵다.
이 대표나 민주당 관련 집회에 나오는 여성들은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인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지난해 6월 “개딸이라는 게 2030 여성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올리는 글을 보게 되면 4050 아주머니다”고 말했다.
글에 담긴 어투가 젊은 여성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유튜브 방송의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 건 때문에 주목을 받은 여성 첼리스트는 이전에 쓴 온라인 글에 자신을
개딸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40대(1981년생)다.
이 대표가 출석하는 검찰청 앞에 진짜 개딸들이 몰려 나올 것인가. 그게 궁금했다.
민주당은 “전례가 없는 야당 대표 검찰 소환”이라며 지지자 결집을 호소했다.
이 대표 지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회 참여 의사를 밝히는 글이 줄을 이었다.
2030 개딸 집단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드디어 오프라인에 대거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날 모인 이 대표 지지자의 남녀 비율은 엇비슷했다.
20대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두세 명이었다. 30대 후반까지로 범위를 넓혀도 해당 여성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여성의 평균 연령은 50세 안팎으로 보였다. 이 눈대중이 영 미덥지 않다면 현장을 담은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해 보면 된다.
군중 뒤편에 뻘쭘하게 서 있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이재명 대표 응원하려고 왔는지 물었다.
그는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해서…”라고 대답했다.
“젊은 여성은 별로 안 보인다”고 말을 잇자 “저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라며 웃었다. 자신은 개딸이 아니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의 걸음이 갈 때보다 가벼웠다.
검찰이 이 대표를 부른 것은 그가 성남시장이었을 때 용도 변경 허가 등으로 땅 가진 사업자들 이익을 키워주고 그 대가로
약 160억원의 성남시 축구단 후원금을 걷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그 돈 중 일부가 이 대표 주변인들에게 보너스 명목으로 제공됐다.
이런 부당 거래 혐의를 감싸고 덮는 데 젊은이들이 가세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개딸이라는 괴이한 용어를 이제 내려놓기를 바란다.
50대 후반인 이 대표가 40대 이상의 여성을 딸이라고 부르는 것은 듣기 거북하고 민망하다.
젊은 층 지지에 대한 희망이 깔렸다고 해도 이쯤에서 자제하시라. 허무맹랑한 말장난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