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안해도 조상신이 지식을 불어넣어준다는 개벽신앙 할아버지들의 괴상망칙한 신념. (아니라고, 그런 일은 없다고 어떻게 알려주나?)
민정당 때 교회 교과공부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그때, 예수 안 믿을 때지만, 1번 출석하고 질렸죠. 서한샘 국어의 밑줄 짝 똥그라미 땡야....를 능가합니다. 결국, 교회 교과공부는 성경의 한 단락에서 신자들을 질리게 합니다. 어쨌거나, 성경본문 단락 단락은 교과서적으로는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외국사상 번역자들도 단락단락을 그렇게 읽죠. 굉장히 사상번역자들이 한권 읽을 때 오래걸립니다.
이제, 성경의 개별 장 중심으로 보는 시야가 확대되고, 또 성경의 장별 비교공부가 됩니다. 로마서와 요한계시록,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창세기와 요한복음, 출애굽기와 로마서 등등, 장별 비교 공부가 됩니다. 그렇게 바닥에서 다져진 독서는 성경을 원근법으로 읽게 만듭니다.
그런 원근법이 쌓이면 조직신학이 이해가 됩니다.
성경의 조직신학 판본으로 성경론, 신론(계시론), 말씀론, 교회론, 기독론, 등등 분야가 달라져도, 결국 성경본문 인용은 엇비슷하고 신학자의 해석만 달라집니다.
이제, 조직신학 대 조직신학의 문제가 논해집니다. 동시에, 조직신학 대 타종교 문제가 논해질 수 있습니다.
일반 사상서도 똑같죠. 사상가의 개별 단어에 꽂혀서, 정말로 정치게시판에 써먹는 단어만 주목하는 단계가 있고(그렇게 써먹을 분들이 써먹도록 저는 블로그에 다 정리해뒀습니다), 사상가 개별 책들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상가가 쓴 책들을 전부 끌어모은 사상가 개인을 이야기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사상가들의 역사적 분류인 ‘철학사’와 ‘사상사’를 논의할 수 있습니다.
개벽신앙 할아버지들은 이런 30여년 걸쳐서 얻는 비전을 바라지 않고, 곧장 기지도 못하는데 나는 척 하는 차원으로 ‘무당신앙적인 훌쩍 뛰어넘기’를 원합니다.
이 할아버지들의 잘못된 영향이, 정치기독교유튜브의 얼렁뚱땅 조직신학과 얼렁뚱땅 세상인식의 만남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전라도 유교 사대부의 만물 위에 떠 있는 유교적 자아를 마치 무조건 존중받아야 할 서양적 자아인양 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세연이 아무리 강용석 욕해도 강용석을 편드는 단순하고도 간단한 이유,....
사회를 이끄는 논객은 먹물이어야 하고(그래야 책을 읽은 사람이 그 책 기준으로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되고), 먹물 없이 맷집만 되면..... 그러면 사회를 이끌수가 없다는 것.
물론, 모든 면에서 만족할 수 없고, 부동산 등에 대한 시점은 동의하기 불가능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수우파에서 꼭 필요한 먹물력의 압도.... 누가 있겠는가?
공부를 해본 사람이면 공부를 해왔던 다른 사람 소중한 줄 안다. 공부를 한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경기침체는 <심판의 순간>이다.
폭동이 커지고 친중친북파가 더 세면, 미국은 한국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신념이 필요하다. 여기서, 딱 문제가 커진다. 군사정권 때 기억에 빠진 노인과, 원론의 현저한 차이가 어쩔꺼냐?
공부를 안해도 조상신이 다 채워주니, 애드립 경연대회 하자. 그 노인들에게 당신이 아는 모든게 헛것이라고 어떻게 말해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