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정권은 충군애국으로 1인 통치권자의 권력을 무제한 강하게 했다. 이를 어떻게 약화시키느냐가 쟁점이다. 그러면, 진짜 문제가 있다. 전세 사기등을 어떻게 처벌하느냐? 뉴스에 나올만한 사건에 대한 피해자는 행복한 것이다. 그 피해자 중에 소위 말하는 ‘파워맨’이 섞여 있어서, 어떻게든 법정으로 갈 수 있다. 현실은 어마어마한 피해자가 있고, 그들을 모두 법으로 구제할 수 없다. 귀족의 폭주를 심판을 못해도 너무 제도적으로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다. 위기가 되면 도리어 그 시스템을 강화한다.
‘관치경제’가 자꾸 되는 간단한 이유가 있다. 시장이 상호간에 신뢰를 안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이 아니면 구제되지 않는데, 한국은 전 세계 어느 법조인들보다 ‘금권주의’적으로 휘어 있다. 이재명은 정말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빙산의 일각의 처벌도 어렵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규제만 풀면 모든게 잘된다고 했던, 박세일 교수, 김정호 교수, 조갑제기자가 집단적으로 왜곡해서 전한 진실이 있다. 하이에크 이론을 통해서 알수 있지만, 미국은 정부 중심을 빼고도 민간에 독자적인 시장합리성이 있다. 촛불 두목 백낙청과 긴 교류를 가져온 박세일 교수는, 그런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민간의 무당신앙이 난무하는 세계에는 그런 합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老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시장경제 철학일 수 없다. 한국인들의 금전 인식에는 도교에서 나오는 불로초 인식이 있다. 동시에 老子는 중국식 공산주의의 바탕종교가 된다. 탈규제로 가서 얻어진 이익을 공산주의적인 경제민주화로 전가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탈규제를 잘못 했다고 보지 않는다. 주식 시장의 마진콜에 비슷하게,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은 부동산에 추가담보를 요구한다. 이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세우는 대책은 ‘다른 이들을 호구화’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게 있다. 세월호 사건이다. 언론은 세월호를 초래한 청해진 해운을 둘러싼 잘못된 규제해제를 비판하는 데, 박근혜 정부는 그 때 규제해제 토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심플한 지도자였다. 관료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따라갔다. 관료들은 세상에서 반대되는 일이 모두 벌어져도, 쭉 한번 세팅되는 것을 물고 들어갔다.
중국학책을 살펴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중국사는 한번 꽂힌 씨족 사회습관은, 관료들은 계속 굴리려는 목적을 알 수 있다. 국민의 힘 정권이지만, 관료들은 김대중이 창시한 ‘대중참여경제학’을 사실상 사용한다. 변양균이 대중참여경제학을 계승한 지도자면서, 국민의 힘에서 성공적인 ‘재취업’을 했다.(미국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다)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경제민주화를 제외한 부분을 그대로 사용하면, 그게 국민의 힘의 경제학이 사실상 돼 왔다. 그러나, 문제는 관료들은 대중사회에서 가장 퍼졌다고 써먹지만, 국민들에겐 갭이 있다. 물론, 관료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예능은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30년 가깝게 지배한 이들이 주도한다. 정책도 그렇게 퍼진 것을 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퍼진 것이 바른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 때 대출규제 해제 때부터 김대중 대중참여경제학의 문제점이 표면화됐다. 세월호 사태를 초래한 해운규제해제도 박근혜 정권 때 문제에 다다랐다. 문재앙 정권 때는 대대적으로 잘못된 규제해제문제가 대대적으로 발생했다.
한국경제는 ‘사이비 경제 교주’로, 혹은 ‘무당예언’ 폼을 내는 그런 예언가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사기꾼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벌하는 기제는 솜방망이가 된다. 이 사기꾼이 정치권력에 빽이 있을 경우는 이들을 제거하는 경우는 절망이 된다.
답은 그렇다. 그야말로 시장경제에서 표준이 되는 시장윤리의 국민교육이 필요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정부주권이 필요없어도 부르주아 지배로서 법질서가 있다. 한국은 그게 없이 정부의 주권에 안 닿게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귀족을 무제한적으로 강하게 한다. 특히, 그 귀족은 씨족마다 무제한적으로 갈라진다.
한국은 공산국까지 포함한 수출대금이 파생되는 기본이 된다. 동시에 국내로서는 ‘사기 경제’까지 포함한 통화량 M2가 기본이 된다. 법과 도덕이 물질 앞에서 꿇어버린 모습이다. 사실, 이재명과 화천대유 식으로 생각하면, 빌라 수천채를 짓고 건설사에 전부 소득을 안긴 거대한 사기극은 화천대유같은 건설사와 사기꾼 연합에서는 有能한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의 도덕 없이, 이렇게 물질중심으로 지내온 시간이 맞느냐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명박 때도 위기를 구해달라고 대출사기꾼을 너무 열었었다. 물론, 지금은 부동산하락을 방치하여 부동산 시장의 마진콜인 부동산의 추가담보 요구는 막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대단히 이상한 생각을 하는게 아니다.
경제유튜브에서 경제에서 바른 도덕을 논하는 가치관이 거의 통하는게 있다. 이것이 국민통합으로 교육하는 기제가 없다. 이런게 깔리지 않는 전제의 탈규제라는 것이 사실 문제라는 것이다. ‘바른 규범’이 깔리지 않은 상태로, 사기가해자는 상대성을 주장하며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 탈규제를 해도 고금리 예금과 채권시장에 매력에 빠진 현금부자를 유혹하기는 당분간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느 임계점에 달하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본다. 누군가를 호구화하여 어떤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면서, 정치의 신뢰를 팔고 공공의 신뢰를 팔아먹는 임시응변 문제로서 지난 20여년 여야를 넘나드는 지속(공무원이 늘 똑같앴겠지), 이게 과연 문제가 아닐까?
관료들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을 국민도 당연하게 보지 않고, 서구 사회도 당연히 당연하게 안 볼 것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임기를 넘어서는 거대기획을 안한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전국적 인지도를 엠씨로 꽂는 예능을 론칭하듯, 기존에 퍼진 관점을 사용하려 한다.
촛불 두목 백낙청 내란죄 처벌은 중요하다.
지난 30년 지배체제와 작별을 하는 진정한 첫 단추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는 가계부채 문제이고, 가계부채문제는 고려연방제(노무현 10.4)이다. 노무현 때에 재벌마다 건설사를 안고 현재의 질서다. 지금은 그렇게 먹여살릴 소비가 국내로 없다.
어쩌라고, 답답해도 어쩌라고, 하면서 관료들은 임기 내만을 주장하면서, 늘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핵심은 지난 30년의 공식을 벗어나는 일이 이젠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조갑제기자가 쓰는 거의 대부분의 개념은 학적 개념으로 엉망이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전땡땡 목사의 경우 신앙개념도 엉터리다. 묻고 싶다. 어떻게 바로잡지?? 절망적 불가능성이다. 뿐만 아니라 촛불 두목 백낙청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희구가 대동세상 구현이라는 개벽신앙 정서로, 헌정질서 박살을 추구한다. 독일 쿠데타와 같다. 내란죄가 전 세계 어디에가도 투명하다. 폭동의 공격성이 내란죄 적용에 한계가 있다면, 내란예비음모죄는 백낙청에 넉넉하다.
罪는 있는데 심판을 안한다.
이런 데 규제해제다.
조갑제기자는 연일 서양법과는 상관이 없는 중국법 떼놈윤리로 퍼뜨린다. 지식이 혼란하니, 법이 와해가 된다. 법규범이 전국이 통일돼야 사기꾼이 힘을 잃는다. 어린아이가 된 노인들의 앞뒤 안 가리는 용어혼란을 방임한다.
한국이 일본식 부동산 침체를 안 겪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의 문제로 부동산의 마진 콜 막기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어느 시점에서 정책 솔루션 먹히기를 위한 처방을 해야 한다.
시장이 상호 불신한다. 샤머니즘 종족주의로 상대가 상대를 호구화하는 체제다. 이 시스템을 무작정 믿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