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빨갱이 개씹선비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고
민족주의자도,
심지어 (인민)민주주의자조차도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을 보내고 꿈꾸듯이 죽으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처럼 너무나 자명하다.

언어와 대상이 심하게 어긋나는 말을 하는 자,
간민(奸民)을 넘어서는 폭민(暴民)을 부르는 자를
조선 씹선비들의 언어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고 했다.
인민민주주의자조차
인민을 위한 독재를 내세우며 인민의 복지를 위한다는
잘못된 정책(?)이나마 피드백을 통해 수정하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
(인간의 양심이란 때로 맹목적이고 파렴치하다)
물론, 당연히 백두개족보 왕조는 예외다.

군인신분으로 전복적 권력 획득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기이하게도(?)
세계의 어떤 군사 쿠데타 정권과 유사하지도 않은,
통상적인 정치의 포퓰리즘을 넘어서지도
그렇다고 가학적이지도 않는,
통치의 과정에 나름(?)의
인본(人本 ?) 민주 절차를 준수하고
'건국의 정신인 자유ㆍ민주ㆍ법치'의
점진적 확대의 기조를 버리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을
소위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하지만
그 권위주의 군사 정권 그 이상으로
권위주의적이며
명목을 걷어낸 실질 통치 과정을 보면
남미의 수구꼴통 독재 못지 않다.
그들은 정치적 적을
제왕적 권력이라고 비난하지만,
자신들은 교묘하고 파렴치하게
보편적 법의 정신을 능멸하며
지식의 유통, 자유로운 발언을
차단ㆍ억압하는 인민위원회 정치로
슈퍼 권위적이었고 초제왕적,
초사법(司法,Judicial branch)적이었다.
지난 8년은 언론까지 합세해
모두가 미쳐 돌아간 세월이었다.
조선씹선비의 나라는 얼마나 권위주의적이며
몰염치한 씹선비스러운 나라였던가!
당시 소위 지식인이라는
어설픈 좃문가 씹선비만 설쳤다.

자유민주주의가 이치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는,
진정한 전문가는 의미있는 발언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런 지식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이지만,
(지겹지만) 어쭙잖을 망정
'담대한 씹선비' 지식인의 존재는 소중하다.
진정한 전문가는
그 지식의 공익성 때문에
'고유의 생각하는 방식'의 전파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정 수준이상'의, 결함있는 지식도
지식의 시장에서 평가받고 토론의 대상이 되어
그 사회의 '일정 수준이상'이라는 기준은 높아진다.
소위 좃문가가 걸러지면서 사회의 '생각하는 능력'도 상승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언론의 자유,
입을 막지 않는 비판의 자유가 장려되고,
비판받는 자도 당연히 살아남기 위해 논박하는 까닭에 있다.
그런 비판에 의해 그야말로 쭙잖은 존문가들이
걸러지고 사회적으로 탈락되고,
사회적으로 그런 풍토가 장려될 때,
공화국민의 지력의 총화로서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 그룹이 작동하고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한 토대가 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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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베충이들조차 떡밥을 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자체 정화기능을 상실해간다.
걍 조용히 민주화를 눌러주자! 또
'신고'에 '광고' ,'분탕', '어그로', '기타'도 있다.
-그 나머지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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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간의 정권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권위주의적이고
지식의 유통이 폐쇄된 씹선비의 사회인가를
저 위에서 부터 이 아래 밑바닥까지
스스로들 투철하게도 온 몸으로 증명했다.
끼리문화가 철저해지고
무식하게 떼로 다구리 놓는 사회!

소위 조선 씹선비 좃문가들은
씹선비 선조 못지않는 더욱 강한 끼리문화로
쇠울타리를 지키는 '무적의 다구리 전법'으로
철밥통을 향유해 왔다.
씹선비의 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사회가 아닌 것은
지식 시장, 생각의 시장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뒷골목 시장은 언제나 있다.
똥개마냥
똥냄새 풍기는 익숙한 손가락이 까딱하기만 하면
냉큼 쪼르르 달려가
똥꼬를 핥아대며
똥구멍을 쳐들어 꼬리를 휘젓는다.
그런 시장은 널렸다.

그런 시장에서는
존문가 존재의 정당성이며
배타적 밥통의 근거인
지식의 유통과 정당한 비판(평가)의
'지식의 자유시장'은 실종되고
뼈 속까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다구리 폭력성만이 횡행할 뿐이다.
(지극히 위선적이던 조선 씹선비 조차 이렇게까지
항문의 똥품이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았다.
'따로 씹선비'인 남명파조차 명목을 보존했다. )

지식인이란 본질적으로
외로운 칼잡이이며
그 한 칼을 화두처럼 갈고 닦는,
생물학적 목숨을 염려할 까닭이 없는
명목의 무사, 씹선비이다.
물론,
씹선비나마 장려되기 위해서는
지식의 시장에서
한 칼로 살아남아 명목을 보존함으로서
존재의 실존이 보장되는 풍토가 조성되야 한다.
지식의 시장뿐 아니라,
심지어 일반 사적 모임에서
정치적 색깔로 비쳐지는 사소한 발언도
불화의 징후로 여겨 서로 꺼리게 되었다.
극우의 의미도 모르면서 극우로, 토착왜구로
미제의 앞잡이로 매도 되었다.
씹선비 나라의 빨갱이스러움은
사회적인 패션(fashion)이 되었다.
한 칼은 버려지고 녹이 슬고
전문가 씹선비들이 입을 처닫고 침묵하며
(널리고 널린) 시장이라지만, 사실은 골방인,
그 골방에서 딸딸이나 신나게 쳐댄 결과이다.
젓대가리를 잡고 지겹도록 쳐대
그 골방에 밤꽃 냄새가 흥건히 배었을테니
기어나와서 바람들 좀 쐬라!
설치다가 몰매맞아 디지거나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동류들에게
좀 쪽빨리지 않냐?
쥐구멍 속에 박힌 좃문가와
반대한민국적인 빨갱이 운동가들의 논리를
자유민주법치질서의
지식의 시장으로 불러내,
공화국의 진정한 다구리의 맛을
보여주길 고대한다.
씹선비는 씹선비다워야
씹선비의 자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