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3월 28일, 잠실에서 브라질을 1대0으로 잡았던 경기는 사골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우려내서 아마 다들 알고 있을거다.
당시 승리는 아시아 국가의 A대표팀이 브라질을 잡은 최초의 케이스여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중이고.
물론 호나우도와 카를로스가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100%에 가까운 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방한했던 멤버들의 면면도
꽤나 화려했던 팀이었음.

<한국 대 브라질의 스타팅 라인업>
날쌘돌이 서정원의 돌파에 이은 볼 배달... 바닥에 꽃가루 보이냐? 저 때 진짜 엄청나게 뿌려댔다.
당시 서정원은 리복 모델이었는데 나이키 쪽에서는 서정원이 마무리가 깔끔히 안 되고 자주 넘어지는 이유가 리복 축구화를
착용하기 때문이라는 썰을 기자단에게 풀기도 했음.
브라질전을 앞두고 뱅지형이 어떤 색으로 염색을 할건지 매우 궁금했는데 결국 최종 선택은 유니폼 색상과 동일한 녹색이었음.
저 때는 1998년 K리그 플레이 오프에서 포항을 상대로 헤딩골을 넣고 팀을 결승으로 캐리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뱅지형이 골문 비우고 나오는거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던 시절임.
하늘에서 본인이 날려보낸 각양각색의 홈런볼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실 것으로 굳게 믿읍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축구의 스타일을 설정함에 있어 언제나 첫 번째 점이었던 故 유상철 형님의 홈런볼 장면.
이을용의 킬 패스 - 황선홍의 공간침투. 골은 불발되었지만 이 날 이을용의 플레이와 황새의 투지도 인상적.
그 당시 부천이라는 클럽과 서포터즈인 헤르메스의 컬러가 워낙 남성적이어서 큰 관심이 없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을용이형의 얼굴이 당시 기준으로도 워낙 나이 들어보여서 난 이 냥반이 안정환이랑 친구라는걸 은퇴 이후에야 알았다.
브라질의 측면 수비라인이 털리는 순간. 우리가 흔히 A매치 기준 패스가 가장 잘 풀렸던 경기를 말할 때
2002년 스코틀랜드전에서의 패스 운영을 이야기하는데 이 장면 역시 그에 버금갈만 했다.
(자기 골문 쪽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볼을 컨트롤해서 빠져 나가는 카푸의 모습 또한 인상적)
이건 뭐 워낙 유명한 장면이니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터진 발리장인 김도훈의 인생골!
이임생이 상대 공격수인 알렉산드루의 공격을 잘 끊어주고 홍명보가 상대를 벗겨내고 치고 나가며 측면에서 쇄도하는 최성용에게
길을 열어줬고 중앙으로 달려드는 김도훈이 발리로 때리기 좋게 기가 막힌 연결~ 골.


이 승리는 아시아 국가가 브라질을 상대로 기록한 첫 A매치 승리로 기록됨.
경기가 끝난 뒤에 팬들은 떠나질 않았고 대표팀이 탑승한 버스가 주경기장을 벗어나는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림.
당시에만 해도 선수들이 숫기가 없어놔서 경기를 이기건 지건 포커 페이스로 일관했는데 대표팀 버스 안에서 허정무 감독을
필두로 버스 안에서 팬들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구호를 처음으로 외쳤음.
저 때 나는 축구 관련일을 했기 때문에 경기 내,외적인 분위기를 두루 살필 수 있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함.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저 당시엔 대표팀이 징검다리 시스템으로 운영되었음. 2년 간의 월드컵 준비기간이 끝나면 바로 올림픽을
중심으로 그 다음 2년을 운영하는 개념이었던 까닭에 저 경기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사실상 정예병력이 소집된
최초의 경기였고, 국대와 올대를 겸업하던 허정무 감독이 지휘봉 잡고 처음으로 소집한 국대 멤버였음.
그래서 전술이고 뭐고 선수들끼리 합을 맞출 시간도 없던 상황이었고 기자들 사이에선 대패나 안 당하면 다행이란 분위기가 팽배했어.
결국 허정무 감독의 선택은 그나마 서로를 잘 아는 베테랑들이었고.
헌데 딱 한 가지 경기장 내,외부를 지배하는 특이한 현상이 있었음.
그 때가 K리그의 르네상스라 불릴만큼 프로축구의 인기가 좋았고 암만 좆밥팀이라고 해도 팬들이 워낙 많이 몰려드는지라
선수들의 어깨뽕도 장난이 아니었는데 얘들이 그래서인지 전부 고종수화되어서 지금 이런 기세면 우리가 이길 것 같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팬들도 분위기가 어땠냐면 브라질이 대단하긴 하지만 호나우도 안 오고 카를로스 안 오면 우리 홈인데 충분히 해볼만 하지 않겠냐는
반응이 주를 이룸. 브라질이 오건 말건 다들 K리그 뽕에 취해 있었고. 얘들 앞에서 전문가랍시고 브라질 전력에 대해서 문자 섞어서
이야기를 하면 매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음.
이게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다는게 믿겨지지 않고, 그 때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자신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 움짤은 제작할 줄 몰라서 딴데서 퍼왔으니까 이걸로는 시비걸지 말고. 대신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이 덧붙였으니까.





